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새벽예배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9-11)
녹취자: 박미은
여기에 보면 이제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고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모인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 쭉 권면이 되는데 어느 한 동리 인근에 모여 있는 마을이 아니라 로마제국 전체에 퍼져 있는 것입니다. 이쪽으로는 옛날 헬라 땅으로 부터 시작을 해서 저쪽으로는 애굽 땅까지 알렉산더가 마지막으로 정복했다고 하는 그 애굽 땅까지 전 로마 전역에 퍼져있는 각 지방의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언어가 원래 하나이기는 했지만은 시간이 지나면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진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화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히브리어를 비롯한 생족 언어와 나중에 인도 유로피안 어족의 근원이 되는 히랍어, 라틴어 거기에서 이제 영어니 불어니 독일어니 에스파냐어니 전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의 구조 자체가 워낙 다른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씨앗이 되는 많은 나라 사람들의 언어들이 함께 사람들에게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직접 사람이 말한 방언이라기보다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청취력의 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은 동일하게 했는데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들을 때에 자기의 말로 들리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기적을 베푸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혀의 저주가 풀린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은 귀에 문제라기보다는 혀의 문제이고 언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은 청취력의 기적이라기보다는 말하는 것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며칠 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이미 코인의 헬라어가 제국 전역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이제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 성령의 임하심과 함께 복음이 전파되고 전파된 것이 어디까지 전파될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방언을 받으면 외국 사람하고 자기가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한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이 방언의 은사에 목적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사람들이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사람은 이런 나라말로 또 어떤 사람은 저런 나라말로 이렇게 방언을 하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혹은 한 사람이 방언을 하는 가운데 잠깐 동안은 A나라 말로 또 잠깐 동안은 B나라 말로 이렇게 방언을 했다 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제 이때에 임했던 방언과 고린도 교회에서 경험했던 그 방언 사이에는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면에 있어서는 동일한 측면이 있지만은 의미가 좀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첫째 사건은 사람들이 그것을 계속 소리로 해서 그 방언을 가지고 무엇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성령이 강림하시면서 입으로 이 성령이 복음을 통해서 각 나라 모든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계시적인 사건이었고 고린도 교회에 임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성령의 은사는 이미 질에 있어서도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방언보다는 훨씬 떨어지는 것이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방언의 목적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신령한 세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그런 역할을 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속성도 있고 불연속성도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사람들이 들었던 이 방언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도록 계속 되는 이야기였는지 아니면 잠깐 동안 계속 되는 이야기였는지는 우리가 여기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상당한 시간동안 이들이 각 나라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들의 말로 방언하는 것을 이들이 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들이 언어는 달랐지만은 그 내용은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은 그들의 고백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큰 일 말하는 것을 듣는도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그들의 방언의 핵심 이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통해서 무슨 내년에 복을 받을 것이니 무슨 후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니 하는 그런 내용들이 아니라 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함께 임한 방언의 놀라운 역사는 아주 정확하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것을 보더라도 방언을 주신 목적 자체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혀의 맺힌 저주를 푸시고 그 풀려진 혀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들을 말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뒤에 가면은 본격적인 이 장면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예수의 구속과 부활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힘이 없어서 사람들에 의해서 강제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었다고 하는 사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죽으심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효력 그리고 그 십자가에 죽음 후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살아계실 동안에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던 모든 진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 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런 큰 일이 바로 이 수많은 방언을 통해서 쏟아져 나온 동일한 증언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어느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든지 간에 그 핵심이 모두 동일할 것이라고 하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로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그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을 말하는 이 두 개가 항상 짝으로 움직인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령을 받았다 그 얘기 하는데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속의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임했다고 하는 사인(sign)이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을 거룩하게 살아가는데 기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허망함에 들뜨고 마치 성령이 자신에게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을 자기 번영의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마치 마술사 시몬처럼. 이런 것들은 모두 신뢰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인데 우리가 못 믿겠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성령의 역사인지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드는 사인(sign)들이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임하면서 부터 이 하나님의 큰 일 말하는 것과 성령주심이 동일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후의 모든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예배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떻게 예배드리는 사람이라고 그랬습니까? 영과 진리 안에서 영은 성령의 역사이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10월부터 배우게 되는 목양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은 사람을 세우시는데 그 사람을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으로 삼으시고 그 진리를 증거하고 가르칠 때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목양을 받는 성도들을 변화 시키십니다.그래서 여기에서도 똑같이 사람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짐으로써 사람이 변화되고 사람에게 목양을 받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성령과 진리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벌써 그것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함께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타나 보여주는 것이 결국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핵심이 하나님의 큰 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의 가르침을 진실한 하나님의 아들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그것이 진리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진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서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로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이렇게 그리스도예수의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일에 대한 간증이 생기고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이 크고 놀라운 사랑, 십자가에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이것을 외치고자 하는 그런 갈망이 생겨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성령을 주신 이유이고 거기에 메여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