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9-12).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결하고 그 규례가 완전한지 앞에 이어서 설명한 후에 그 말씀에 대한 성도인 자기 자신의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은 송이 꿀 보다 더 달도다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 그 꿀이 달다고 하는 것은 뭐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꿀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빈들에 있으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더라 할때에 그 석청이 바로 꿀입니다. 그 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달다 는 거죠 그러면 우린 그런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꿀처럼 달다면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니깐 이것은 시인의 경험이지 모든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꿀같이 그렇게 단 것은 아니에요. 무슨뜻이냐면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곳을 향하여 있으면 그 말씀은 이렇게 꿀같이 달콤하고 송이꿀보다 달게끔 느껴지지만, 만약에 우리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바와 말씀이 우리를 데려고 가는 하는 바 그 방향이 틀릴때에는 그 말씀이 송이꿀처럼 달고 달콤할 수 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똑같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도 어떤때는 그렇게 송이 꿀처럼 달고 달콤하게 느껴지고 또 어떤때에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아무맛도 없고 성경을 읽어도 퍼석퍼석하고 성경을 읽어도 무기건조하고 나하고는 아무상관이 없는 말씀처럼 들리고 그러는 경우가 우리에게 있잖아요. 우리의 생애를 이렇게 돌아보며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너무 달콤하고 그 말씀이 너무나 뜨겁고 달아서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마음을 마구 움직이던 그런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이 어떠하느냐에 따라서 그말씀의 맛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펴지고 자기가 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한다고 할지라고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래서 틀려지는거죠 그것은 이 시인에게서도 마찬가지에요. 다윗의 시라고 되어있는데 다윗이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그렇게 송이 꿀처럼 달았을까? 그렇지 않죠. 영혼의 깊은 침체와 죄 가운데 있을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로 그렇게 달고 그렇게 그러지 않았죠. 절대로 그렇지 않았죠.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느냐에 이것에 따라서 그 말씀의 맛은 훨씬 달라지게 되는 것이에요. 음식도 마찬가지 잖아요. 식욕도 없고 배도불러서 아무것도 먹고싶은 마음이 없을 때에는 세상없이 맛있는거 갔다주어도 맛있지 않죠. 배가 고프고 배가 고파도 또 몸이 안좋아도 식욕이 없죠. 건강하고 배도고프고 적당히 일도했고 그래서 식욕이 당길때에는 얼마나 맛있어요. 그냥 바가지에다 보리밥넣고 열무김치넣고 고추장으로 비비기만 해도 너무 맛있죠. 그런거거든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몸으로 하기전에 먼저 마음으로 하는 거에요. 마지막 두 번째 보며는 시인이이런 예기를 하죠 자기의 허물을 깨닫을 사람, 숨은 허물을 깨달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의 효능은 뭐냐하면,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는 도져히 알 수 없는 그런 깊은 허물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는 도저히 깨닫고 알수 없는 깊은 허물들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보게끔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것이 말씀의 효능이에요. 그러면,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이런것들을 보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시인이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더 달도다 그렇게 예기해, 이 고백을 통해서 이 시인의 마음속에는 무슨소원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에요. 무슨 소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그 진실한 소원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그 진실한 소원과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숨은 허물까지 보여주는 아픈 말씀도 그에게는 송이꿀보다 더 달콤한 말씀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어제 지난시간에 설교하면서 그런 이야기 했죠. 회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이끌림이 있습니다. 두려우면서도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에 매혹이 되어서 두려우면서도 그 하나님에게 이끌리는 거룩함의 대한 두려움과 사랑에 대한 이끌림.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앞에 이끌려 가게 되는 거죠.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숨은 허물까지 다 들추어 내는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그 말씀은 송이꿀보다 더 담니다. 그말씀은 나에게 기쁨입니다. 그말씀은 나에게 행복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창조의 목적으로 데려가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말씀에 기록된데로 믿고 말씀에 기록된데로 사랑하면, 그러면 생활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창조의 목적으로 데려가요.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죠 그러니깐 우리가 마음이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창조의 목적을따라 살려고 하며는 그러면 그 말씀에 대한 말씀이 우리를 끌고 가려고 하는 곳과 우리의 마음이 가려고 하는 것사이에 일치가 일어나게 됩니다. 거기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아프면서도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 되고 쓰면서도 달콤한 것이 되고 그리고 쓰라리면서도 행복한 것이 되는 거에요. 거런 역설적인 효과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창조의 목적으로 데리고 가요. 말씀에 거역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접하지만,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바와 말씀이 우리를 데려가고자 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았을 때, 마음을 그 말씀앞에 꺽지 않고 마음으로 그 말씀을 누르려고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불순종이에요. 한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그러한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그것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가 연약해도 하나님이 지키시죠. 정말 우리의 인생은 바람앞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매우 연약해요. 우리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에 있어서 너무 너무 연약해. 그게 인간이야. 그렇게 연약한 것이 인간일 뿐이에요. 그렇게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강해지는 비결이 있어요. 그게바로 영혼에 잇대인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까지 이르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를 영혼으로 데려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현세적인 삶에 대한 애착을 끊고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만들어줘요.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의 목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자신이 영원자체 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를 거기로 데려가요. 그래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이 이땅에 우리를 살게 하실때에 그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에요. 하나님을 향한 보이지 않은 사랑은 그 계명을 지키는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체를 갖추고 이세상에 나타나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꼭 붙들고 하나님앞에서 살아가요.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부족하지만, 매일매일 자기를 깍아서 주님의 뜻에 맞추고 자기를 허물고 우리 주님을 세우고 그렇게 하면서 매일매일 한걸음씩 주님앞에 나아가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온전히 빚어지지 못한 사람인지를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 오늘 이아침에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지푸라기와 같은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빕니다. 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주님의 자비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고쳐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과 넓은 은혜로 우리를 어루 만지시고 치료하셔서 주의 뜻을 이땅에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