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우매함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시 38:4-5).
그 예전에 그 왜 짐꾼들이 짐을 나를 때 그때 짐을 한껏 많이 지면 그 짐이 머리위에까지 이렇게 올라오잖아요. 그거를 허리가 휘도록 짐을 나르는 사람들 기억날 것입니다. 그렇죠? 오늘 이 시인이 자기가 죄를 지으니까 자기 영혼, 그 자체가 이 무게를 이렇게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머리 꼭대기까지 짐이 올라와서 넘치는 것처럼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이 짐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래서 짐꾼이 무거운 짐을 머리 위까지 올라오도록 지고, 그래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내가 죄를 지었더니 그 죄악이 나에게 그 무거운 짐이 되어서 이렇게 나를 곤고하게 합니다 라고 하는 그 고백이죠.
죄는 우리의 영혼에 그런 큰 무게를 더합니다. 우리의 참된 자유는 그 진리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로 날아가는 거죠. 아마 이런 것이 단순한 시가 아니라 진짜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느껴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은혜를 많이 받고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욕망을 털어버리게 될 때에 그리고 주님만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때 여러분들의 영혼이 여러분 자신에게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죠. 그래서 아무거리낌이나 얽매임이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을 이 안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생활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렇게 아주 영혼이 가볍게 느껴질 때 그때 그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더러 무엇을 하라 그때 그 영혼은 아주 자유롭게 움직이고 거기에서 순종하는 삶이 나오는 거죠. 그리고 유혹이나 아니면 시험을 피할 때도 아주 신속하게 피할 수 있고 하는 그런 비결들이 바로 거기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죄를 지었을 때 이 영혼의 무게가 넘쳐서 그래서 자기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그때는 어떻게 되는냐는 거죠. 그때는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에요.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영혼이 무겁게 되면 그 무겁게 될 때에 그것이 내려가는 방향이 있어요. 그 방향으로 함께 가는 마음이나 행동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거예요. 무슨 뜻인지 이해 가세요? 이해안가?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뭐라고 비유를 들을 수 있을까? 그래 그렇게 들 수 있겠네.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려고 하는, 솟아오르려고 하는 풍선 같은 그런 기구를 밑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잡아당기는 거죠. 아주 빠른 속도로 줄 같은 것을 감아서 잡아 댕기는 거야. 그때에 더 좋은 비유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자. 어떤 사람이 날개 같은 것을 달고 새 같은 것이 날개를 달고 막 날갯짓을 하며 올라가려고 하는데 밑에서 줄을 묶어놔서 그래서 날아갈 수가 없어요. 점점 점점 큰 추같은 것이 달려서 밑으로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날아가려고 막 날갯짓을 하는데도 밑으로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위가 올라가려고 하면 새가 위로 올라가려고 하면 올라갈 수가 없어요. 날개를 접고 밑으로 추락을 하면 더 빨리 내려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의 자유는 있는 거예요. 그러면 죄가 이렇게, 죄악이 머리에까지 넘쳐서 무거운 짐 같아질 때에 그때에 그것이 잡아당기는 방향이 마음이에요.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도 영혼의 무게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무게. 영혼의 무게는 무슨 돌이나 이런 것의 무게가 아니라 영혼자체는 말하자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무게가 있을 수 없잖아요. 그 무게가 뭐냐 하면 죄의 무게예요. 밑에서 잡아당기는. 그럴 때에 그거는 자유가 주어지는 거죠. 그 방향이 뭐냐 하면 죄를 짓는 거예요.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혼이 깃털처럼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선한 소원을 품고 말씀대로 살고 은혜를 따라 살고 하는 이런 것들이 아주 굉장히 쉬워요.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 마음속에서 기쁨도 솟아나고 이렇게 되요. 그러나 죄가 가득 찰 때 그때에는 그런 것들을 혹시 선택해서 너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실제로 실행을 하려고 그러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영혼의 무게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 때에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고 또 기도하고 말씀을 더 많이 깨닫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훌륭한 것이지만 동시에 죄를 짓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이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감당을 해야 되는 것이 되죠. 비유를 하자면 그런 거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수영을 할 때에 두 사람이 경쟁을 하는데 한 사람은 말끔한 맨살에 아주 가벼운 수영복 하나를 걸치고 수영모 하나하고 그렇게 하고 수영을 하고, 한 사람은 모피 코트를 걸치고 수영을 한다면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 아마 누구도 그렇게 해 가지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비유를 하자면 그런 거라는 거죠.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상처가 썩어서 악취가 납니다’ 여기서 이 상처가 뭐냐 하면 자기가 지은 어떤 특정한 범죄예요. 그것을 여기서 상처라고 표현한 거죠. 죄라고 하는 상처는 덧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그래서 살짝 긁혀도 이게 덧나지만 않으면 몸 자체가 치유력이 있기 때문에 몇 분이면 피가 마르기 시작하고 그리고 덧나지만 않으면 며칠 지나면 딱지가 떨어지면서 새 살이 돋아요. 그런데 이런 그 면역력이 깨지게 되면 그러면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피가 멎지 않고 감염이 되는 거죠.
제가 옛날에 돌보던 형제가 하나 있었는데 청년인데 무슨 병이라고 그러는데 이름을 잊어버렸어요. 몸의 저항력이 없는 거예요. AIDS는 아니고 무슨 몸의 저항력이 없는 건데 감기만 걸리면 무균실에 들어가야 해요. 무균실이라고 있어요, 병원에. 그곳은 균이 거의 없는 병실이에요. 유리관처럼 해서 벌써 그때 20년 전인데 하루 사용하는데 30만원이라고 하더라구요, 무균실이. 그 방을 들어가야 해요. 왜냐하면 균을 견디지 못하는 거예요. 몸이. 그러니까 덧나려고 하는 성질이 상처에는 있어요. 그래서 생각을 해 보세요. 이렇게 해서 손 같은데 꽉 찧는다든지 해서 살점이 떨어져 나온 거예요. 상처가 나서. 상처가 난거는 작은 손가락 한 개인데 고통은 온몸이 다 느껴요. 그래서 욱신거리고 여기는 곪으면서 덧나려고 하는 거죠. 그런 거죠.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은 우리의 전 영혼의, 심지어는 우리의 육체에까지 고통을 주는 그리고 거기에서 자꾸 부작용이 일어나면서 그러면서 덧나는 거죠. 그래서 상처가 점점 심해지는 거죠. 그래서 작은 죄를 지었던 사람이 그 다음에 더 큰 죄를 더 큰 죄를 지으면서 죄는 끊임없이 자기의 지배를 발전시켜 가는 거죠. 그것을 고백하는 게 뭐냐 하면 이렇게 되었는데 결국은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내가 어리석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지은 것입니다 고백을 하는 거죠. 그래서 죄를 짓는 것은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잘못된 것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총명이 흐려지는 일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의해서 아주 정말 온전하게 변화된 그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이런 어리석음이 떨어지지 않죠. 그런데 죄를 짓는 거죠. 이것은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에요. 그래서 존 오웬은 신자가 죄를 짓는 순간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라고까지 했거든요. 어리석어지지 않고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항상 거기에는 죄짓기 전에는 지성의 가림이 있어요. 눈이 어두워지는 이런 일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죄를 짓는 것이에요.
이런 것들을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깊이,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후회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은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을 하나님 바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찾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면서 그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 주님이 우리에게 누리도록 주신 많은 유업들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오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주님이 저희와 함께 해 주셔서 늘 이기고 기쁨으로 승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