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주님을 묵상하라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3-14).
시편 19편 12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숨은 허물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기도하였지만 오늘 본문은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범죄란 그것이 죄 인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죄를 말합니다. 모든 죄는 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 죄의 성질은 모두 틀립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은 죄와 고범죄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있어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의 죄는 전자의 죄보다 우리의 양심에 끼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죄 인줄 모르고 지은 죄는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우리 마음까지 얽어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범죄는 마음을 얽어맵니다. 명백히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행하였든지, 아니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든지, 그 어느 경우든 고의적이며, 의도적으로 행한 것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고범죄는 의지를 가지고 짓는 죄인데, 이것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연히 의지를 가져야겠지만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제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아는 시인은 이러한 고범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은혜 안에 있어도 가장 큰 죄를 얼마든지 지을 수 있음을 그는 너무나 잘 알았기에 날마다 주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처음 지은 그 고범죄가 장성하여 자기를 주장치 못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습관적 행실들이 그러하듯,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이 처음에는 생각 속에서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안에 성향, 곧 본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까지 성장하였을 때에는 우리 의지로 좀처럼 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죄의 본성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범죄한 경우에는 빨리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실어 마지막으로 기도한 바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였습니다. 흙더미를 쌓은 둑으로 물이 넘쳐 들어오고 있는데, 젖은 그 흙더미만 쥐고 있으면 일이 해결될까요? 그렇게 들어오는 물길을 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고범죄든 마음의 죄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모든 묵상이 주님 앞에 늘 열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늘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삶을 살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을 늘 묵상하십시오.
2006년 11월 1일 새벽기도
날마다 주님을 묵상하라
본문: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앞에서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죄에서 자기를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지만 오늘 본문은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고범죄란 자기가 그거이 죄인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죄를 말합니다. 모든 죄는 질에 있어서 동일하지만 그 죄의 성질은 양자가 틀립니다. 더욱이 이 죄가 양심에 미치는 영향을 훨씬 더 큽니다. 그죄를 모르고 지었을 경우는 이것이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우리 맘을 얽어매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범죄는 얽어맨다. 이것을 명백히 하지 말라는 것을 불순종하고 했을 경우,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안했을 경우로 나눠지겠지만 어느 것이든 고의적으로 행하는 것은 맘과 영혼에 보다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로 하여금 고범죄를 ... 주장하지 못하게”이 기도는 두 가지를 보여줌. 고범죄는 의지를 가지고 짓는 것인데, 이것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지를 가져야겠지만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제목이 될 수 없다. 기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말게 하시고 주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은혜 안에 있어도 가장 큰 죄를 짓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두 번째 이 죄가 나를 주장케 말게 하소서. 고범죄르 짓고 나면 이제는 그 고뱀죄가 장성해서 자기를 주장하지 말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술이 그렇듯. 우리의 모든 습관적 행실들이 그러하다.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이 첨에는 생각 속에서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안에 성향 곧 본성화가 이루어짐. 이때는 우리 의지로 좀처럼 꺽지 못한다. 이 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된 경우에는 빨리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그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실어 마지막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의 묵상이...” 결국 죄를 안 짓기 위해서는 고범죄든 마음의 죄든, 그것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흙더미를 쌓았는데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 흙더미를 쥐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물길을 틀어야 한다.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드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과 마음의 묵상이 늘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삶을 드려야 한다. 주님을 묵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