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0일 새벽예배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행 12:10-12).
베드로를 옥에서 건져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제 묶여있는 사슬이 풀어지고 파수꾼들이 베드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두 팀이나 파수를 보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을 지나갈 때에도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지 못했죠. 하나님께서 눈을 가리워서 보지 못하게 하신 것이죠.
창세기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를 살피기 위해서 온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이 몰려와서 롯에게 그 사람을 내놓으라고 외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니까 롯의 집을 찾아와서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제 파수꾼들의 눈을 어둡게 하셔셔 베드로를 안전하게 그 옥에서 꺼내셨습니다. 그러나 성문이 또 하나 남아있죠. 굳게 닫힌 시간이고 누구도 그 성을 통과할 수없었는데 그때에 저절로 그 성의 빗장이 열리면서 다시 베드로가 성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죠. 이 모든 일들을 함께하고 있는 천사가 그 일을 했고 그리고 나서 천사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때에야 베드로가 이일이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 유대인의 손과 헤롯의 손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일이구나 ’하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죽어도 좋고 목숨에 대한 애착 같은 거 없는 그런 담대함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히 자기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과 그리고 기적적으로 자기를 살리신다고 하는 이 모든 기적의 과정을 통해서 베드로는 온 몸이 섬뜩할 정도로 하나님의 생생한 섭리 자기를 향한 보호를 전율하듯이 느끼게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놀라운 역사 정말 놀라운 역사를 베드로가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죠. 아마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는 죽게 하셨으나 자기를 이렇게 살게 한 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자신에게 아직까지도 사명이 남아있고 예루살렘교회를 돌보아야한다는 그러한 무거운 사명감을 느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목숨이 경각에 있고 그리고 날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볼 때에 진짜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들은 정말 이슬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곧 사라지고 없어져야할 하찮은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찮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게 하시고 또 남겨진 자신의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데려가지 아니하시고 내버려두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시지만 어떤 사람은 긴 기간동안 남아서 살아가고 있는 데도 하나님이 그 생명을 연장시켜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뜻을 모두 알 수없습니다. 아마 누구도 왜 하나님이 야고보는 죽게 하시고 베드로는 구해주셨는지 아마 누구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베드로는 왜 야고보가 하나님 앞에 먼저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베드로는 자기를 살려주신 이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데려가시는 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없습니다. 어떨 때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지만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눈뜨면 이렇게 살아있고 또 살아있어서 주님을 날마다 봅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렇게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죠. 살아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살아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이제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갔더니 거기에 많은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하나님께 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를 위하여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기도가 얼마나 오랜 장시간의 기도였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금방 끝난 그런 기도가 아니죠. 장시간의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쳐서 많은 성도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깊고 간절한 기도가 베드로를 옥 속에서 건져 나와 구원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교회가 무엇인가 아파서 기도할 때 주님은 그것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주님은 교회의 아픔에 민감하시고 그래서 교회가 신음하고 아파할 때 주님의 마음도 아프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교회가 그런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할 때 주님은 그 기도에 대해서 민감해지시는 것이죠. 문제는 교회가 이처럼 한마음이 되어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데 여러 가지 많은 이유들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이 나눠지고 분산되어서 자신들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려 기도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눈앞에 놓인 어려운 일들이 아무리 크게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능가하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그래서 그 능력으로 우리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대하는 바이고 또 믿어야 할 바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