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앙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서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 하는 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1-15).
이제 변론을 통해서 스데반을 꺾어보려고 했지만 스데반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그다음에는 거짓 증인들을 내 세워서 스데반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서 이 사람을 모함하게 된 것이죠. 이로서 이제 스데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거짓말을 하는 것, 특별히 있지 않은 거짓말을 증언으로 삼아서 그 증언 때문에 사람을 죽게 하는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결국은 그 죽음의 피가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무서운 범죄였습니다. 지금 이들이 스데반에 대해서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뭐냐면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가르침과 어긋난다. 예수를 전하고 그리고 그의 속죄와 부활을 전하는 그것이 율법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그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신성하게 생각하는 율법이 정말로 심각하게 금하고 있는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그것을 어기고 더군다나 거짓 증거 하는 목적 자체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그 방법이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사람을 거짓 증거로 해서 억울한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오는데 그런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이들이 율법을 말로는 그 율법이 중요하고 그 율법에서 어긋났다는 것 때문에 스데반을 미워하면서도 자신 안에 그 율법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 사람들이 사악하고 나쁜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열심으로서만 그가 믿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반드시 그 뒤에 참된 신앙의 열매가 따라야합니다. 그 참된 신앙의 열매가 따라야 하고 그 참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그 참된 지식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참된 지식을 가진 참된 신앙인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볼 때에 이제 오늘 여기에서 스데반을 모함했던 사람들은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스데반이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 영혼, 그리고 그의 온 삶이 그 참된 신앙에 지배를 받는 것이고, 그 참된 신앙은 반드시 참된 지식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식이 없이는 거룩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참된 지식이 있고, 거기에 비로소 참된 거룩이 존재하고 그리고 은혜의 경험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필수적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 보니까. 이렇게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에 스데반의 모습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얼굴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얼굴이 천사와 얼굴과 같더라.” 그랬습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떤 모습일까요. 여기에서 어떤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천사의 얼굴에서 탐욕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천사의 얼굴에서 찾을 수 없죠. 지극한 평강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지금 참소하고 있는 이 죄목이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이 사람을 참소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화, 흐트러지거나 깨지지 않는 완전한 평강을 나타내 보이고 자랑하는 이것이 바로 스데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스데반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뭐냐면 참으로 참된 신앙을 가지고 지식에 대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놀라운 평강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천만 인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선다고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거나 요동치 아니하리라. 라고 하는 고백이 지금 여기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자신이 옳고,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 편에 서 있고, 하나님이 자신을 인정해주니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정죄하기 위해서 들끓는다고 할지라도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이 가지고 있는 강한 힘입니다. 이 세상에 환란과 시련, 혹은 죽음의 협박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평안, 참된 평강,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요.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경건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데반이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7장에서 이어지는 설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 사람도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똑바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선명하게,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알게 되자. 그에게 유대교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성경의 중심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다음에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그렇게 하나 된 가운데 누리게 되는 그 놀라운 평강, 기쁨,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흔들림에 의해서 요동하지 않는 그 하나님과의 관계와 신앙, 이런 것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된 신앙을 갖지 않으면 이 무서운 시련과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어려움 속에서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런 담대함과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참 신앙이 필요하고 진정한 거룩이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올바른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인생 전체를 걸고 사야 되겠다. 라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