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새벽예배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
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 대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 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행 22:17-29)
녹취자: 김은정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경륜과 계획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사도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하셨는가에 대한 배경이 나옵니다. 회심을 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가 있을 때에 비몽 사몽 간에 이 성을 빠져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대인들이 비록 바울이 회심했지만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의 마음 속에는 사울이 한 일이 워낙 자신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일이었고 또 그렇게 자신들이 믿는 기독교 신앙을 박해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선동한 지도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쉽게 바울의 회심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이제 스데반이 죽는데 가편 투표를 하고 또 그 의인을 죽일 때에 자신이 그 증인들의 옷을 맡아가지고 있었으니 사실상은 자신도 스데반의 순교에 참여한 의인을 죽게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리스도인인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사울이 자신들에게 행한 일이 너무나 악한 일이고 그리고 혹시 이 사람이 회심했다고 하더라도 이 회심을 전적으로 신용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배경을 다 가지고 이제 이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가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사실 하나님이 하시려고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 믿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이 사람을 영접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렇지만 주님이 선택하신 많은 제자들 중에 특별히 사도 바울만큼 이방에 나아가서 이방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유능하게 전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로마를 배경을 하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헬라 곧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종교적으로는 유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변화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가장 멸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메시야 일 수 없다고 생각하던 편견에 사로잡힌 이 사람을 변화시켜 서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살아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부활하신 것을 이 사람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거룩한 복음 사역을 위해 이처럼 훌륭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증언을 하는데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바로 이지점 까지 참았지만 여기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까 소리소리 지르면서 이제 이 바울을 없이하자고 고함을 쳤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의 악함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의 마음의 가지고 있는 이 편견은 모든 진리를 올바로 보게 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거침돌이 됩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잘못 알고 그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보면은 식자들에게 도저히 먹혀들어가지 않는 복음이 때로는 정말 무지하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원래 집을 지을 때에도 제일 좋은 것은 맨 땅에 대지로 있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건물이 있으면 그것이 짐이 됩니다. 건물이 자신의 용도에 딱 맞게 존재하는 그런 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주 드뭅니다. 그 건물을 가지고 자신들이 의도하고 지은 집을 그 땅에 만들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천장이 이렇게 낮아서 말입니다. 이게 바로 한계입니다. 그런데 사람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님 앞에 깨뜨려진다. 자신을 허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허문다는 것은 자기사랑을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편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주님이 가르쳐주시면 내가 받아들이겠습니다하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어쨌든 격렬히 죽여 버리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렇게 군중들이 날뛰게 되면 당시 지도자들은 군중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폭동 비슷한 것이 일어날 때 군중들이 자신을 두둔해 지길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아무런 죄도 찾을 수 없었으나 사도바울을 묶고 채찍질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고난을 계속 당하고 있던 바울이 한마디 입을 엽니다. "내가 로마 사람인데 죄도 정하지 않고 나를 채찍질할 수 있느냐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은 원래 로마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는데 그것이 나중에 돈을 가지고 사기도 했지만 일등 국민이었습니다. 그중에 특별히 로마 시미권을 가진 사람들은 일등 국민이었습니다. 옛날에 일본이 대동화 전쟁 때 아시아를 전부 삼키고 어디가든지 대접을 받는 일등 국민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이등국민쯤 되었을 것이며 저 밑에 있던 나라들은 삼등국민쯤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똑같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등 국민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권한들이 주어졌습니다. 원래 로마가 역사적으로 보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오래가는 제국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황제가 있었지만 공화정이었습니다. 황제 혼자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원로원이 있고 호민관이 있고 권력들이 나뉘어졌습니다. 로마에 가보면 황제가 있었던 곳이 실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중국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 대신에 한 사람이 권력을 모두 갖고 있지 않고 서로 견제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입니다.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의 권한을 인정하였습니다. 황제가 얼마나 높은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재판에 불복하면 황제에게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으므로 엄청난 권한이었습니다. 이 사도가 바로 그러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겁이 덜컹 났던 것입니다. 재판에 정식으로 청구하고 나아가서 황제에게까지 호소하게 되면 자신들이 정당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이유 없이 학대를 한 죄로 심문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사도바울의 자세를 보면 처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사실을 이용해서 고난을 피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이러한 세상의 권한도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을 하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 좋은 여건, 우리들에게 주신 재물과 사회적인 지위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을 위해 쓰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난을 받고 시련을 당하는 동안에 로마 시민권을 사실을 내세워서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지막에 자기를 희생하여야 하는 그 순간에 자기를 다 희생하고 주님의 사명을 더 이루려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이 사실을 사용해서 자신이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는 지혜를 우리들이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교훈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쓰여지는 그러한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