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주님께 부탁할 수 있는 사람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시26:8-12).
위기 속에서 이 시인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했던 그 일을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 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시인도 똑 같이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의 육체라고 하는 것은 사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우리의 영혼만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영혼은 영원의 복사판 입니다. 이 영혼이라는 것 자체가 영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원은 처음부터 있는 영원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이 영원하게 하셨기 때문에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두고 온 고향을 끊임없이 그리워합니다. 그러면서 이 영혼이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하늘 영원의 상태와 아주 유사할 때 그 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 우리의 육체가 아주 안정된 삶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영혼을 자기 육체를 굴리듯이 아무렇게나 굴리게 되면, 사람들은 먹을 것이 있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지고 건강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민소득이 아주 높은 나라일수록 자살률이 뛰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영혼의 참된 안식과 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 밖에 없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시인이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을 합니다. 원수들이 자기의 육체를 상하게 하고 이 세상에서의 자기의 삶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고 구박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영혼은 원수들의 그런 압제나 공격을 통해서 부서지거나 강탈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 그러한 인생의 위기를 만나서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나오는데, ‘앞에는 내가 사랑하였사오니.’.. 뭘 사랑하냐면 ‘하나님이 계신 성전과 그 영광을 내가 사랑하였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광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 효과, 또 사람들이 그 효과를 인정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반응, 이런 것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집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집을 향한 영광, 하나님의 집을 향한 사랑, 그 영광을 향한 사랑이 가슴에 깊이 밀려와서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들에게 에워 쌓일 때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했었던 예수님의 그 기도와 동일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내 영혼을 행악자들과 함께 살인자들과 함께 있게 마시고 내 영혼을 특별히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온갖 시험 내 맘을 흔들고
저 악한 원수들이 안팎에 있으나
주 나와함께 하면 전진도 겁 없고
주 나와함께 하면 늘 안심하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본업이 아니고 다 부업입니다.
우리의 본업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본업입니다. 우리가 본업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인생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우리의 최고의 관심은 어떻게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시종일관 주님을 정말 사랑하고 완전한 중에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의 차이점은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고 언제든지 한계가 있어서 끝없이 자기를 버리는 인간의 사랑은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인간의 육욕적 사랑이 섞여있습니다. 그것들이 채워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그 사랑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육욕적 사랑과 섞이지 않은 하나님 자신만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완전함과 영원함과 불변함을 가진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온전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히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그 사랑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업입니다. 가장 중요한 본업인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우리 자신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모든 고통이 마지막에 결국은 어디로 귀착이 되냐면 그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고통입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런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우리의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사업을 잃어버리거나 건강을 잃어버려서 죽음에 가는 것보다도 더 큰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고통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오직 고통은 하나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네 안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인줄 알라 그것이 악이요 그것이 고통인줄 알라’ 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완전함이 없는 행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든지 내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삶이 모든 방면에서 온전해 지도록 그렇게 자기를 끊임없이 드리면서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세상은 잠깐 있다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 삶은 결코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한지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기쁨을 경험하면서 매일매일 주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한시라도 신앙에 있어서 이러한 구도를 놓아버리게 된다면 과거에 자기가 무슨 하나님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했던지 간에 소용없이 마치 줄이 끊어진 연이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우리가 이전에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진리를 어떻게 알았든지 간에 곤두박질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매일 그렇게 알아가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운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매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언제나 중에 행하며 자신의 영혼을 끊임없이 부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은 세상의 일이 잘 풀린다고 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세상의 일이 잘 안된다고 그 일 붙들고 매달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둘 다 모두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주님을 꼭 붙들고 오늘도 그 사랑으로 이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