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창에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 19:1-4).
이 시는 찬송시에 해당합니다. 여기에서 ‘영장으로 한 노래’.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요즘으로 말하자면 성가대 지휘자 그런 정도 되겠죠. 그 사람의 지휘에 맞춰서 부르는 노래, 그런 정도 이렇게 되면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세계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세계에 대해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보면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과 관계된 많은 물건들이나 그 사람과 관련된 글이나 기억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을 자꾸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렇잖아요. 시집 간 딸을 생각하는 친정어머니의 마음도 그런거고...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런 것이 결국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해당되는 것이예요.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 자체는 같은 것이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 깃들여져 있는 하나님의 손길들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깃들여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만한 은혜가 없으면 잘 안보이죠. 그런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잘 안 느껴지죠.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깊이 받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들 속에 깃들여져 있는 하나님의 흔적이 느껴지는 거죠. 그게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즉, 이 속에 있는 많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보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은혜를 받게 되면 전에는 교회를 와야지 겨우 하나님이 느껴졌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들 속에서 하나님이 느껴지는 거예요. 달 아래 구르는 돌멩이 하나, 풀섶에 핀 풀꽃 하나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죠.
예수님이 그런 말씀 하시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이 세상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궁 속에 던질 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고 말씀하시죠. 결국 그게 무슨 뜻이죠? 예수님의 눈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들풀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느껴지는 거예요. 둘풀을 통해서도 공중을 나는 새를 통해서도 예수님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모든 것들을 친히 다스리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이 느껴진다 말이죠. 똑같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사랑하고 나면 하나님의 손길이 배인 모든 피조물들, 거기에 있는 아름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에는 하늘을 쳐다봐도 ‘달이 떠 있구나, 해가 지는구나.’ 이런 정도 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그 아름다운 성품과 우리 인간을 향한 탁월한 자비하심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구나.’ 하는 것들을 아주 절실하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고 느낄 수가 있었던 거죠.
이러한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모든 창조 세계 속에 당신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거죠. 그래서 오늘 이야기합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전하니 들리는 소리가 없고 나도 없으나.’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말로 크게 외쳐야지만 그게 외치는 게 아니잖아요? (주먹을 쥐며)이렇게 쥐면 ‘까불면 죽어!’ 그런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이 그것으로 하여금 소리쳐 외치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모든 피조물 속에서 하나님의 지성, 하나님의 의지, 이런 것들을 읽어내는 거죠. 심지어 이스라엘이 모두 멸망당해 버린, 예루살렘이 모두 멸망당해 버린 전쟁의 와중에서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시는데도 예루살렘에 아침이 오고 또 하루가 지나고 또 아침이 와. 이게 뭐냐하면,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니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고 새로우니 늘 새롭고 새롭습니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심이니이다.’ 이러고 고백을 하잖아요. 그런 것에서 까지 하나님의 자비를 느끼는 거죠.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일 그리고 심지어는 계절의 변화 들리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변화되는 이 모든 자연의 환경들 이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여전히 이 세계를 붙들고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할 그런 종류의 삶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하나님의 존재를 이 피조된 세계 속에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고도의 영성이예요.
그래서 언젠가 한번 ‘영혼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인가 그 시리즈를 설교할 때 일이었어요. 어떤 지체가 ‘열린신문’에 간증을 냈는데 내용이 그거였잖아요. 예전에는 교회 와야지 겨우 하나님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어디서든지 그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정말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눈 뜬 사람들의 모습이란 거죠. 그런 하늘의 달, 별, 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 이런 것들은 하나의 보조적인 자료죠. 하나님의 말씀은 주 자료고... 그런 것들이 보조적인 것들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고 무슨 일을 하는 분인가 하는 것들을 아주 명백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은혜 가운데 있으면서 그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