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지함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0-22).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이 여기에서 자기의 시를 마무리를 합니다. 결론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게 많은 역경과 어려움, 그리고 시련과 고통이 있었지만 마지막의 고백은 “내 영혼은 즐겁습니다” 그것이 고백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즐겁습니다. 내 영혼이 즐거워합니다” 그런 고백이었습니다.
그 모든 즐거움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물질이나 권력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받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이 즐거움은 하나님 자신에게로부터 오는 자신의 영혼의 즐거움이었어요. 그래서 뭐라고 노래 하냐면 “내가 그렇게 내 영혼이 즐거워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즐거움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맞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 안에 참된 즐거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서 어떠한 태도, 그리고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의해서 인간에게 다양하게 경험되기 때문이죠.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같은 자리에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악하게 살아가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때 한 사람에게는,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그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의 기쁨이라는 것이 경험되지만, 동시에 같은 자리에 있는 악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엄격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으로 경험되는 것이죠. 시간도 같고 장소도 거의 똑같은데 하나님은 그 사람에 의해서 다르게 경험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인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기쁨이 되고, 또 자기에게 즐거움이 되신다고 고백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나타나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된 다음에도 하나님이 그것들을 붙들고 계심으로써 그 만물이 참 하나님의 원래 창조의 계획을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 작용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바로 하나님이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의 만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이 세상에 있는 만물들을 창조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도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름다움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만큼 인간은 추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그 하나님을 바라게 될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더 깊게 만들어 주시는 거죠. 거기에 모든 즐거움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많이 의지하게 되냐면 자기를 의지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 일을 하나님 앞에 아주 가치있는 것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르켜서 자기 의의 마음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보이시는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이에요.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또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독립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의 생활이고, 그게 바로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모든 것들의 본분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을 의지함에 있는 거죠. 인간도 그렇게 창조된 거예요.
근데 이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 흙이나 돌, 풀, 물, 바람, 하늘, 땅, 그 다음에 그 위에 살아가는 짐승과 육축,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지도 못하고 덜 의지하지도 않아요. 그건 하나님이 덧입이시는데로 의지하고 사는 거죠. 인간의 육체도 마찬가지에요. 뭐 좀 인간이 자기의 육체를 잘 돌보면 수명도 길어지고 내구연한이 오래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해지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이 덧입히시는 한도 안에서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틀려요.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도 있고 덜 의지할 수도 있어요. 그런 자유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거죠. 그래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육체는 이 땅에 있지만 영혼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래서 하나님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자기가 다만 바람이요, 그리고 흙일 뿐임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에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에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즐거움을 주시는 것이죠. 인간의 모든 비극은 하나님께 독립하려는데 있는 것이에요.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모상이 인간속에서도 잘 나타나요. 우리가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를 의지하게 되죠. 그 속에서 그 부모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사랑과 그리고 믿음에 따라 사는 인간의 도리를 배우게 되는 것이에요. 만약에 그 어린 아이가 태어났지만 의지할 부모가 없든지, 혹은 부모의 행실이나 모든 것이 의지할 만하지 못해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어려서부터 개척하며 자기를 돌보아야 한다든지 이렇게 되면 심성이 굽게 되는 거죠. 생활력이 강하고 그럴지 모르지만은 심성이 굽게 되는 거죠. 그게 또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데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부모의 사랑 속에서,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 아버지를 의뢰하는 것은 굉장히 쉬워지는 거죠.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그런 인상이 없어요.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하시니 그 이름이 자신에게는 상처와 고통밖에 없는데, 육신의 아버지를 의지하던 경험이 없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정의 어떤 참다운 회복이 없이는 교회가 참 교회로 존재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부모를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인간이 참 사람으로 자라가듯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시인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인자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인자는 하나님의 자비이죠. 그래서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향해 베푸시는 그 하나님의 넘치는 슬픔이 담긴 사랑이에요. 그 슬픔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죠. 거기에서 나오는 사랑. 이것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는 것이죠. 인간이 결국은 자신의 전 존재를 그렇게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그러한 존재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삶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의지하며 살아가야될 삶인 것입니다. 자기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받지 못해요. 그러나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 모든 만물들을 사랑하시고 그리고 특별히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