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기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 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녹취자: 오희정
로마 귀족이 몰락한 이유를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몰락한 그 이유가, 그 원인이 ‘물에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로마시대 때 이미 수도관이 발전되어 가지고 귀족들에 집에는 수도관이 다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보편적인 수도관이 석관이었습니다. 돌로 된 관인데, 보통 일반 평민들은 이 석관을 썼습니다. 돌로 된 관을 썼고, 귀족들은 납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납관은 7-80도면 납이 녹으니까 쉽게 이렇게 원하는 대로 파이프를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근데 이 납관의 문제가 뭐냐 하면, 이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 납관이 중금속인걸 알지만 그때는 모르는 거죠. 그래서 이 납관을 아주 좋은 물을, 산에 좋을 물을 받아 가지고 납관을 통과하는 거죠. 그래서 통과해서 귀족들이 물을 마시니까, 이제 좋다고 마셨지만 그게 중금속 물인 거죠. 그래서 서서히 귀족들이 죽어갔다라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처럼 이렇게 그 물이 해로운 줄 모르면서 이렇게 서서히 먹으면서 마시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려고 해도 우리 마음속에 어떤 ‘미움’이라는 것들 그런 것들이 중금속같이 이렇게 흘러 들어와서 우리에 마음을 오염시킨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적이, 기도에 대적이 뭔지도 모르면서 서서히 기도에 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그 '미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까 하는데요, 여러분 혹시 보통 미워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워지는 사람. 여러분 보통 미워지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뒷집아저씨, 그런 모르는 사람은 잘 미워지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이렇게 시비 거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도 며칠 지나면 이렇게 사라집니다. 그런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 있잖아요, 아내나 자식이나 남편, 그런 사랑하는 연인사이 그럴수록 그 미움이 미움이라는 것이 큰 겁니다. 그 미움에 그런 감정이 크게 파고들어서, 파고드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만큼 그 미움에 감정이 깊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에 감정에 욕구가 이렇게 미움에 감정에 욕구로 바뀐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을 지체들을 그렇게 미워해 본적이, 사람들을 미워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한 순간 말씀을 통해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 분을 용서하게 될 때, 마음에 맺힌 것들이 이렇게 풀어지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과 그렇게 화해했을 때, 사람과 화해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뻥 뚫리는 것 같은 그런 것들을 경험해 본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했는데 마치 하나님과 화해한 것처럼 이제는 막혔던 기도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경험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런 것처럼 '미움'이 기도생활에 결정적인 그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움이라는 문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기도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근데 왜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들에 기도를 듣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들에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 첫째는 그 ‘미움’이라는 것이 온통 우리에 마음을 온통 지배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뭘 봐도 다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거죠.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거죠. 그것처럼 미워하는 감정도 동일한 겁니다. 무엇을 봐도 미운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 분한테 상달 되는 그 기도자에 마음은 그 분으로 가득 차 있어야지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미움이 마음에 온통 지배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미워하는 감정이 가는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가 살인입니다. 살인. 아니 거 너무한 말이 아닙니까? 내가 비록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했지 만은 살인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에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면 결국 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 인간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미움에 뿌리와 살인에 뿌리는 같다라는 겁니다. 근데 왜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들에 기도를 듣지 않으실까?
두번째는요, 사람을 향한 미움은 나아가서 하나님을 향한 미움, 미움으로 발전되다라는 겁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을 집요하게 유지하고 있으면, 그 사람으로 상처를 입게 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라는 겁니다. 왜 나를 이렇게 대우하실까? 또한 그 사람을 정리하지않고 왜 내버려 두실까? 그런 하나님에 그 섭리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 뭐 하시나, 저런 인간 안 데려 가시고. 그런 마음이 안 들으셨나 모르겠네요?
자 사람을 잘 미워하는 자들의 결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특징은 이런 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감사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얘기 하지만은 감사가 쉽게 잘 안 나옵니다. 감사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분을 향한 원망, 불평, 그리고 못마땅함이 있을 때 결코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셔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 미움에 마음은 그래서 미움에 마음은 그 분에 은혜에 대해서 못마땅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론 기도할 수도 없고, 또 기도해도 기도를 안 들으시는 겁니다.
그러면 끝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서해야 합니다. 아니 용서라니 그 인간이 내게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면 내가 용서해주지, 그럼 주님이 어떻게 우릴 용서하셨습니까? 무릎 꿇고 비니까 우리를 용서하셨습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 분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때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용서하기가 쉬울까요? 누가 용서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까? 상처 받은 사람이 쉬울 것 같습니까? 아니면 상처를 준 사람이 쉬울 것 같습니까? 어느 사람이 용서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까? 상처를 준, 상처 받은 사람, 상처를 준 사람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용서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을 못합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자기가 상처를 줬는지도 기억을 잘 못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상처 받은 사람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에 주도권은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주도권을 잡는다라는 것은 발에 매인 족쇄를 푸는거와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해도 미워한다는 것은 족쇄를 맨 채로 날개짓 하는 거와 같은,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사람이 먼저 가야 됩니다. 제가 이 문제로, 저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겠죠, 그래서 이 문제로 테잎을 듣다가 말씀을 듣다가 '먼저 가라'라는 말씀이 이렇게 마음에 부닥쳐 온 겁니다. 주님 손을 자르면 자르지 저는 못 갑니다. 저는 죽으면 죽었지 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주시면 그 은혜를 주시면 가요, 가서, 은혜를 주시면 가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 굉장히 힘듭니다. 근데 가서 용서를 구하면 화해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이렇게 용서를 구했는데 놀랍게도 그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결되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그리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워하는 그 지체를 위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요. 그러면 처음엔 안 되더라도 그 지체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할 때 그리고 그 지체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해 주십시요.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 그 사람이 나를 미워했지만 그 사람이 그런 어쩔 수 없는 그런, 그 사람이, 그 영혼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런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그 사람에 마음을 움직여 주셔요, 그래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이 다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그 사람을 향해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먼저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미움을 이기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