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 소서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 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시 17:1-3).
이것도 탄원시지요? 이런 시들을 이렇게 읽노라면은 무엇인가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이 자기에 대해서 뭔가 과장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라면 ‘여호와께서 나의 흠을 찾으시려고 그렇게 하셨는데 못 찾으셨습니다.’ 뭐 이런 표현 같은 것들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거부감 같은 것을 주는 그런 대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은 이런 시를 읽어보면 그 비록 이때에 다윗이 다윗과 같은 사람이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 같이 정말 풍부한 복음의 계시가 복음의 계시의 면에 있어서는 오늘날 우리 같이 풍부한 것을 못 누리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왜냐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 지식의 계시들이 점점 더 증가했기 때문에 그런거죠. 그런 것들을 감안 한다고 하면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사실은 이렇게 인간이 죄를 짓고 그래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된 다음부터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더 간절한 의존의 마음 이런 것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도 어떻게 보면 인간들이 더 절실하게 경험 하는 그 죄 때문에 그런 계기도 생겨나고 이렇게 됐던 거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이 구약의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넘어 오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 계시의 말씀도 아주 풍족하게 나타나서 그래서 그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의 계시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본다고 하면 우리가 이런 것들을 그렇게 마음에 걸려 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시인들의 경험을 우리가 존중 하면서 이해할 수 있고 부분적으로는 그 만큼의 계시의 빛 아래서 이만큼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죠.
어쨌든 그런 것들을 염두 해두고 생각해 보면 그 시인은 제일 먼저 첫 절에서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진실해 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진실에 대해서 사실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모든 것보다도 뛰어난 것은 진실입니다. 진실함이 없는 것에서 나온 기도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는 거죠. 진실함이 없는데서 비롯되는 그 기도, 진실함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헌신, 진실함이 없는데서 생겨나는 그 모든 노력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할 가능성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이 아주 크고 위대한 능력 이런 것보다도 뛰어난 가치가 진실 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온 진실한 죄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죠. 그리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죠.
이게 주님의 마음이죠.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죠. 그래서 그 중심을 보시면서 역사 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우리가 항상 올바르게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진실한 사람은 항상 반성을 많이 하게 되요. 진실 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자기의 삶을 합치 시킬 때에 그 때에 진실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릴께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자신의 삶을 합치 시키는 데서 진리가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상당히 올바르게 살아 왔다고 자부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두 번째는 자기의 삶을 합치 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없으면 진실은 생겨 날 수가 없는 거예요.
반면에 올바르게 살지 못했다 치더라도 진리를 발견 하고 참회 하고 그리고 거기에 자기를 합치시킬 려고 애를 쓰면 그러면 진실을 발견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덕적이게 올바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고 죄인들 중에도 진실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진실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마음이 상하는 통회한 모든 사람들은 과거에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은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자신의 삶을 합치 시키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거죠.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우리의 주위에 사람들 혹은 자신을 바라 보면은 이렇게 크게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일을 안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죠? 크게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은 일은 안하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생명이 없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생명의 역사,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원이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메달 리면 하늘로부터 부어져 내리는 그 탁월한 은총, 은혜, 이런게 없단 말이죠.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나오냐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실한 사람들로 가까이 다가가시죠. 그 능력보다 더 귀한 거예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능력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도 결국은 하나님 앞에 인정 받지 못할 수 있지만, 증거가 어디 나와요? 마태복음 7장에서 나오잖아요. (말씀)“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어 쫒고 병든자를 고치고 뭐 이렇게 했습니다. 난 모른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거 거든요. 그러니까 그런일은 없어요. 오히려 이 생명은 진실을 가진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진실은 능력보다 휠씬 뛰어나요. 재능이나 은사, 능력, 뭐 이런 것 보다 휠씬 뛰어난 가치가 진실이에요. 이런 걸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게 되죠. 넘어지고 깨뜨려 지고 또 쓰러지고 이렇게 걸어가지만은 그러나 늘 그 진실해 지기를 원하는 사람 그런 사람편에 가까이 계신 것이예요.
