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인도하시는 하나님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레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무리양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 77:18-20)
하나님의 위엄
시인은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은총과 자비가 사라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이전에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큰 능력과 권세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고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회오리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세상을 비추고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 중 어떤 것도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더욱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이상 현상들이 나타날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에 간섭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의 마음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온 땅이 폭풍에 휩싸이고 하늘을 울리는 커다란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시간이 흐른 후, 땅이 흔들리고 움직입니다. 번개가 세상을 비춥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이것들을 통해 창조세계에 당신의 분노와 위엄, 권능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의 길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곧은길이 큰물위에 있으나 발자취를 알 수 없습니다”라는 표현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배가 지나가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위대한 경륜을 노래합니다. 바다 위, 혹은 하늘위에는 표지판도 세울 수 없고 줄도 그을 수 없지만 아주 또렷한 길이 있습니다.
밤에 ‘학의천’에 산책을 하러 나가면 장관입니다. 20km나 30km 사이를 두고 비행기들이 열을 지어서 똑같은 항로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천공항이 7년 동안 세계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으로 가는 편조차도 대부분 한국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인천공항이 아시아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비행기들은 같은 항로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어떤 때는 학의 천을 걸으며 눈여겨보았더니 줄지어 지나가는 비행기를 4대까지 보았습니다. 한 대가 지나가고 그 다음, 그 다음, 계속해서 줄지어 비행기들이 따라옵니다. 신기한 것은 서로 부딪힐 것처럼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도가 다릅니다. 정확하게 오는 비행기는 고도 몇으로 날아오고 가로질러 가는 비행기는 고도 몇으로 가라는 항로가 있습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도가 있고 정확하게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잘못된 항로로 들어서게 되면 암초를 만난다든지 여러 가지 위험이 있기 때문에 최적의 항로를 그어 놓았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넓은 허공을 아무데나 질러가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길을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큰 길이 물 위에 있는데 주님이 어느 길로 가시는지 우리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도 하나님의 일정한 뜻이 있고 그 뜻은 세계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이 있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길을 따라 당신의 일을 행하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발자취를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경륜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지 않으신 길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고, 지나가신 길은 지나갔으나 배가 바다 위를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 것처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계시는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믿음이 생기면서 마치 두루마리가 하나씩 펼쳐지며 그림의 전체가 드러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시인은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곧은길이 물위에 있으나 발자취는 알 수 없었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때로는 원수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고난도 겪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입니다. 이해할 수 있을 때나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보이는 의존과 복종에 배반하는 일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때로는 자기의 삶속에서 떼어버리고 싶은 고난의 때가 있고 잘라내 버리고 싶은 시련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그때에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놀라운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은총을 다하였는가? 하나님은 이제 나를 버리셨는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라도 당신의 탁월한 경륜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당신의 길을 따라 걸어가게 하십니다.
만약에 모든 것을 이해한다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죄 많고 연약하고 교만한 인간이 주님을 의지할리가 있겠습니까? 영화(榮華) 이후에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한이고 인간은 유한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하게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의존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인간을 교만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이심에도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보다 내가 더 높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라고 말해도 나는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종하고 경배하라고 말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굴복시켜서라도 당신이 우리를 위해 봉사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부러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야지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마음과 의존의 심정을 품게 됩니다. 시인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생활이라는 사실을 커다란 시련과 고난으로부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은 고난과 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새롭게 배워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어 누리게 하셔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에 실패합니다. 인간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받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좋은 것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는 진노를 나타내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선하심을 보이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 시의 결론은 20절입니다.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맨 처음, 시인은 위기를 만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의심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지켜 오신 역사를 회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고 위기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기 위해 당신의 큰 위엄과 능력을 행하신 증거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선하고 위대하신분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지키신다는 놀라운 증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양떼는 음료와 의복, 육류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양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짐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나의 양떼’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너희는 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인간 모두가 그러합니다. 언약백성은 계시를 통해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절대자를 의존하려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존하는 마음을 모든 인간에게 주셨지만 언약백성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이 의지해야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게 살거나 잘못된 것들을 의지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기계교 사건 같은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한아이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고 자기 아이가 밀리니까 그 어머니를 움직여서 자기 명령에 복종하게 했습니다. 아이도 죽이고 문자가 오면 그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 거기에 복종하며 살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올바로 찾지 못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에게 보이는 열광이라든지 정치인들에게 보이는 열광과 복종의 감정이 이것입니다. 그 결과는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대신 다른데 굴복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절대의존의 존재로 만드신 것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를 우리에게 주셔서 당신의 양 떼들을 인도하시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나는 그 공동체의 한지체로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다하였는가? 이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자비 베푸시기를 잊어버리셨는가? 이제 나는 끝났는가? 고백했던 것이 나의 불신앙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자비와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은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깊은 갈등과 고통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큰 영광과 은혜를 따라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범사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 때 고난과 시련이나 박해를 당해도 우리는 그 속에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특별히 교회 속에서 이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부어주시는 은혜는 아들에게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거기에 속한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과 자비를 덧입는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편77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