2003년 11월 12일 새벽설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5-36).
그러면서 이제 한때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또 핍박도 이기고 고난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뒤로 미끄러져서 급기야는 배교에까지 가게 되지 않는 비결을 말합니다. 두 가지를 말하는데 담대함과 또 하나는 인내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담대함은 핍박과 고난의 강도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고, 인내는 그 시간적인 길이에 맞서기 위한 것이란 말이죠. 무슨 뜻인지 이해 가시죠? 그래서 담대함은 핍박의 혹은 고난의 강도에 맞서기 위한 것이고, 인내는 그 시간적 길이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것이죠.
신자들에게 있어서 환란이나 핍박, 어려움, 이런 것들이 커다란 강도로 한꺼번에 확 밀려오기 때문에 배교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정도는 아닌데 그것이 끈질기게 계속 되기 때문에 배교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죠. 예를 들자면 1920년대에 일제의 강력한 무단 정치가 행해지게 되죠. 그래서 이제 뭐 창시계명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또 해방 막바지로 넘어가면서 이제 신사 참배 문제니 뭐 굉장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박해의 강도가 엄청나게 강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거기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냥 단번에 목사들이 자기의 설교할 자리를 잃어버리고, 끌려가고, 고문을 당하고 하는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핍박을 한단 말이죠. 그럴 경우에는 담대하지 아니하고는 그러한 핍박과 그 고난의 강도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살면서 특별히 핍박이나 핍박 같은 것들이 아주 강도를 더해 올때가 있고, 또 핍박이 아니더라도 신앙을 붙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살아가려고 할 때 그 고난의 강도가 아주 커질때가 있다는 거죠. 그때에 그것을 헤쳐나가는 비결은 담대함입니다. 그 담대함, 그래서 그 담대함을 가지고 그 강도가 높은 핍박과 그리고 강도가 높은 고난을 맞서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 이런 담대함을 가진 신자들이 참 많지 않거든요. 사람들이 너무 소심해요.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냐면 이 담대함은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자기를 다 비우고 자기를 포기해 버리는데서 오는 담대함이거든요. 그러니까 전쟁을 나가는 군인이 전쟁을 하면서 내가 다치지 않을까, 죽지 않을까 전쟁을 하면 우리 가족은 어디로 가나, 우리 아내는, 우리 애들은 무사할까, 전쟁이 나면 우리 가게는 망가지지 않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땅들은 적군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이런 많은 생각들을 하고는 군인이 담대해 질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이 담대함은 어디에서 오냐면 첫째는 자기 집착을 모두 포기한데서 담대함이 오는 거예요. 자기 집착을 모두 포기하고 나면 담대함이 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서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나의 가진 것들도 별로 없지만 그것들을 적군에게 빼앗긴다고 할지라도 나는 게의치 않는다, 그리고 내게 진짜 최고의 가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지위가 아니라 최후의 승리다, 이렇게 생각하면 담대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 고백을 빌립보서에서 하잖아요.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어 있으나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지금도 담대히 원하는 것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 좋다”. 물론 이 세상에는 바울이 사랑하는 것들이 참 많았어요. 꼭 그것이 물질이나 가정이나 뭐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빌립보 교인도 사랑스럽고, 여기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감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선교 사역도 가치가 적은 일은 아니었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날 수 있었어요. 그런 삶을 살게 될때에 그때에 담대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뭐냐면 어떨 때 담대함이 생겨나게 되냐면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막힘이 없어야 해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내가 만약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버림을 받아도 우리 하나님께 가면 그 하나님이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믿는다, 이러한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담대함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죄가 있고, 양심의 가책이 있고, 갈등이 있고 해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이렇게 쳐다보고 생각할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담대함은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완전한 삶은 온전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힘쓰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못 산 것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회개하고, 자신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래서 마음의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담대함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양심에 책망할 것이 있으면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어요. 