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22일 새벽예배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2-14).
옛 언약 하에서 드린 제사장들의 일시적인 속죄 일시적인 속죄가 있는 그런 제사와 그 다음에 영원한 속죄가 있는 영원한 속죄함을 가져다주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사를 비교하고 있는 겁니다. 비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그 속죄의 제사는 어 자기를 하나님 앞에 그 헌신해서 어 제물로 드려서 하나님 앞에 바쳐진 속죄거든요. 제사장이 짐승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는 죄를 없게 할 수 없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죄를 일시적으로 용서해 주셨지만 실질적으로 자신 속에 있는 죄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며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이라든지 혹은 어 그 죄를 용서해 주심에 있어서도 그것이 잠시 일시적으로 지워서 용서해 주시는 것이었지 영원한 용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죄의 용서의 측변에서도 자신 안에 내제하고 있는 죄와 더불어 그 죄를 죽일 수 있는 싸움을 위한 원동력도 주어지지 않았다 말이죠. 옛 언약 하에서 율법의 목적 자체가 그런데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러한 이유 때문에 죄를 없이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얘기 한 거죠.
그러면서 이제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면서 새 언약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행위를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앉으셨다, 그 담에 기다리신다, 그 다음에 온전케 하셨다. 이렇게 되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옛 언약에 제사에 비해서 또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죄의 용서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깨끗케 하심을 가져왔다. 완전히 깨끗케 하심을 가져왔다라고 하는 것이고,
그 담에 두 번째는 뭐냐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깨끗케 하셨을 뿐 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그렇게 완전히 깨끗케 하신 제사를 드린 후에 보좌에 앉으셨다. 그래 여기서 앉았다라고 하는 의미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제 앉았다 하면은 일이 끝났다라고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은 보좌 위에 서신 예수님을 본다. 그러면서 스데반의 언급이 나오죠. 그건 뭐냐면 예수님이 보좌에서 일어 서셨다라는 이야기는 뭔가 당신이 간여해야할 특별한 일이 생겼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거든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일어나서셔 스데반의 영혼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오죠. 근데 이제 여기에서 나오는 앉으셨다라고 하는 것은 어 속죄 제사의 측면에서는 그 일이 모든 완성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지만 또 그 모든 제사를 완성하시고 보좌에 앉으셨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떤 권위를 취하신 것을 가르키는 거죠. 그래서 그런 표현이 누가 그 보좌에 앉았다 왕의 자리에 앉았다. 이 얘긴 뭐냐면 권위를 취하고 권세를 가지신 것을 그러니까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그런 문맥이라 이거죠. 그래서 그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시는 거죠. 그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 속죄가 끝난 후에 하늘 보좌에 앉아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다음에는 오셔서 속죄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는 아버지에게 온 우주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스릴 수 있도록 그렇게 위탁을 받는 거죠. 그러면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거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보좌에 앉으신 다음에 그 다음에 기다리시는 거죠. 원수들이 자신의 발등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라고 하는 말은 그 원수들을 굴복시킨다라는 의미예요. 이건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그러시면서 이 온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면서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성도들을 대적하는 악을 꺾고 또 죄를 이기게 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치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근데 여기서 기다리신다. 아무 일 안하고 마치 대적이 발등상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는데 그건 뭐냐면 완전한 승리라고 하는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거죠. 이 세상엔 아직까지도 주님이 다스리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악들이 남아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남아있어요. 그것 때문에 경건한 성도들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깨어져 살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생활하고 있죠.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은 어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시고 그리고 그 원수들을 발등상 아래 발등상이 되게끔 그렇게 무릎 꿇게 만드실 거예요. 그것을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과 관련이 있다는 거죠. 왜 그렇게 우리의 영원한 죄를 위해서 속죄하심으로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그 권세를 그 주셨고, 또 그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수많은 믿은 자들을 통해서 수많은 선택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부르시고 그리고 구원할 자들을 다 구원하시고 마지막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이 세상의 모든 원수들을 혁파하신 것입니다. 그래 마지막에 이제 거룩하게 하셨느니라 완전히 거룩하게 하셨느니라 온전케 하셨느니라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그랬죠. 이제 이거는 이런 의미가 있는 거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온전해 졌나요? 거룩하게 되어진 것은 또 거룩하게 되어 졌나요? 어떤 면에서 보면은 거룩하게 되어졌고 또 어떤 면에서 보면은 아직 안 되었고 온전케 되었냐 그럴 때 어떻게 보면 되어졌고 어떻게 보면 안 되어 진 거거든요. 예를 들자면 구원 받은 신자가 정말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라고 물으면 아직은 아니죠. 그러나 구원 받은 신자의 마음속에는 거룩하게 살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소원이 주도적으로 그 사람 마음속에 역사한 거예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미 그 성향은 완성된 성향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거는 그가 어떤 죄 가운데 빠져도 돌이킬 수 없는 성향 이예요. 잠시는 죄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속에 흐르고 있는 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 싶다 라고 하는 이 재창조되는 영혼의 거듭난 소원은 결코 폐기 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소원 이예요. 그리고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말하자면은 주도적 성향이라 이거죠. 그 성향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뭐냐면. 거룩하게 된데다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것도 마찬가지죠. 구원 받은 신자가 온전하냐 온전하면 회개할 필요가 없죠. 깨어질 필요가 없고 온전 하면은 그런 건 필요가 없죠. 결코 온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하고 가르치는 거죠. 그런 점에서는 온전케 되지 않았죠.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가 하나님 앞에 자녀이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 그가 지금 짓고 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이 마지막에 그 영혼을 버리시지 아니 하신다는 사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미 온전케 된 사람이죠. 그러니까 이미 거룩해 졌고 이미 온전케 된 사람, 아직은 거룩하게 되지 않았고 아직은 온전함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또한 이미 온전케 되고 거룩하게 된 사람, 그러니까 일회적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이 히브리서 기자가 거룩하게 이미 되어졌고, 그리고 온전케 되어졌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서 살 수 있게끔 해주신 그 변화가 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에 우리들이 정말 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지 않는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죄를 택하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살려고 하는 우리의 그 고집 때문이지 우리 안에 있는 그 단순한 연약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다.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그를 거룩하게 하셨고, 또 이미 그 속죄를 통해서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일매일 위로부터 내리는 그 은혜를 입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