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5일 새벽예배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 8:6-7).
신에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셨죠. 상세하게 하나님 성막을 말씀하시고 성막을 말씀하실 때에 가장 중심적인 요점은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주시겠다 라는 약속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제사를 통해서 성취되는 것 이였거든요. 그러니깐 성막이 있고 성막에 가장 중요한 요점은 하나님이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겠다라는 것이였고. 하나님이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제사가 필요했죠. 그리고 그 제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가 있어야 했죠? 그렇죠. 제사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근데 그 제사장은 임무 자체가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게 하는 한 통로의 역할을 했던 것이죠. 제사를 통해서.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중보라 이렇게 부르는거죠. 그래서 제사장들이 직접 중보가 되는 것은 아니였지만은 그러나 제사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돕는 다는 의미에서 일종에 중보자적인 역할을 어느정도 한 것이죠. 근데 오늘 인제 성경에서 말하는 건 뭐냐 하면 그 예수님도 그렇게 해서 제사장에 직분을 얻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는데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하늘 보좌에 우편에 오르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주신 것은 그 신에 산 모세에게 지으라고 명하신 성막사건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제사장들의 중보자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였다는 거죠. 어떻게 다르냐 하면은 인간 제사장은 중보에 역할을 했지만 자기가 완전히 중보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것을 돕고 헌제자가 그 제사를 드릴 때에 그 제사 드리는 것을 도움으로써 하나님 앞에 그를 연랍되게 했다 라는 점에서 보조적인 중보자 역할을 한거죠.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제사장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간게 아니라 제사장이 없으면 제사가 불가능 했지만은 제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갔으니깐 어떤 의미에서 그 중보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선지자가 한 제사장이 한 것이지 제사장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연랍된 것은 아니였거든요. 제사가 필요한 중보에 행위를 통해서 제사장에 도움으로 하나님께 연랍되게 만들었다 라는 점에서 그렇단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달라요.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그렇게 중보자가 되신 분이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용납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중보 되도록 돕는 보조적 역할을 하신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중보자가 되셨던 거죠. 그런 점에서 이 땅에 있는 율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제사장에 중보적 입장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해서 에수님이 중보에 직분을 얻게 되었고 그리고 인간 제사장들은 자꾸 죽잖아요. 그러니깐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서 제사장이 되고 또 죽으니깐 또 대를 이어서 제사장을 하고 그랬는데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니깐 그래서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 중보자가 되셔서 이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영원한 중보가 되심에서 다르죠. 또 그 처음 약속을 따라서 제사장이 된 사람들은 흠이 있는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제사를 먼저 드리고서야 우리에 제사를 위해서 봉사해 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영원까지 완전하신 분이였단 점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중보자 되심은 인간들과는 달랐다 이거죠. 그래서 하늘보좌에 이르셔서 그래서 우리에 중보자가 되셨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처음 약속과 나중 약속을 다시 대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에 처음 약속이 무음하였더라면 두 번째 약속이 필요 없을꺼다.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지는 새 언약이 필요 했다 이런 이야기죠. 첫 번째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 나는 너에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그리고 거기에는 순종이 담보로 잡혀 있었습니다. 순종하면 그러면 율법에 순종하면 난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이렇게 순종이 담보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처음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죠. 그래서 불순종하고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트렸죠. 그래서 결국은 그 하나님이 그들에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에 백성이 되겠다는 그 약속이 성취가 될 수 없었어요. 성취가 될 수 없었어요. 근데 이것을 오늘 성경은 뭐라 그랬냐면 약속이 무음하였다면 무슨 뜻이냐 하면은 만약에 그 처음 율법으로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언약에 흠이 없었더라면 이 뜻이거든요. 근데 사실은 흠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한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이것을 흠이라고 표현 한 이유는 뭐냐 하면 인간을 온전히 구원해 내기 위해는 이 율법가지고는 안되었다. 그걸 이야기 하는 거죠. 왜? 율법에 기능 자체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그 죄를 용서 받고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그런거는 아니였다 이거죠. 그랬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죠. 그래서 이것을 흠이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는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 문제도 포함 돼있는 거죠.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죄를 고백하며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줄 때에 그 제사가 그에 죄를 영원히 완전히 단번에 속죄할 수 있었다면은 흠이 없었을 텐데 죄를 용서해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에 계획은 보였는데 그러나 제사를 통해서 용서를 해주시는 그 용서는 완전히 인간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영원히 단번에 속죄받도록 만들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사가 자꾸 여러번 같은 사람에 의해서 반복되어야 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것을 흠이라고 본거죠. 왜냐하면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존재이고 그리고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존재인데 근데 그 죄를 속하는 제사의 효과는 영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때문에 처음 약속이 흠이 있었다 하고 본거죠. 그러면 이제 여러분에게 이런 의문이 제기 되잖아요. 아니 그럼 왜 처음부터 그런 흠이 있는 것을 주시냐? 처음서부터 완전한 것을 주시지 왜 그런 흠이 있는 것을 주시냐? 그 이유는 흠이 있는 약속을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그 약속을 지키기가 힘들고 그리고 그 흠이 있는 율법을 통해서 죄 용서를 받을 때에 그 죄에 용서가 얼마나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면 그러나 그것이 율법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예수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정한 흠이 있는 그 첫 약속을 인간에게 주신 거죠. 그러니깐 첫 약속을 주신 이유는 둘째 약속에 감격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첫 약속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첫 약속 안에서 그에 첫 약속에 한계를 느끼면서 그러면서 보다 완전한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로보게 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이제 새 약속을 언약을 주신거죠. 이것이 두 번째 언약이에요. 그 언약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하신 말씀 중에 요약이 돼있죠. 이 피는 너희를 위하여 세우는 바 나에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세우는 바 나에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래서 두 번째 언약은 이제 예수님에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와 맺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 언약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성취하셨기 때문에 제사장과는 비교되는 않는 보다 완전한 중보에 지위를 얻게 되신 것이죠.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되는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님에 중보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죠. 우리에 섬김과 우리에 찬송과 우리에 봉사가 흠이 있고 모자란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고 우리는 그런걸 받을 만한 자격이 없고 의로움이 없고 정결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사랑과 은혜를 입고 그 은혜와 사랑을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는 자격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예수니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가 되셔서 그래서 모든 것들을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받고 모든 것들을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중보가 되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나 혹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 의로움이 없다고 느낄 때 양심과 율법에 송사를 받고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때에 우리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분이 계시니 그 분이 그리스도시다 라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언제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와 그리고 은혜를 얻게 된 것이죠. 이게 바로 흠이 있는 첫 언약이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두 번째 언약이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