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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0일 새벽설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렇게 해서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들이 꼭 갖기를 원하신다 말씀을 어제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그 온전한 의뢰의 마음,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 온전한 그 순종을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 자체가 이미 순종을 포함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건데, 그러면 그 믿음의 내용이 뭐냐? 뭘 믿는 믿음이냐이거죠. 그것에 대해서 오늘 성경이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째는 그가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 믿음이다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얼마나 상식적인 이야기이예요. 하나님 살아계시지, 당연하지 하나님 살아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돌아가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가운데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제 그게 아니다 그건 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그것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자신이 범사에 모든 일을 계획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평가하고 그럴때 그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영향을 받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리고 살아계신 그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향해서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느끼시고, 또 모든 것을 행하신다고 하는 그 지,정,의를 완전히 느끼고, 그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이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이라는 거죠. 그게 바로 신앙이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지식적으로 알면서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때가 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만약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 나 있는 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사람들의 삶이 엄청나게 달라질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뿐, 그 사실을 온전히 느끼고 그래서 온전히 그 사실을 믿지 못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인생이 별로 바뀌지를 않는 것이죠.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편 42편에 보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기를 원한다는 고백이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시인이 안 믿었나요? 믿을 수 없었나요? 그런거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았고, 또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뵈옵기를 원했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님을 찾았어요. 그게 무슨 의미이죠?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그냥 믿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온 마음과 삶으로 느끼기를 원했던 거죠. 이게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신앙이예요. 살아계신 하나님은 의지와 정서와 그리고 지성을 가지고 역사하셔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등 뒤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범죄를 꿈꾸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느끼실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투하실 만한 일을 계획하는 거죠. 하나님이 의지를 갖지 않으신 분, 그 큰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의 능력을 불신앙적인 방법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죠. 이게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하는 것이예요.
이런 것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들의 특징은 자기 옆에 지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사람들이었어요. 아무도 볼 수 없는 빈방에서 일어나는 일, 그 앞에서 요셉은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죄를 얻겠느냐“ 하고 반문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생생하게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그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단지 하늘에 하나님이 살아계실 것이라는 생각하는 그런 정도 가지고는 하나님을 절대로 온전히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주님의 살아계심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널때에는 기적이 먼저 생기니까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졌고, 사람들이 거기에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는 믿음이 먼저 역사하고 이어서 기적이 뒤따랐습니다. 법궤를 들고 요단강을 들어가자 강물이 말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무얼 기뻐하시는지 보여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많이 단련하신 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신 것이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게 바로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마음을 느끼고, 그분의 행하고자 하는 뜻과 의지를 받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무엇에 관심이 많을까요? 그렇죠. 하나님은 지금 무얼 생각하고 계실까?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떨까? 내가 지금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나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얼 느끼고 계실까? 그리고 하나님 내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실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은 어디에서 읽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말씀의 사람이예요. 그것을 떠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선생님을 일생의 스승으로 너무 존경해 근데 그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그건 진정한 존경하는 스승과 관계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정말 존경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 그 말을 듣는 거죠.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도 없고 탱탱히 놀다가 자기가 뭐 필요하면 기도하고 믿으면 준다고 하니까 나는 정말로 그걸 믿는다 그런 것이 바로 믿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비 인격적인 믿음이다. 믿음이 아니예요. 그건 자신의 욕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빚어낸 가상적인 성취에 대한 신념이예요. 그런 것들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예요.
그 다음에 또 하나의 믿음의 내용이 나오는데,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시다. 여기서 찾는다라는 의미는 구약적인 배경을 그 찾는다는 말이 이 성경에 표현 가운데 세어적(?) 표현이예요. 추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 전심으로 추구하는 것을 이야기해요. 하나님은 잃어버렸어요? 뭘 찾아요? 하나님은 원래 살아계신데, 찾는다는 이야기 자체가 추구를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 그것을 가르키는 것, 전심으로 그 하나님을 추구하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 하나님과 더 가까이 지기를 원하고,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많은 물질과 축복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의 소원은 결코 거기에 있지를 않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이삭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야곱이 유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죽으면 조상들의 땅에다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해라,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았던 그런 성도들의 생애를 보여주는 것이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자들에게 상을 주셔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찾는 사람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은혜를 간절히 알기 원하네” 전심으로 예수님을 찾고 싶어하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고 하나님과 하나되고 싶어하고, 그 사랑 속에서 살고 싶어하고 그러는 거죠. 그것을 아주 쉬운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기 원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십지가의 피로 구속하신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내가 어떤 것들을 버리면 주님의 뜻에 더 부합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께 더 많이 사랑받고 더 온전한 사람이 되기 원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사는 삶, 그게 바로 주를 찾는 삶이예요.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 거짓되고 가증된 거죠. 자기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돕는 삶, 자기는 하나님을 닮기까지 거룩해지기까지 애쓰지 않으면서 거룩을 외치는 삶, 이런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소리나는 꽹과리와 같고, 울리는 징과 같은 그래서 믿음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그리고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비록 이 세상에서 지위가 높고 많은 재산을 갖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그런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성공을 세상의 지위와 지식과 그런데서 구하지만,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큰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바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온전히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아침의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주님, 오늘 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도와주셔서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큰자는 아니더라도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께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