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31일 새벽예배
“예루삼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2-24).
드디어 이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는 고넬료 집안의 성령 부어주시는 사건은 하나의 시초일 뿐이었고 그 이후에 제자들이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니까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지만 그 후에 헬라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회개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소식들을 그들이 듣게 되었을 때 ‘과연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그 일이 진짜 하나님이 하신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겠죠.
그때 아직까지도 교회가 세세하게 조직이 잘 짜여지지도 않고 여러 가지 미숙할 때인데도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나 보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렇게 이방인들에게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고 교회에서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이 바나바는 이미 벌써 사도행전 4장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예루살렘교회의 유력한 인사였습니다. 원래 바나바라는 이름 자체가 ‘바르나바’ 에요. ‘바르’ 는 아람어로 ‘아들’ 희브리어의 ‘벤’ 이라는 뜻이에요. 아들이라는 뜻이고 ‘나바’는 위로하다는 단어에요. 그래서 위로하는 아들이에요. ‘위로의 아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권위자라 권고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아들이다. 그렇게 번역이 되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은사였죠. 그래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잘 권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탁월한 재능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교회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져서 이제는 사도가 아닌 다른 제자들이 복음을 전해도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낸 사람이 바나바 이였으니까 바나바가 얼마나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참 훌륭하게 이 바나바가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가서 이제 확인을 하는 거죠. ‘정말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는가?’ 그리고 ‘성령이 임한 후에 이들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이제 상세하게 살폈죠. 그때에 이 바나바의 반응이 뭐냐 하면 아주 기뻐한 거예요. 이것을 통해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그리고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질 때 이렇게 기뻐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즐겨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볼 때에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질 때에 그것을 인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이 바나바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예수의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어지기를 바랐으면 이제 이방인에게 성령 부어주시는 일들이 제자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한없이 기뻐하였던 것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 사람이 아주 적절한 말로 그들을 권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붙어있으라 그들을 찾아가서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그랬습니다. 주께 붙어있도록 권했습니다. 여기서 붙어있다는 것은 뭐냐 하면 연합이에요. 이걸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런 성령의 놀라운 부어주심이 있어서 주께서 성령을 부어주셨을 때에 그들에게 초월적인 사랑이 물 붙듯이 부어짐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물 붙듯 부어져서 그들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거에요. 거기에서 이제 주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연합에 끝까지 붙어있으라는 것은 결국 뭘 의미하냐 하면 성화의 생활을 의미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옛 생활과 옛 성품을 버리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께 연합되어있는 상태를 떠나지 마라 하는 것이죠. 마음이 그리스도예수께 붙어있는 사랑의 연합의 삶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성령의 강력한 역사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이 물 붙듯 부어지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화합하고 하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그러는 현장이었지만 그리스도에게 꼭 붙어 있어야 하는 인간의 책임이 배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번 구원하시고 끝까지 붙들어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자 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그분을 붙들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 그래서 주님이 견인하기로 하신 사람들은 성도들 자신이 인내하면서 그 믿음을 지킨다 이거에요.
견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주신 은혜의 작용이 그들 속에서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견인의 작용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은혜가 그들 속에서 계속되는 작용이기 때문에 성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끝까지 붙들어 주시지만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는 사람들은 그들이 또한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들 이란 말이죠. 그런 견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책임과 의무가 무시되지 않았던 균형 잡힌 교리의 인식을 보게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들이 받아야 할 권고도 바로 이런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느냐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한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얼마나 그 은혜의 계획을 따라 살고 거기에 충실해서 그래서 주님께 붙어있으려는 사람이 되겠느냐 에요. 모든 일에 절제와 자기부인과 헌신과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순전함으로 그분께 붙어있는 삶을 살 수 있겠느냐 에요.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았으나 주님께 붙어있지 못해서 그 큰 은혜가 속히 부패하고 신앙에서 미끄러져요. 어떤 사람들은 받은 은혜가 크지 않아도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굳게 붙들고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해요. 그래서 그 은혜가 계속해서 증진돼요.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교회가 그런 교회였어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받은 바 주님의 그 은혜를 끝까지 간직하면서 주께 붙어있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주님이 하늘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복을 주는 거예요. 이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필요해요.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이 바나바의 인품에 대해서 오늘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착한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 사람의 성품을 세 가지로 얘기하면 착한 것은 인격이고 믿음은 신앙이고 성령이 충만한 것은 그의 영성이었어요.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세 가지 요소에요.
첫째는 인격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신령하고 충만하고 그리고 착했다’ 이렇게 나오지 않고 인격에 대한 평가가 먼저 나와요. 착한사람이다. 그리고 두 번째 믿음이 충만하고 세 번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더라.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똑같죠. ‘잘하였도다.’ 그가 행한 일을 말하신 후에 ‘착하고’ 인격의 특징이죠. ‘충성된 종아’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온 그의 모습이란 말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굳센 믿음이 있는 곳에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또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곳에서도 영광을 받으시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그러한 믿음의 은혜들이 그를 변화시켜서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착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이 손과 발로서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그 사람자신이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변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를 구원한 계획에 부합하도록 변화되는 거예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에요.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하는 개별적인 의무의 수행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사람의 인격의 변화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죠.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면 한사람이 개별적으로 행하는 일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지만 하나님이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그 사람자신이 변화되는 것이에요. 악한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영광 받으실 가능성은 매우 적어요. 또 악한사람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악한본성을 거슬러서 행하는 거죠.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없고 어쩌다가 한번씩 일어나는 일이고 그렇게 행하고 나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선한 일을 행했다고 하는 자기 자랑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많아요. 무슨 뜻이냐면 사람은 자기의 성향대로 움직일 때는 한 일을 잘 기억을 못해요. 그러나 성향에 배치되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때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거죠. 예를 들자면 늘 성격이 지저분해요. 그러면 자기가 더러운 옷을 입었는지, 지저분한 곳에 주저앉았는지, 머리를 안 감았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러나 성향이 깔끔해요. 그러면 자기가 오전에 손 안 닦은 것도 생각나고 하루가 지났는데 머리를 못 감은 것도 생각나고 그래서 이 자체가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러니까 원래 성향이 악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나 어쩌다가 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거예요.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엄청난 일을 했으니까 하나님 앞에 자기자랑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악한 상태에 남아있으면서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지속적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 자체가 착한 사람으로 변하면 그 삶은 지속적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이 본성이 변화되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착한 삶을 항구적으로 계속 흘려보낼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기뻐하시는 거죠. 당신자신의 성품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것들을 선하게 인도하시잖아요. 왜 그렇게 선하게 인도하세요? 하나님 자신이 선하시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많은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잖아요. 여러 가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랑하세요?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니까.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 닮기를 원하세요. 당신 자신이 선하시니까 선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데 어쩌다가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이에요. 하나님이 그런 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변화에 이르게 되지 못하는 우리의 모나고 망가진 체 있는 인격 그걸 그대로 간직한 채 그냥 뭐 열심히 한다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요.
그런 점에서 이 바나바는 착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사람들을 권하고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두 번째는 그의 믿음이었어요. 신앙이죠. 믿음이 충만했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 일을 행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범사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신앙, 이것이 충만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성에 있어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를 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교회에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착한 인격, 믿음으로 충만한 신앙, 성령으로 가득한 영성, 이런 것들을 구비하고 사랑으로 영혼들을 섬기는 이런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