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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새벽예배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행20:33-35)
녹취자: 박은경
그들이 떠나고 나면 이단들이 오고 이제 그들을 어렵게 할 것인데 이런 어려움이 생길 때에 해결의 길이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고 말했는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그 어떤 창이나 칼보다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창이나 칼을 들이 댄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가 지었던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그것은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힘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해서 자기 속에 하나님 사랑이 들어간 사람들, 그 사람들 안에 있는 사랑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아무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으면서 주님이 그에게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을 주시면서 ‘뽑고 파멸하며 심고 건설하기 위해서 내가 너를 이 세상에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이 세상의 질서들을 말씀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놋기둥과 같이 만들리라’고 하십니다. 기둥이 놋으로 되어 있으니 얼마나 단단하겠습니까? 이것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칩니다. 무너지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와서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칼 한 자루, 창하나 들려주시지 아니하고 그에게 있는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이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감화시킵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에 굴복하지 않으면 핍박을 받습니다. 바로 그런 이치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성령과 하나님의 진리에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로 조직된 교훈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말씀의 힘이 마음과 영혼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꺾고 하나님 앞에 순종할 줄도 알고 변화될 줄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꺾여지지 않는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말씀에 꺾이지 않는 사람들은 육신으로 행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꺾이고 영으로 행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대담합니다. 결국 모두 죄를 짓고 거기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따라서 그들의 죄에 대해 갚으십니다. 때로는 그것이 매우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꺾이지 않는 사람들의 선한 행실은 육에서 나오는 행실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오게 될 때 무엇으로 그것을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창, 칼로 물리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가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3년동안이나 눈물로 각 사람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했는데 사람은 사라져도 말씀은 회중들의 가슴에 남습니다. 그 은혜의 말씀이 역사해서 그 사람의 가슴 속에 남아서 움직이게 되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로 조직된 교훈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일어나고 신앙을 흐트러뜨리고자 하는 많은 시도들이 일어날 때 그 사람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로 조직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되 흐트러진 것들로서가 아니라 진리로 잘 조직된 가르침을 받아서 그 교훈이 자기 안에 꽉 차게 세워진 가운데 그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이런 것들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는 그것과 함께 또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모본, 사랑의 실천입니다. 앞에 것이 진리로 조직된 교훈이라면 뒤에 나오는 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랑의 모본이 되었던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때부터 한없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내가 금이나 은이나 의복이나 탐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탐해서 무엇을 뺏었다’라기보다는 ‘마음 안에서 저 영혼들이 변화되면 충분하다’는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물질의 문제에 있어서도 자기의 동행들의 쓸 것을 스스로 공급하는 모본을 보이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모본입니까? 이것이 바로 진리로 조직된 교훈과 함께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이며 진리로 조직된 교훈과 함께 자신을 다 드려 섬기는 신실한 사랑의 실천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입증했기 때문에 에베소에서 커다란 복음의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들, 무엇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 채워지고 그 위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채워져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