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새벽설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시편5:4-7)
녹취자 : 강수진
어제 아침에는 통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은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그 의지하는 마음이 가장 최고도로 달한 것,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순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때에는 필연적으로 그 다음의 문제들이 대두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4절부터 6절까지는 시인이 하나님의 한 성품을 통해서 깨닫게 된 기도를 들으시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피 흘리고 거짓말하고 하나님 앞에 오만하고 악을 행하고 이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이중적인 적용을 갖게 됩니다. 시인은 누군가에게 압제를 당하며 고통하는 가운데 통촉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중적인 적용을 갖는데 첫째는 악인들이 나를 아무리 에워싼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요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오만한 자들이요 그리고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이요 거짓말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환란을 당하여도 지금은 이들로 하여금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은 그러나 그 많은 괴롭힘 속에서도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편이시고 저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적용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원수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렇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편이 되어야 되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 그리고 거짓말 하는자, 피흘리는 자, 그리고 교만한자 이렇게 하나님의 법도와 어울리지 않게 살아가는 자들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통촉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도 혹시 내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거나 교만히 행하거나 혹은 피를 흘리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이런 사람은 아닌가 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깨어있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매우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때가 우리가 진정으로 깨어있을 때입니다. 단지 자기 자신의 다급함에만 치우쳐서 어떻게 해서든지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야겠다는 마음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매달리며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게 될 때 그래서 우리들이 참회하게 되고 자기가 깨뜨려지게 될 때 그때가 사실은 가장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입니다.
절대적인 순종은 절대적인 의존에서 나오고 절대적인 의존은 절대적인 사랑의 핵심이에요. 사랑하면 필연적으로 의존하게 되어있고 사랑하면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통촉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스스로 점검하며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절박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만약에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만약에 나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악이 있다면 나에게 만약에 하나님을 향한 교만한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찌 나의 기도를 들으시겠는가 그래서 그러지 말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래야지만 통촉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 그러니깐 자신의 마음을 살펴봐 달라고 감히 탄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을 쏟는 기도를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마음을 쏟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얼마 안되는 유한한 인생, 이미 그중에 많은 부분을 잘살았든 못살았든 이미 살았고 이제 얼마안되는 남은 부분을 이것을 하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겠는데 어떻게 살아야지만 정말 하나님 마음에 합당할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이 많은 것을 누리고 행복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안계신다면 나는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이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깊이 첨착하는 그러한 삶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하나님 안찾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니깐 그 문제좀 해결할려고 하니깐 내 힘으로도움이 안되서 그래서 해결사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힘을 힘입어서 인생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면 다시 내길로 갈텐데 그러니까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핑계들은 많이 대요. 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애들이 속을 썩여서 남편이 박해를 해서 다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 요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나 죽어있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화)여러분, 지금은 수도시설도 잘 되있고 하천관리도 잘하죠 옛날에는 비만 오면 하천에 뚝이 터지고 피해도 많이 입고 고생을 많이 했잖아요.
고기잡는 것을 보세요. 그 물이 많이 내려갈 때 무너진 뚝방 위 같은데로 물이 넘쳐서 흐르잖아요? 그러면 미꾸라지 같은 고기를 잡으려면 흐르는 물을 등지고 산때기를 거꾸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참 있다가 가보면 물을 거슬어 오르는 미꾸라지는 물고기들이 산때기에 가득 모여있습니다. 왜? 살아있으니까. 본능적으로 자신의 원래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해요. 신기해요.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들이 산때기에 가득 모여있어요. 그것이 생명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죽어있는 상태에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기도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에 살아있다면 그 모든 어려운 난관들을 만났을 때에 살아있는 물고기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이 그러한 난관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 앞에 더욱 매달릴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시인이 이 많은 난관 속에서 통촉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신앙을 본받아야 된다 라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면 하나님께는 큰일도 없고작은 일도 없습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자원을 가지고 하려니깐 큰일도 있고 작은일도 있지만 하나님께는 큰일도 작은일이에요. 어차피 그분의 능력으로 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니 하나님께는 큰 일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적들이 얼마나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 문제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 편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가 사실 그것만 문제이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을 통해서 오묘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하나님과 끊어내시고 우리는 그 배신을 통하여 당신께 더욱 연합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니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마음을 쏟아 부어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보면 ‘주의 인자하심을 힘입어’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의 성전에서 기도하리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우선 첫째는 시인이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돌아보면서도 ‘아 이정도면 됐지. 나만큼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나야말로 마음을 쏟아 붓기에 합당한 삶을 산다고나 할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로 가득 차있는 신자에게는 항상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많은 잘못을 하고서도 변명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죄를 가볍게 여기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죄를 변명해서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각하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의 편인데 정 반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이 상하고 통애하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그러니깐 결국은 이 시인이 정말 삶의 정성을 기울이면서 자신을 압제하고 아프게 하는 자들과는 구별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통촉하는 하나님의 앞에 나아갈 때 이 사람이 진정으로 의지했던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한 것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해서 주의 계명을 향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나 나를 주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이러한 나의 실천이 아니라 나를 감화시켜서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시고 그래서 내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시는 그 주님 때문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통촉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갈망에 두 눈이 이슬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 시시 때때로 주만 봅니다.
시련을 만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에 흔들릴때나 심지어는 유혹을 받을 때조차도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아 나는 나를 신뢰할 수 없구나. 이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구나. 나의 영과 나의 방패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구나’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데 모든 것들이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의 마음은 성전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한 왕권을 성전을 중심으로 펼치시고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을 응집하는 그 가장 중심적인 처소였습니다. 그러니깐 성전으로 올라간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뵈러 간다고 하는 것과 동일했고 성전에서 기뻐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기뻐한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깐 그는 통촉하시는 하나님을 찾아가는데 빈들이나 사업장이나 그런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나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약속이 깃들여져 있는 곳, 그 하나님의 성전을 찾은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이런 성전의 개념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의 예배당은 성전과 다르지만 상당히 중요한 맥락들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위탁하셨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임재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모였을 때 하감하시는 하나님의 통촉하심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향하여 그렇게 기도하겠다고 고백했던 수많은 시인들의 각오가 결심들이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을 통촉해주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자주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비가좀 와도 나오고 힘이 들어도 나오고 어려워도 나오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이곳에 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는 여기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시련이 있을 때는 이곳에 나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핍절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없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침묵이 감돌고 그들의 목에는 거미줄이 끼었습니다. 영혼의 아름다운 화현은 줄이 끊어졌습니다. 그런 속에서 껍질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위대한 용서의 능력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 10년이 지속된들 우리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 그냥 먹고 사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들이 그렇게 살다가 우리의 인생을 마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혼의 회복을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의 길이고 보람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