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6일 새벽예배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히 7:14-17).
계속해서 앞에서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도가 계속해서 레위에 지파를 쫒아서 난 제사장과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을 비교를 했습니다. 말하기를 율법은 육체에서 육체를 따르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율법이 육체를 따랐다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우선 첫째는 율법을 육체를 따랐다 하는 이야기는 첫째는 율법에 관심사가 하나님에 법을 사람 바깥에 새겨서 돌에 새긴 거죠 그걸 그걸을 통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에 법에 맞게끔 살아가게 하는데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결국은 육체를 따랐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처음 하나님이 창조 하셨을 때 아담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법이 마음에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그럴 수 있는 마음에 법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게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법을 바깥에다 세운 거죠. 그런데 하나님에 뜻은 이것이다 라고 율법이 보여줬는데 이 법이 무너지니깐 그 다음 이거를 행할 때 이거를 행할 때 이걸 행할 수 있는 이게 없는 거에요. 그러니깐 밖에 새겨진 하나님에 법도를 따라서 살려고 하면은 이게 이 안에 하나님에 법이 있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렇게 살게 되는게 아니라 여기에 법이 있고 이거를 내가 이행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게 육체를 따르는 것이다. 육체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에 목표 자체가 하나님이 내 뜻은 이것이다 라고 돌에다 새겨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에 목적 자체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였어요. 뭐냐 하면 그 율법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고 자신에 힘으로는 하나님에 그 법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거였거든요. 근데 그것들 제시해 놓고 인간이 그거를 지키는데 그게 인간이 불가능해지는 거죠. 그러니깐 하나님이 이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새 법을 심으시는 거예요. 이게 믿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과 성령에 법이라는 것이죠. 근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육체를 따른 것이였다 이거죠. 두 번째로 뭐냐 하면 레위지파에 후손들이 제사장에 직분을 취하게 되잖아요. 계속해서 이거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특별히 교제하고 하나님에 마음에 합당하고 그런 것과 상관이 없이 아버지가 제사장이니깐 내가 그 집안에 제사장이 되는 거야. 근데 이게 육체를 따라 오는거란 거죠. 그런데 멜키세덱은 그런게 없어요. 우선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 그런 정식에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 제사장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제사장이 됐단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았냐 하면은 육체로 쫒아 난 그 제사장으로 레위에 후손들을 거론한 거고 이 멜키세덱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 되었는데 생명에 능력으로 쫒아 난 제사장이다. 그렇게 본거죠. 그래서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 제사장이 있었는데 이 제사장은 생명에 능력을 쫒아 난 사람으로서 생명에 능력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에 역할을 한 그런 존재였다 이거죠. 근데 이제 그 얘기를 왜 꺼냈냐 하면은 시편에 보면은 시편 14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내가 영원히 멜키세덱에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여기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란 말이죠. 그러니깐 이렇게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어차피 새 언약을 우리에게 세우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고 율법을 완전히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굳이 레위지파에 반차를 쫓아서 나실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레위에 반차를 쫓아서 난 제사장들은 모두 육체를 따르는 율법 육체를 따르는 법으로 말미암아 난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그런 종류에 제사장으로서 육체에 법인 율법을 통해 세워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멜키세덱이 그러했던 것처럼 생명에 능력으로 쫓아서 대제사장이 되신 분이시고 그랬기 때문에 그분이 굳이 레위지파에 허리에서 나오실 이유가 없었다. 이거를 증거하는 것이 너는 멜키세덱에 반차를 쫓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 이것이 이미 구약에 시인들을 통해서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된 것이라는 거죠. 아직까지 레위 자손에 의해서 제사가 드려지고 또 제사장이 생겨나든 바로 그 시기에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이 시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키새덱처럼 오실 것을 예언했다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레위지파에 태어난 제사장하고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리고 따라서 그분이 영원한 생명에 능력을 쫓아서 오셨기 때문에 그 분에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영원히 단번에 그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에 죽음이 이처럼 아주 독특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죽음이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죽음이기 때문에 이렇게 값진 것이고 또 우리가 우리에 구원과 속죄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예수을 높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가 나오냐면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 속에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기능이 있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제사를 드려서 그래서 제사를 드려서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그런 기능 이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그런 기능 이였는데 근데 그 율법 속에 그런 기능이 있었는데 그 율법은 일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것 이였고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율법 그 자체가 주어질 때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그런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에 법이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보여 주어서 그래서 그 법을 보면서 인간이 그것을 행하려고 하죠. 행하려고 하는데 결국은 그 법과 법에 엄중함 그리고 그 법에 무서움을 보고 그것을 행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결코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 법을 행하지 못하거나 어기면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건데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은데 하나님에 진노 아래 있어 이게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거를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제 3에 다른 은혜를 구하게 되는. 그 때에 보여주는 복음적인 방법이 뭐냐 하면 율법을 통해서 이미 어떻게 보면 은 율법에 원칙에는 맞지 않는 자기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위해서 대신 희생 제물을 드리고 용서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예요. 율법 속에 들어 있지만 복음적인 얘기란 말이에요. 그렇게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도 결국 뭘 느끼냐? 하면은 완전하지 않다 라는 걸 느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에 용서를 받고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지만 즉시 다시 죄를 짓게 되면서 다시 그 율법에 판단에 따르면 은 다시 정죄가 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계속 되풀이 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이 용서를 해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은 내가 하나님 앞에 영원히 용납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들을 통해선 우리를 도저히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 폐하고 그리고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신 거예요. 그걸 차례차례 논증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국 원하시는 것은 처음 일련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과 맺으셨던 그런 가족관계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또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이 창조 하신 이 온 세상을 맡기신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을 다스려가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그런 사모함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제 이 세상을 창조하고 또 맡기신 거거든요. 그거를 회복하는 길이 뭐냐? 바로 율법으로 완전히 이룰 수 없었던 그것을 영원하신 제사장이신 멜키세덱에 반차를 쫓아 율법에서 육체대로 오신 제사장이 아닌 생명에 능력으로 오신 제사장에 의해서 영원한 속죄를 받고 그리고 언제든지 그 보열에 피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죠. 이 하찮은 짐승에 피가 일시적으로나마 우리에 죄를 용서받게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했다면 사람도 아니시고 죄 많은 사람도 아니고 완전한 인간이신 동시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그 보열은 우리를 영원히 단번에 우리에 죄를 속하게 해서 하나님을 언제든지 뵈올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왜 불가능 하겠느냐? 바로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새로운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신 거예요. 근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은 속죄의 길에 대해서 감사하는 비결은 뭐냐 하면 그것을 항상 누리면서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영원히 단번에 구속에 길을 열어주셨으니깐 그걸 누리면서 사는 거예요. 누리면서 산다는 건 뭐냐 하면 다시 또 다른 제사가 필요 없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이 화목하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가고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원히 단번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깐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 사람답게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이거죠. 그리 살아가야 한다. 한 여인이 혼자 살 때는 그냥 살았지만 한 남편에게 받아들여지고 난 다음에는 다른 의무들이 생기고 또 다른 삶이 있어야 되잖아요. 아무 때나 친구들 집에 가서 자고 안 들어오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랬듯이 길거리에 고아로 있다가 한 집안에 아들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은 그 아들답게 살아가야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주셨으니깐 그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사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