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새벽예배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 11:20-21)
녹취자: 유 희
계속해서 아브라함에 이은 족장의 후손들의 믿음의 행적에 대해서 나옵니다. 오늘 나오는 것은 이삭이 죽을 때에 야곱과 에서에 대해 축복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삭과 야곱의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창27장에서 읽어보면 형의 축복을 속여서 빼앗은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이삭은 나이가 많아서 아이들을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경에서 칭찬한다기 보다도 이때에 행했던 이삭의 축복을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여서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하는 것이고 문제는 그들을 축복했던 이삭의 마음, 이삭이 가지고 있는 그 신앙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속여서 축복을 빼앗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통해서 아브라함 가정의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활한 야곱의 방법으로 얻어냈지만 하나님의 커다란 뜻에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려는 계획을 이루어가는 방법이었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기서 칭찬하시려고 했던 것은 이삭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의 믿음은 자녀들이 그 축복을 속였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녀들을 축복할 때 이삭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축복하는 대로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아주 확실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뻐하시는대로 이 아이들에게 축복하고 앞길에 그 축복이 그대로 이어질거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자녀들을 축복하면서도 그 축복이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로서 자기의 축복하는 바를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전적인 의뢰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반대로 믿음 없이 행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사도바울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않는 모든 것이 죄라 말할 정도로 그렇게 믿음을 중요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이 자녀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믿음을 히브리서에서 인정하신 하나님의 큰 뜻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것이 야곱이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한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축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그리고 그 앞에 이삭과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참 공교롭게도 므낫세를 먼저 낳고 에브라임을 낳았는데도 축복해달라고 요셉이 오니까 그 아이들을 장자서부터 축복하지 않고 손을 엇갈리게 두고 축복을 합니다. 그래서 마치 자기가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처럼 야곱이 그와 같은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왜 그러시냐고 하니까 내가 마땅히 할바를 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야곱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에브라임을 더 축복하신다고 하는 계시와 확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었고 특별히 21장에 애기하는 믿음은 마지막에 죽을 때에 자기 자손들에게 자기의 해골을 의탁하면서 간청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애굽이 좋고 훌륭한 곳이었지만 이 족장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 있었습니다. 그 땅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는 그 소망이 바로 땅이 아니라 그 땅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보고 그것을 여기에서 믿음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앞에 나오는 본향이 있었고 그리고 돌아가려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던 아브라함과 사라과 같이 그렇게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더 큰 소망을 가졌던 믿음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루에 한 번씩 우리들이 돌아갈 영원한 본향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아마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사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삶의 동기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직시하는 정직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바라보면서 정직하게 성찰하고 그렇게 하면서 정직하게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 쓸데 없는 것들에게 대한 애착을 면하고 마지막에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하는 나라가 하늘나라라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에 대한 깊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