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의 능력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3-6).
시편을 보면, 사람들을 하나님을 향한 경배로 초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자고 불러내는 것입니다. 혹은 기도하자고 초청하고, 또 찬송하자고 초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기도에 초청하는 것이 어떤 사실들을 보여 주느냐 하면, 나 하나만 하나님을 잘 믿고 예배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뿐만 아니라 나의 이웃, 심지어는 나의 원수들까지도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 같은 것들이 진실로 올바르다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마음이 다른 사람 안에도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참된 경배의 마음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좋은 물건 하나를 사서 만족해도 사람들에게 많이 권하는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해서 그것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었던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자신 안에 이루어진 일과 꼭 같은 일이 자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이 ‘함께 그 이름을 높이자’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아직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못 보아 그렇지, 정말 너의 마음의 눈에 띄기만 하면 주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말 크고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세계 곳곳에 있고 우리의 삶 속에 있는데도 너는 참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그들을 설득하면서 그들을 경배로 초청하는 것이지요.
제가 목회를 해 보니 전도를 누가 하느냐면, 오래 예수를 믿은 사람이나 교역자, 권사님, 장로님이 도맡아 하는가, 아닙니다. 새신자도 아니에요. 그럼 누가 하는가?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지금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살아 있는 사람이 합니다. 오늘 예수 믿은 사람이든, 오래 전부터 예수 믿은 사람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전도하지 않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 안에 그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인은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혹시 그들이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까봐 자기가 만났던 어려움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예를 드는 것입니다. 저희가 그 큰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앙망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광채를 비추어 주셨더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얼굴빛이라고 묘사되어 있기도 한데, 하나님은 사람의 형체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얼굴과 손발이 있다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의 영광은 얼굴에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볼 때 두려워하게 되고, 또 그 권세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사람에게 얼굴빛을 비춰줄 때에 그것은 특별히 은혜를 베풀겠다는 호의의 표현이지요.
그래서 이제 왕 앞에 나아와 엎드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왕이 ‘그대는 얼굴을 들고 나를 보라’는 것은 은총을 베풀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거리로 사용됩니다. 너처럼 어려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앙망했더니, 하나님께서 은총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러니 그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냐. 우리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이자.
두 번째는, 자신이 간증하기를 ‘내가 환란을 당했었는데 그때 내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 주셨다’는 것을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났고 그 어려움에서 구출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 시인은 하나님을 광대하다고 부르고 많은 이웃들을 불러 우리 함께 하나님을 높이자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구원으로 삼으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삶,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환란의 날에 우리를 환란으로부터 건져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세요.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의지해야 해요. 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시편에 보면 환란의 날에 찬송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환란의 날에 찬송을 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란의 날에 회상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를 이보다 더 큰 시련에서 구해주셨던 그 옛날의 일들을 찬송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과 경배의 정신이 솟아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자기 민족을 건져 주신 것,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것 모두 그들에게 있어서 회상의 제목이 됩니다. 눈앞에 환란이 있는데 시련이 많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어 인생의 벽이 느껴질 때 회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이보다도 더 큰 환란 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것을 생각하며 그분의 능력을 기억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큰 시련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수많은 원수들에게 에워싸일 때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다루셨는지 생각하고 깊이 회상합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을 꼭 덮으시네
그래서 인생의 가장 곤고한 날에 나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능력에 대한 회상이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면 사람에게 우리의 회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기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과의 관계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손을 꼭 붙들며 이게 회상의 능력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자신이 바라는 것의 실상, 보이는 것들의 증거를 꼭 붙들고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어요.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불행은 기껏해야 죽음인데 우리에게 있어 이 죽음은 생명으로 건너는 강이지요. 이쪽이 오히려 죽음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러니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주님을 꼭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늘 맑고 밝은 날만 있겠어요?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나를 인도하소서
그렇게 살아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고, 기쁨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