두 번째는 뭐냐면 그 시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뭐라고 하고 있냐면 “(말씀)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 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 하시며 나를 감찰 하시사” 하나님이 끊임없이 그렇게 권고 하시고 감찰 하시고 그러시는 분이다. 이 얘기죠. 끊임 없이 권고 하시고 감찰 하시고 살피시고 하시는 거예요.
이게 시험 하시는 거죠. 시험 한다고 하는 건 뭔가 이렇게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그 어떤 사물의 본질을 그것들을 적한 방법으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서 그래서 원래의 본질을 제대로 찾도록 만들어 주는거 그것이 바로 시험한다 라고 하는 의미예요. 그러면 그렇게 이젠 시험을 한다라고 하는 의미인데 그러면 여기서 시험 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사실 우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우리 자신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종종 우리는 그 자신이 살아가는 어떤 삶이나 태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 이런 것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어떤 때는 깜짝 놀라는 거잖아요? 나에게 이런 것이 있었나 깜짝 놀라게 되는거예요. 무슨 얘기냐면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 하는 것은 큰 착각이예요.그건 자연적으로도 입증이 되요. 보면 사람의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 사람 있죠? 그죠? 암내 비슷하게 이런거 있잖아요. 근데 그러는 사람들은 본인은 잘 냄새를 못 맡아요. 왜냐면 이 후각이 자기 몸의 냄새에 아주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사람마다 냄새가 있잖아요?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냄새가 나고 그 다음엔 그 아아들이 보기엔 아빠에게선 아빠 냄새가 나고 하는데 자기 냄새가 뭔지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식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 몸에서 나의 독특한 냄새가 나요. 그게 좋은 거든지 나쁜 거든지 간에 냄새가 나요. 이렇게 나이가 어린 자매들 같은 사람들이 앞에 싹 지나가면 체취가 나죠? 못 느끼셨어요? 냄새가 나잖아요? 그런 아주 젊은 시절에 잠깐 그런 냄새가 나잖아요? 근데 아주 신선한 냄새가 나요. 형제에 의해서도 그런 냄새가 나겠죠. 근데 특히 자매들이 지나가도 나면 특히 고등학교 대학교 1,2학년이 지나가면 냄새가 나요. 근데 본인은 자기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을 모르죠. 우리가 숲속에 들어갔을 때도 숲에 팍 들어갔을 때도 숲 냄새가 확 나잖아요. 한15초 동안이예요. 지나고 나면 그 냄새를 못 느껴요. 그러나 인제 반대야 거기 있다 바같으로 나오면 갑자기 길거리에서 냄새가 나는거예요. 길거리 있을 때에는 냄새를 못 느낀거예요. 이렇게 자기 안에서 냄새를 못 느껴요,
이렇게 육체적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거든요. 이렇게 영적으로 정신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이런 것들을 못 느끼거든요.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실험이 돼야 되요. 그것을 시인이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일들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시험 하셔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알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시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것이 바로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온전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예요. 시인이 그런 것을 많이 경험한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깍고 다듬으시고 이렇게 해서 내 안에 뭐가 있는지를 보이고 알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런걸 경험하는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이 시인을 인정해 주시게 된거죠. 그래서 옳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들은 사실은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두려워 할것이 없어요. 하나님은 그 사람의 편이니까 그러니까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이래도 사실은 두려워 할것이 없어요. 왜냐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니까 그래서 가장 훌륭한 것 가장 좋은 것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귀하다 정말 훌륭하다 이렇게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니 앞에 바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힘 입으며 살라가게 되는거 그 얘기잖아요. 두려운 것이 없어요. 내가 하나님이 인정 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거 그리고 매일 매일 앞길을 인도 하시고 이끄시는 거지요. 그래서 주님 앞에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