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시33:12~14)
녹취자: 이경순
그러한 찬송 속에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복됨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말도 나오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다 라는 말은 우리를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근거요 희망이라는 것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이 오늘날 기업이 잘 된다 안 된다 하는 그런 기업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기업은 제비 뽑아서 얻은 땅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기업은 땅이 입니다. 그 땅을 제비뽑아서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땅을 얻은 그것이 바로 기업 입니다. 제비뽑아서 얻은 땅 그것이 바로 기업 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에서 살고 그 땅을 붙여먹으면서 거기에서 곡식을 얻고 그래서 그것으로 재물을 삼아서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물건과 바꾸고 그 땅에서 샘을 길어 그 물을 먹고 거기에 포도를 심고 이렇게 해서 살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땅은 곧 그들의 삶의 기반이고 생명 입니다. 땅을 떠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다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그런 생명의 근거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기업으로 삼아서 거기에서 자기의 필요한 자원을 공급받으면서 살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 삼아서 그 하나님께 공급받는 영적인 자원으로 또 육적인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육신을 위해서 필요한 많은 물질 같은 것들도 우리들이 애써서 직업 활동을 통해서 얻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그러니까 기업이신 하나님에게서 생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필요한 자원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우리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의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다 여기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빼신바 된 백성 이 세상에 나라와 민족이 많은데 하나님이 특별히 어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해서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그 때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사야서 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원이요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이 땅에 심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기업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기업으로 여기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업으로 여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여기면서 거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생명적인 자원들을 얻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기업으로 삼으실 때에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생명적으로 필요한 무엇을 얻으시는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이라고 하시는가?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기업이라고 그러시는 이유는 기업의 원래 의미는 소유라는 뜻입니다. 내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기업을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 수 없죠. 힘이 없으면 빼앗기게 되지만 힘이 있는 한 기업을 잃어버리는 것은 중대한 파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잃어버리는 것 자체가 죄악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코 잃어버리시지 않는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다 그런 뜻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스스로 충족하셔서 아무것도 필요하신분이 아니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들을 통해서 무엇인가 필요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으신 이유가 그 백성이 곡식이 자라듯이 잘 자라서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 속에 실현되는 이 자연적인 통치와 도덕적인 통치를 보면서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 안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당신자신이 그들 속에 살아계시는 것 당신이 만드신 이 백성 이 땅이 하나님이 참으로 만드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자면 애써서 꽃밭을 가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꽃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 꽃의 종류를 선택하고 나무의 수종을 선정하고 그것들에게 색깔별로 키별로 이렇게 잘 맞춰서 꽃밭을 조성했습니다. 물을 주고 이렇게 그런데 그게 아주 잘 자라요 그런데 여러분 왜 행복해요? 여러분 자신도 아닌데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작품을 만들듯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서 무엇인가를 거기에다가 구현해 보고 싶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자라요 너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누가 와서 그 꽃밭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다. 그렇게 예술작품처럼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망가진 세상에서 하나님이 잘 고쳐서 그래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리고 참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사는 인간들의 무리들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참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뚫어지도록 쳐다보시는 이유는 둘입니다. 한 사람은 복주시기 위해서 또 하나의 경우는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따라서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감찰하심이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함 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복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그 하나님의 시선을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악인은 이런 시선 받음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자체가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두려움이고 그리고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쫒아서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선을 받는 그 자체가 가장 커다란 행복 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다고할 때 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 그 자체가 행복 아니에요? 그 사람의 시선을 받은 것 그 자체가 기쁨이 아니겠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선을 행복해 하고 기뻐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때의 그 시선은 곧 사랑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매일매일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분의 시선 앞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면전 앞에서 사는 인간의 행복 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쾌락이 주는 즐거움, 자기 마음대로 자행자죄하면서 사는 그런 빚나간 자유가 주는 행복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런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그의 기업이 되어서 그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그 분의 눈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행복을 하나님 바깥에서 얻으려고 할 때 거기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인간의 일반의 마음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들의 마음도 하나님이 지으셨죠. 그래서 그 마음으로 가장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은 그 마음이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때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말과 같습니다. 사탄이 올라타면 미친 듯이 날뛰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잘 모실 수 있는 아주 익숙한 기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의 말을 타시면 말은 아주 그 기수의 말에 순응하며 말과 기수가 하나 되어 달리듯이 그렇게 달려갑니다. 말과 기수를 이렇게 보세요. 기수는 몸무게가 45킬로그램 이하여야 되거든요. 그 기수가 말을 타고 막 달릴 때 보면 편안하게 앉아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말에 탁 붙습니다. 그리고 말이 뛰는 것에 따라서 이 기수도 함께 따라 뛰면서 몸을 움직이면서 말의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출렁거리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잖아요. 그게 말을 잘 알고 있는 기수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은 말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수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달려가게 할 수도 있고 좌로 우로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기수죠. 그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마음은 하나님에 의해 점령된 마음 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마음이 점령되지 않으려고 하는 독립적인 정신 입니다. 그 독립적인 정신은 아주 패역한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때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 때 우리는 우리자신을 비워 하나님을 향해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안에 충만히 계시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시도록 그렇게 그 하나님을 향해 우리자신을 개방하고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충만하게 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대도 인간은 끊임없이 독립하려고 하거든요. 그렇게 독립하려는 이유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때의 그 마음에는 평강과 기쁨 평화 사랑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혼란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구스티누스가 뭐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까지는 내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어디에도 그런 평화와 행복 같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영혼의 작용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영혼 자체의 고향이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 품으로 돌아갔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 인간의 마음은 모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품을 파고들기를 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집요하게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두마음이 인간 안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품안에서만 가능한 행복을 하나님 품 밖에서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모순과 갈등 그리고 시련 거기에서 범죄 이런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그에게 주셔서 왕과 황제보다 뛰어난 지위를 누리게 하신다고 하시더라고 그렇게 할지라도 그 인간이 하나님을 저절로 찬양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서 지배 되어야 해요. 그러면 이 세상의 부요한 모든 것 주시지 않고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 찬송할 수 있습니다. 시련과 역경을 만나도 주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신앙의 원리고 인생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복을 그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점령된 것, 그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찰 하시는 것 거기에 인생의 행복을 두면서 살아갈 때 그때에 우리가 역경과 시련,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어도 하나님을 늘 찬송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째로 주셔도 그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