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에서 받는 은혜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27:5-6).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인생을 살면서 환란은 반드시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악하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시고 그래서 환란을 당하게 되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또 환란을 만납니다. 이유가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사명을 따라 산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거기에는 분명히 목표가 있죠.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면은 모든 나의 삶의 환경이나 이런 것 들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켜주느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좋은 뜻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되면 그것 때문에 또 시련을 당하게 되는거죠.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정처없이 떠돌면 시련은 안만나겠죠. 피박이 오면 피하고, 고난이 오면 슬쩍 피해가면 안그럴 것 같죠 ? 그러나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또 징벌하시죠.. 그런식의 삶은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는 살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해도 시련을 만나고 이렇게 해도 환란을 만나고 인간이란 것은 그런 시련과 환란을 만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럼 문제는 무엇이냐? 그런 시련을 만날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갈 수 있느냐 하는 거죠. 그게 뭐냐하면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이 없으면 자신이 그런 환란과 시련을 극복해 갈 수 없어요.. 사람이 모두 돈이 없고 먹을게 없어서만 환란을 당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어느 한순간에 가서 도저히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게 되면 거기에서 사람들은 주저앉게 되는 거죠. 시인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으로써 그런 시련을 만나서 자기 자신의 힘이 더 이상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상황을 많이 경험했어요. 그런데 이사람이 그런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어떤 힘을 얻는 비결이 있었는데 그 비결은 바로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서 베풀어 주시는 위로와 능력이었어요. 당시에는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거든요. 그러니까 다윗시대의 성막 아니예요. 광야에서 쓰던 것 같은 성막이었던 거죠. 사람이 보기에는 크고 화려한 건물도 아니고 그냥 천막에 불과했는데 하나님이 임재가 있었던 것이죠. 거기에 가면은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은혜가 있고,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위로와 힘을 얻는거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요. 거기서 시인은 원수들에 의해서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비밀이 그 장막에 감추시고 그 장막 안에서 비밀스런 사랑으로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 모든 환란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의 힘을 공급해주시는 것을 경험했던거죠. 안락하고 편안하게 인생을 살아도 그것으로 인생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니죠. 삶의 진정한 가치는 자기를 창조하신 목적,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그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이 삶의 진정한 가치요 또 힘이고 그리고 능력입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살아가노라면 모든 것 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활짝 열리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없겠네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어제도 선교사님이 그런 얘기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셔서 14년을 후에로아일랜드에 갔는데 아무도 예수 믿는 사람이 없는거예요 14년동안. 하나님의 뜻인데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고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한없이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세워주신 그 자리에 서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은혜가 있을 때는 주님이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고난을 당한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시면서 참고 견디셨으니 나도 참고 또 견딘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요. 그렇지만 은혜가 떨어지고 나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고통은 피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것은 선택한단 말이죠. 그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의 본능이예요. 그리 피하는거죠. 어디로 부터인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져야 해요.. 이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거든요. 이 사랑은 이 은혜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살게 하는거예요. 어느 시인이 그것을 경험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많이 겪었는데 그에게는 남들이 알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여호와의 집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친밀한 사랑이었어요. 그걸 통해서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신 목적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계획대로 살고자 하는 강력한 소원이 하나님 앞에서 생겨나게 된거죠.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생활을 정말 우습게 생각하면 안돼요. 거기에서 이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진실한 사랑과 은혜가 공급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교회생활을 사람들은 그저 그냥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생활의 일부이다 이렇게 생각을해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이것은 우리의 생명줄 이예요. 그래서 태내에서 아이들이 보면은 심장박동 소리도 들리고 그러는데 탯줄이 전부다 엄마의 몸과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거기로부터 모든 양분과 필요한 것들이 자신의 새끼에게 전달되잖아요.. 교회가 그런 곳이예요.
그런데 그런 그 개념이나 생각이 전혀 없이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만신창이가 되면 결국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마음은 돌같이 굳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는 떠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혜의 샘이 그렇게 고갈되었는데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어요? 누가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이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도 일단 생명적인 연결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좋은것들이 그치고 마음이 굳어지고 영혼이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은 아주 추하고 더러운 것만 들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많이 죄짓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더 심하게 고통스런 일이 그 안에서 생겨나게 되는거예요. 그래서 정말 그 하나님께서 바라보곤하시는 그런 일들을 정말 주님 기뻐하시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여러분께서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