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12일 새벽설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원래 갈대아 우르를 떠난게 아브라함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무슨 계시가 있었는지 그것도 참 하나의 미스테리예요. 그래서 그런 어떤 그 오랫동안 살아온 그 삶의 터전이던 그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그래서 어쨌든 하란이라고 하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 하란이라고 하는 곳은 교통의 요충지예요. 그래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입니다. 거기에 와서 이제 가나안으로 갈려고 데라가 그랬는데 그 하란까지 와서 멈췄어요. 그래서 많은 구약학자들이 이미 데라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계시하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하란까지 와서 하란에 멈췄는데 거기에서 상당기간 동안 거주했던거 같애요. 그런 사이에 뭐 이제 가나안으로 가야겠다고 하는 결심도 희석되고 아마 그랬던거 같아요. 그리고 이제 데라는 205세에 나이를 끝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러고 나서 그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그런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습니다. 가나안으로 가야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마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을 것인데 문제는 당시와 같이 이렇게 땅에 메여서 살아가던 그런 시대에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오늘 날과 같은 그런 맥락에서 이리 저리 여행하고, 이나라 저나라 이민 가서 살고 하는 그런 문맥에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이쪽 가나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아주 뛰어난 문화를 누리고 있던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뭐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문화가 발달되어 있던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 곳을 버리고, 그리고 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옵니다. 언어적인 소통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보면 같은 샘족 계통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물론 말은 조금씩 틀립니다만은 그렇지만 어쨌든 그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그래서 가나안으로 옵니다. 그래서 가나안으로 온 다음서부터 죽을때까지 그 아브라함이 스스로 자기를 지칭한 것이 뭐냐하면 나는 나그네로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 히브리 말로 ‘구르’라고 하는 이 나그네는 떠도는 사람을 가르킵니다. 그러니까 육적인 고향은 버렸고 떠나왔고, 영적인 고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거죠. 그래서 일평생 나그네로라고 증거를 받으면서 살았으니까 그것은 이미 벌써 고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뒤편에 가면 그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시 한번 거론하면서 그렇게 칭찬합니다. 그게 뭐냐면 떠나온 본향으로 돌아갔다면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러나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일생을 나그네로라 증거를 받으면서 살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거예요. 그러면 그 아브라함이 몸소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도 아니고, 데라가 떠났고, 그래서 하란이라고 하는 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서 가나안으로 갔는데 도대체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 믿음의 성질을 설명한 것이 뭐냐하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지시해 주시는 땅으로 가라, 그런데 아직 지시가 안됐어요. 가나안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가나안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경험된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순종했어요.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제 무엇이었는가를 알게되는 것이죠.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났다는 것은 이제껏 의지하며 살았던 기반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버린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지시해 줄 땅으로 나아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오직 그 삶의 기반을 하나님께만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보았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너무나 잘 알지만 롯이 그 소한들쪽에 가서 살죠.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성에 가까이 그들과 함께 나중에 살게 되는데 그렇게 긴 세월을 거기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롯은 결국은 그 사람들에게 자기네들과 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받지 못했어요.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뭐죠? 이 놈이 나그네로서 우리에게 들어와서 살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고 하는구나, 재판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이 롯을 공격했습니다. 천사가 왔을 때 특별히 그랬죠. 그러니까 얼마나 섞이기가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이예요.
아브라함이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얼마든지 갈대아 우르에서 혹은 하란에서 살 수 있었고, 또 갈대아 우르로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그런 대접이 일평생 기다리고 있는 그 가나안을 향해 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입각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으로 익숙했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에서의 그 아브라함의 삶, 그리고 이후에 후손들이 가나안 지역을 유리하면서 살았던 그 삶은 곧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삶이예요.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그런 삶이예요. 그래서 우리도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 세상의 미움을 받거나 아니면 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그렇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여기를 떠나서 그 영원한 고향인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고향일 수 있는 여기에서 우리는 일평생을 나그네로라 일컬음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한한 꿈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요 잠시 지나는 인생은 곧 나그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그네 인생길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 주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열심히 분투해서 하나님 섬기고, 일하고 주님을 위해서 애쓰고 이렇게 하지만 이것은 모두 이 세상 나그네 길이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사랑하면 안되요. 열심히 살아갈 뿐이지만, 이 세상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그런 집착, 때문에 우리들이 보다 나은 본향, 보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사모함들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정말 우리의 영혼에 있어서 커다란 재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죠.
결국 아브라함이 본토 친적 아비의 집을 떠나고 나서 하나님한 분밖에 바라볼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니까 하나님이 그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였듯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서 우리를 주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고 또 요구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순간마다 우리가 이런 나그네임을 확인할 수 있게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섭리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고 해서 이 세상에서 항상 축복만을 받으면서 사는 것은 아니예요. 때로는 고난을 받게 하시고 때로는 이 세상에게 배신 당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히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이 죄 많은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우리는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아침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처럼 기도하고 간구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오늘 이시간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하나님 새롭게 해 주옵소서.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