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2일 새벽예배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히 5:1-2).
대제사장 이야기를 앞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 이제 이 히브리서 자체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기록한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제사제도에 모두 익숙해져 있는 정통 히브리인들 이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제사제도를 가지고 설명 하는데 조금도 이해에 무리가 없고 잘 이해되는 발신자와 수신자였다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실제 자기들의 구약에 전통 속에 있던 그 대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 대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에 정체는 뭐냐 하면 그가 하는 일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 속한 일을 하는 거다. 하나님께 속한 일. 그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 이였는가? 그 제사장에 사명은 선지자의 사명하고 조금 달랐습니다. 기능이 사명이라기보다는 기능이 조금 달랐어요. 그 기능이 뭐냐 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에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나와서 하나님에 뜻을 보여주고 그들에 삶에 맥락에서 율법을 해석해서 선포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그러니깐 선지자에 일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미래사를 예언하는 일과 또 하나는 하나님에 하나님이 그들에 삶을 바라보시는 그 마음을 선포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이미 제시되어 있는 하나님에 말씀을 해석함으로써 그들에게 적용시켜 주는 그런 일들 이였던 것이죠. 그러니깐 당연히 선지자들 편에서는 인간들에 사정이 어떠한가? 그거보다는 인간들에 살아가는 삶에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에 관심이 훨씬 더 집중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서있는 맥락이 전통에 맥락 이였다면 이 선지자들이 서 있는 맥락은 계시의 맥락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최상으로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에 말씀을 그대로 전파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뜻을 알게 하고 빗나간 삶이 있다면 돌이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요한 기능 이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 그리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에 마음 이런 것들이 없이는 그 사역을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 하나님께로부터 깨달을 하나님에 마음 그런 것들을 말씀에 대한 말씀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활용해서 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실제적인 재능과 능력 또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말씀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의해서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이렇게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내적인 쇄신 이런 것들이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런 것들이 없이는 사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제사장은 선지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백성들에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게 아뢰는 그런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제사장 이였습니다. 제사장들을 백성들에 상황과 형편을 가지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아뢰서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도록 기능하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이였죠. 선지자에 직무가 하나님에 말씀을 미래사를 예언하고 또 하나님에 마음을 말씀해석을 통해 전달해 주는 것이 선지자에 일 이였고 그 위에 하나 더 있었으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전파와 기도가 이 제사장이 하는 중요한 직무였다면 제사장이 하는 일은 제사를 드려주는 일과 기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 이였습니다. 획일적으로 그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선지자들은 계시에 편에 서있고 그리고 제사장들은 전통에 편에 서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 앞에 나오는 사람이였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에 형편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 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선지자에 직무가 말씀과 기도였다면은 제사장에 기도는 제사장에 직무는 제사와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사장들에 기능은 죄인이 그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실제적인 기능을 했고 그 일을 위해서 제사장은 헌신적으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능하는 제사장 가운데 특별히 대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제사장 중에서 한 사람이 대제사장이 되는데 이 대제사장은 한명 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제사장하고 비교되지 않는 절대적인 기능이 한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로 뭐냐 하면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기능 이였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에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기능이 있었고 또 이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 갈 수 없죠. 거기서 하나님에 현존을 뵈올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임무요 기능 이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일 이였습니다. 여기에는 예물과 제사라고 표현이 나오는데 그 표현은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대제사장이 하고 있었던 기능을 잘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예물과 제사 예물은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다 던지 감사한다 던지 하는 그런 종류에 제물이고 그 밑에 나오는 것은 속죄를 위한 제물로 이렇게 해석 될 수 있습니다. 그니깐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 사이에 서서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받아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그리고 그 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그들에 죄를 하나님 앞에 대신 간구해서 용서 받게 하는 그런 통로가 되었던 것이죠. 예수님이 바로 이런 모용에 의해서 제시된 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그런 제사를 드려 드리는 기능을 담당하셨다 라는 것이죠. 다만 이제 뒤에 가면 나오겠습니다만 차이는 뭐냐 하면 이제껏 대제사장들이 드렸던 제물들은 우리에 죄를 잠시 속할 수 있는 것이였지만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예물로 드리심으로 당신 전체를 드리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말하자면 훌륭한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에 효과를 가져오는 그런 일을 하셨다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죠.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라는 대제사장이 결국은 그 정체는 어떤 사람이었냐 하면 오늘 앞부분에 나온 것처럼 사람 가운데서 취한자였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사람이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 취한다. 대제사장 마다 사람 가운데에서 취한바 되었다. 그랬으니까 어떻게 어떤 결과가 오죠? 첫째는 그들에 제사가 완전할 수가 없죠. 그렇죠. 한시적이죠. 완전할 수가 없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에는 이 대제사장이 사람이였기 때문에 또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사람 가운데 취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자기가 비록 대제사장이 되었지만은 그 백성들을 하찮게 여길 수 없는 같은 연약한 처지에 사람이였기 때문에 백성들을 향해서 정상적인 제사장이였다라면은 말할 수없는 긍휼을 가진 사람이였다 라는 것이죠. 대제사장이 말할 수없는 긍휼을 가진 사람이였다. 왜? 백성들에 되를 위해 기도해 주지만 백성들에 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주지만 자기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함에 둘러 싸여 있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죄인들과는 구별되어 그들을 위해 예물과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그들에 죄를 속함 받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자신도 사람 가운데서 취한바 되었기 때문에 먼저 자기 자신에 죄를 위해서 제사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에 연약한 사람이였다 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에 모습은 어떤 것들은 예수님과 연결 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예수님과 연결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죄가 있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자신도 죄에 싸여 있는 그런 인간일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은 예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죠.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니깐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 셨기 때문이죠. 그러나 연약함에 둘러 싸여 있는 이 인간에 모습 육체에 연약함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취한바 된 그 모습 이런것들 그래서 그 자신이 연약한 인간으로부터 취한바 되었기 때문에 검지 않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그런 말하자면 형제의 마음 이런 그 죄 가운데 살면서 그 죄를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전적으로 타락한 비참한 모습. 그런 것들에 대한 깊은 긍률은 예수님이 공유하고 계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 몸을 입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에 몸을 입으시면서 그분이 온전하게 배우고 그리고 익혀서 그래서 주님이 참으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기를 적합하도록 자신이 성숙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연약함은 죄는 모르시지만 그 모든 연약함을 모두 경험하시 분이라는 거죠. 그런점에서 우리들이 어떠한 죄 가운데 있고 우리가 아무리 많은 악과 죄로 인해서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삶을 그런 생각을 우리들이 하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한 대제사장이 완전한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서도 죄를 속함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면 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이 대제사장 직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께 이르는 보좌에 이르고 새롭고 산 길을 누구도 막아 놓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산 길이였다고 우리 이렇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