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1-2).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큰 유익을 얻는다. 어떤 유익을 얻냐하면 첫째는 자신의 환경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사람보기엔 안 계신 것 같아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지극한 공의와 사랑가운데 나타내 보여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원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의지하지 않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항상 좋은 환경만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그것이 마음에 평화다. 평화란 것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생각과 마음, 정신의 안정이다. 이런 마음의 평화는 어디에서 생기냐 하면 나의 인생에 많은 시련과 파도가 와도 그것이 하나님의 큰 계획과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고 하는 그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향을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환란이나 어려움을 만나면 그것 때문에 주님의 품을 파고드는 유익을 얻게 된다. 우리의 인생에 과거를 회구해 보면 우리가 환란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 또 모든 것이 평안하고 잘되가던 때에 여러 경우가 우리 삶속에 있었지만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의 밀월을 즐기던 그때가 언제였냐면 하나님을 많이 의자하던 때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한없이 약해지던 때이다. 주님을 향해 깊은 의존의 맘속에서 살던 때 그때가 우리들이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면서 살았단 말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싶다라고 하는 이것과 맘이 진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사는 것 사이에는 아주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사는 것 자체가 은혜의 작용이다. 누구든지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을 마음 깊이 의자하며 마음에 눈물이 흐르는 내면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이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가 그런 것 들을 거의 없이 살았냐 하면은 아니다. 하나님이 수시로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찾고 다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게 된다. 주님 밖에는 내가 의자 할 분이 없구나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마음이 왜 계속해서 유지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나를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맘을 단련하소서‘ 사람은 자신의 맘속에 무엇이 있는지 자기도 모를 때가 많다. 그 마음이 마음으로만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우리의 삶을 움직여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이끌고 갈 때 그것을 보면서 우리의 맘에 뭐가 있는지 알 때가 많다. 그래서 시인이 그런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주님의 맘에 합하게 살고 싶은데 시인자신의 맘은 심연과 같아서 그 마음에 뭐가 있는지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맘을 시험하사 단련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이렇게 뜻과 마음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잘 순응하며 이런 내면의 세계의 정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우리의 영혼에는 우리 영혼 자체는 물질이 아니기에 아무것에도 영향을 안 받을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기에 우리영혼에 다른 것 들이 달라붙게 되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굳게 만드는 것이다. 육신의 때는 씻어서 금방 떨어버릴 수 있지만 영혼과 마음과 정신에 묻은 흔적들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맘과 뜻을 단련하시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여기에 써진 이 단련이라는 단어는 금과 같은 것들을 제련할 때 쓰는 단어다. 그것이 단련되기 위해서 반드시 고통이 필요하다. 고통 없이는 절대로 단련되지 않는다. 우리의 맘속에 기쁨이 올 때 와 고통이 올 때 중대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면 우리의 맘에 기쁨이 계속 있을 때 그 기쁨을 통해서는 우리가 우리 맘속에 어떤 잘못된 것들이 있다란 것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고통이 오게 되면 그 고통을 통해 반응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 안에 옳지 않은 많은 것들이 그 맘과 정신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면 하나님 앞에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어떤 불결을 보고 옳지 않은 것이 우리의 맘과 뜻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기에 그래서 흔히 그런 표현이 있다. 내 맘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맘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과 원하는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지만 맘 그 자체는 영혼의 경향성을 반영이다. 그러기에 그렇게 흘러가려는 우리 마음 그 자체의 성향을 마대로 어떻게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시인이 하나님 앞에 호소한다. 자신 속에 이런 옳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그 연단을 통해서 정결케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고 있다. 그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선 반드시 고통이 필요하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연다하신다. 그래서 거기서 옳지 않은 것 더러운 것들을 하나님께서 빼내신다. 그것이 바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바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지 못할 때에는 이 세상에서의 평화나 좋은 것, 형통한 것,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사모함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을 갖게 되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순전함이다. 우리 맘의 깨끗함,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할 때 환란이 와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시련이나 고난이 겹쳐도 주님을 만나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만나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고통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마음의 깨끗함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이런 하나님을 향한 건절함, 자신의 맘을 연단을 통해서라도 깨끗케 해주기를 이 치열한 사모함, 이것들을 왜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 답을 오늘 성경이 들려준다. ’‘ 내가 나의 완전한 중에 행하였사오며‘ 삶에 공을 들여야 한다. 삶을 아무렇게나 하면서 맘이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온전함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질 때 비로써 인건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왜 그럴까 온전함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렇게 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발견해야지만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정도면 됐지 하며 자기머리를 쓰다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존하는 맘 은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온전해 지고자 하는 사람은 정결해 지고자 하는 사람들은 온전한 가운데 거 할려고 애를 써야 한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환경이 맘으로 주님 맘 의지하면 충분하다고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님 깊이 의지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과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이유이십니다.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이렇게 내적인 고통과 시련이 계속된다는 것들 때문에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자 사는 것 이런 삶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의존의 맘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