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마음과 길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시 10:5-10)
녹취자: 이민희
하나님의 자녀, 곧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고통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악인이 어떤 마음의 상태이며, 또 어떤 일을 행하며, 그 결과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고통을 당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그의 마음의 상태는 ‘나는 영영히 요통치 아니하리라’ 한데 나와 있습니다. 즉 자기의 길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입니다. 그 길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며 걸어가는데 그 길이 형통하기 때문에 마음에 안심을 하는데, 그것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죄악 중에 형통하게 사는 데 그 상태가 흔들리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건 일종의 평안입니다. 평안 내지는 믿음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평화는 두 가지 입니다. 1)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와 2)자신으로부터 오는 평화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서 오는 평화입니다. 이것이 ‘샬롬‘ 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서 마음에 놀라운 평화가 오고 마음에 찾아온 놀라운 평화의 질서가 자기 삶 안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으려고 애를 쓰고 회개를 하려고 애를 쓰려고 하는 이유가 먼저 우리의 죄를 참회하고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평안이 오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첫째는 내 밖에 있는 많은 사물들의 질서가 있는데 자기 밖에 있는 많은 사물들의 질서를 보면서 우선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평화가 옵니다. 예전에는 가족들 중에서도 왜 우리엄마는 저런 사람일까 왜 내 자식은 저럴까 하고, 마음의 평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그런 관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런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평안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고 놀라운 평화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사물들의 질서가 바뀝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화목을 주시면 내가 받아들이긴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물들의 질서를 바꿔주시고. 이것을 축복이라고 얘기하십니다. 섭리 속에서 베풀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열어가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내적인 평화를 주심으로써 평안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두 번째는 거짓된 평화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런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평안 같은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데서 오는 평화이고 후자는 내가 중심에 서있으나 고난과 환난을 받지 않는데서 오는 평화입니다. 악인에게도 그런 종류의 평화가 있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나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 하는데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악이라는 것은 자기가 중심자리에서 서서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나를 둘러싼 사물들의 질서와 사람들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안되는 사람들을 정복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악인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질서 속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데로 살아주지 않으니까 아주 강력하게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으로써 의인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악인들이 의로운 자를 박해하고 의로운 자는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고난을 받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요 주무시나이까 여호와요 깨어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입장에서는 결론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악인들도 당신의 용도에 합당하도록 쓰여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마치 병원균을 죽이고 치료하는 병원에 병원체를 보관하고 있어서 그것으로 사람에게 예방주사를 놔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듯이 하나님도 그런 악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의로운 백성들을 더 정결케하시고 당신을 의지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또 그들의 악을 사용하셔서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들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성경을 보면 시인이 부르짖습니다. ‘왜 어찌하여 악인이 의로운 자를 핍박하고 그들이 굽으려 엎드려지게 하시고 그들이 올무를 놓을 때 걸리게 하시고 어찌하여 고통을 받게 하십니까? 이 자체가 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인들의 박해와 악인들로 인한 고난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이러한 악과 고통 속에서 .아파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그렇게 찾는 사람들은 바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예화) 어떤 사람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나쁜 놈 미운 녀석 그러면서 마음의 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괘씸하고 상종도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자꾸 마음에 이게 내가 살아야할 삶인가 반문이 생깁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라.’ 그러나 마음에는 보기 싫지만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야하는데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모든 방면의 삶이 다 그렇습니다. 게으르게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게으름이 몸에 배었지만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습니다. 노력을 해도 안됩니다. 8시까지 안자고는 움직여지지 않고 시간만 나면 .요령을 피우고 게으름을 부립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니깐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있는 나쁜 습관, 자신에게 속한 격한 미움이 오히려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악인들로부터 받는 박해와 핍박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셔서 정말 자신에게 속한 자식인지 아니면 부패하고 뒤로 물러간 그런 인간인지 하나님이 그걸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고 깨닫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고난도 슬픔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더 주님을 굳게 붙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