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인내로 약속의 성취를 바라는 믿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1-15).
부지런하게 그리고 오래 참고 인내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을 받는다. 약속은 주어 졌지만 그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런 부지런한 인내 오래 참음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이거죠. 그러면서 이제 그렇게 해야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배교하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께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인내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을 잃어 버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면서 정 반대로 일체의 부지런함으로 참았던 믿음에 사람을 거론 하면서 아브라함을 거론 합니다. 아브라함을 거론을 해요. 그러면서 이제 아브라함을 언급을 하는데 사실 성경적으로 봐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고 아브라함이 사실 실질적인 이스라엘 조상입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노아를 비롯해서 그 나오는 많은 뛰어난 믿음에 인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류 전체의 공통된 조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자신들은 직접적인 조상이 아브라함이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원래 아브라함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백성으로서의 독특한 선택 같은 것들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믿음에 백성들에 계보가 이렇게 내려오지만은 아브라함 때에 이제 분명하게 한 민족의 씨앗으로써 택한 백성의 개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근데 사실 아브라함도 보면 그냥 갈대와 우루라고 하는 곳 지금에 중동지방이죠. 근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인데 거기에서 그냥 살고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 이였죠.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고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자체가 우상들에게 에워싸인 그런 인류 문명에 발상지이니깐요. 그러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거죠. 왜 아브라함을 택했는냐? 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많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있는데 하필 날 택했을까 처럼 그렇게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러니깐 아무나 택하십니다. 그리고 인제 약속을 주시는 거죠. 그러니깐 참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황당했겠죠. 왜냐하면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 나타나셔서 이러게 이렇게 자기에게 말씀하시는데 사실 그 신은 갈대와 오루에서 오히려 생소한 신이였단 말이죠. 그러니깐 하나님이 이제 맹세하시기를 원래 자기보다 훨씬 큰 사람이나 존재를 두고 맹세를 해야지만은 이 말빨이 서는 하나님은 더 높은 존재가 없으시죠. 그러니깐 나에 내가 나에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러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거죠. 그니깐 맹세할 수 있는 궁그적인 마지막 끝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 삶을 두고 맹세 하노니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신 거예요. 그 약속이 뭐냐 하면 너로 민족을 만들 것이다. 바다에 모래와 같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해서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민족을 만들 것이고 니가 그 씨가 되리라 하는 것이였거든요. 근데 사실 아브라함에 입장에서는 그런 약속이 이젠 아브라함을 만나고 나서 그 후에 주어지는데 사실 실제의 상황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는 상황이였거든요. 하필이면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에 모래같이 자손들이 많아지고 그리고 그 자손들이 결국 민족을 이루고 너는 그 맨 처음에 그 씨앗이 되리라 그런 거였거든요. 그러니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은 참 쉽게 믿을 수 없었겠죠. 그래서 아들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을 때에도 이미 벌써 나이가 많아서 늙은 때였습니다. 이 사라가 웃었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주셨거든요. 근데 이 약속은 크게 두 가지로 성취가 되는 거죠. 그래서 가까이에서 볼것 같으면 가까이에서 볼꺼 같으면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약속에 성취였지만 그러나 한 가정에 아버지로서의 아브라함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 그 머리로서의 아브라함에 약속에 성취는 그 후에 백성들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죠. 거기에서 수백만의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더 영적으로 우주적으로 성취된 것은 이제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교회. 그 교회 속에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맺어져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거죠.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상관이 없지만 그러나 그 영적으로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근데 그 때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리는 것. 그래서 이삭을 주기까지도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연대를 지금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에 모래와 같이 많아지리라 라고 약속을 받은 이후로 실제로 독자를 낳고 그리고 그 자식들이 번성해 가는 그것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브라함을 그렇게 바다에 모래와 같이 많아지는 것을 다 보지 못하고 죽었죠.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그는 그 하나님에 약속을 믿은 사람으로 여기에 인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약속을 믿으면서 산다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아브라함의 삶을 본다라고 할꺼 같으면 단순히 그 약속을 받음으로서 자동적으로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받고 그것이 성취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부지런함으로 그 약속을 받은 사람 답게 살았고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산 거죠. 그러면서 히브리서 11장에 의하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육에 본향보다 영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런 영적 순래자로서 그런 삶을 산거죠. 그건 모두 하나님에 약속을 붇들고 산 그런 삶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는 그 의미는 바로 이렇게 주님이 주신 그 약속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할지라도 이루어 질때까지 자신이 순종과 부지런함 그 위에 한번 더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메달리는 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그렇게 신앙이 견고해져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약속을 받고 그 일이 이루어 질것이라는 걸 굳게 믿으면서 그러면서 약속 때문에 오히려 더 안주하는게 아니라 약속 때문에 믿음에 마음은 더 견고해지지만 삶은 부지런해지고 소망을 품고 그래서 그 약속이 이루어 질때까지 만나는 어려움들을 일체의 인내로 극복하고 견디면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런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