우리의 양심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들입니다라고 뻐기지는 않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허물들이 우리의 의지로 택한 허물들이 아니예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씻었고, 그리고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해 주실 것이다라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뭐냐하면 담대해지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것들보다는 하늘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라고 하는 것과 그리고 이 핍박과 혹은 고난에 어려운 강도를 담대함으로 이기고 나면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 상주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난과 시련이 많이 겹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면 “내가 달려 갈 길을 마치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상주심을 바라보는 확신 때문에 잠시 당하는 고난이 비록 강도가 높다고 할지라도 담대함으로 그것을 맞설 수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은 너무 유약해요. 좀 담대해야 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죽을 뿐이지 두 번 이상 죽지 않는다라고 하는 일사각오의 정신, 그리고 만약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다시 살리다라고 하는 분명한 확신, 이 세상에서 핍박과 수많은 환란과 어려움들은 그것이 할 수 있는 그 마지막이 기꺼해봐야 우리의 육체의 욕심, 육체의 생명을 앗아갈 뿐이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들이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아울러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등지고 살려고 해서는 안되요. 우리가 언제 죽음을 만날지 모르고, 언제 우리가 강도 높은 핍박이나 혹은 강도 높은 고난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그때에 그 고난과 박해를 향해서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고난이여 와라. 시련과 핍박이여 나를 향해 다가오라, 내가 담대히 예수의 이름으로 맞서리라, 이런 담대함을 갖지 않으면 그러면 그 고난과 핍박이 올때에 실지로 그 고난과 핍박이 신자들을 짚밟아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세에 눌려서 항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참전 용사이신데 어렸을 때 한번 기가막힌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구요. 그 부대원 가운데 나이도 어리고 사람이 좀 이렇게 바보스러워 가지고, 늘 고문관 소리를 듣는 병사 하나가 있었는데, 그 병사가 혼자서 그 중공군 탱크를 잡은 거예요. 그것도 야밤에. 그 탱크가 그것도 후퇴를 하는 그런 입장었대나 어쨌든 그랬대요. 다들 밤에 자는데 그 친구가 불침번을 서는데, 그게 머 시커먼게 있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보니까 탱크예요. 사실 거기서 총을 쏜다면 살아남을 수 없죠. 이 사람은 덜 떨어지니까 소총을 들고 탱크 앞에 가서 겨누면서 손들고 나오라고 했대요. 안에서 이렇게 보니까 웬 녀석 하나가 소총을 겨누고 자기들 보고 나오라고 하는데 이것은 저 녀석 혼자서는 저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밟고 지나가면 죽는건데 저렇게 병사 하나가 총을 겨누고 나오라고 하는 것은 아마 사방에서 전부 이 바취카포를 겨냥을 하고 그리고 대표로 나와서 초청하는 걸꺼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뚜껑을 열고 병사들이 다 기어나온 거예요. 그 사이에 인제 군인들이 다 와서 체포를 하고 그리고 그 탱크를 노역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담대함은, 그렇게 위세에 눌리지 않는 담대함은 그게 어리석어 보여도 그게 사람들로 하여금 새롭게 해석을 하게 만들어요. 그 사람들이 바보여서 나왔겠어요? 소총하나 들고 있는데 그 엄청난 탱크 속에 있는데 갈겨버리면 되잖아요. 근데 이건 필시 이 로켓 포탄을 가진 사람들한테 뺑뺑 둘러쌓인 가운데, 이제 우리를 저사람이 초청하는구나. 그래서 나오죠. 그러니까 정말 그래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뭐 시련, 박해, 이런거 없어요. 이 사람 가끔은 그래요. 너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죽기밖기 더 하겠느냐, 죽으면 그 날이 기쁨의 날이다. 이 세상의 수고와 모든 고생을 마치고 지금이라도 주님께 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이고 행복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담대하게 사는 거예요.
옛날에 제가 모시고 있던, “목사님 큰일 났어요”. “큰일은 없다, 뭔일이냐? 큰일은 없다.” 그렇죠.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 밖에 큰일은 없다. 그러한 담대함이 바로 미래의 받을 상급,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간다라고 하는 이 행복, 이런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담대함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담대함을 가진 사람과 이 담대함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삶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우리에게는 이런 담대함이 필요해요. 그래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고,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해요?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고 그 분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도록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러면 누가 우리에게 우리의 기업되신 하나님을 빼앗아 갈 수 있겠으며, 우리가 그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겠어요. 그런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인내는 내일 말씀드릴께요.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고 오늘 이시간에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핍박과 고난의 강도에 맞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기를 핍박과 고난의 위험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기보다 더 크게 하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날마다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더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