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는 주의 생각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
우리가 영혼의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참 낯설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영혼의 침체 속에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주님을 떠나게 되면 낯섦과 거리감, 이 두 가지가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친밀함이 사라지면서 하나님이 낯설게 느껴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깊은 골이 있어서 건너기 힘든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에요. 이게 신자가 영혼의 침체에 빠졌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미치는 영향이거든요. 이렇게 되면, 자기는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향해 관심이나 갖으시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침체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중요한 존재로 취급하신다는 생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에요. 근데 이렇게 하나님의 관계에 이런 변화가 찾아오게 되면, 그러면 점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느끼게 되요. 그래서 죄 자체가, 결국은 가져오는 효과가 고립이에요.
그래서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고립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고립을 가져와요.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깨뜨려지고 그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늘 교통하는 거죠.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다른 사람을 향해 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서 그 속에서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는 거죠. 근데 이제 죄라고 하는 그 자체가 이기심이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안 좋아하시고 이웃에게 악이 되어도 "나는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행한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거든요. 내가 어떤 욕심을 가지고 행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사실 그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되기 때문에 결국 죄가 자기에게 가져오는 효과는 단절을 가져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에게 단절을 가져오는 거죠. 끊어져 버린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을 가져오고 그 다음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단절을 가져오고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단절을 가져오게 되는 거죠.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을 때에는 내가 내 자신이 하나로 느껴지는 거죠. 우리가 죄 가운데 살면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죄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잘 모르고 그것을 좋아하는 옛 성품이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근데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깨어나게 되면 내 안에 악한 것들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그러나 은혜 가운데 계속 살게 되면 그러면 자기 안에 있는 잘못된 자아를 충분히 다스려요. 예를 들자면 늘 사람이 조급하고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은혜 가운데 충만히 있을 때에는 자기의 그런 기질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극복하고 이긴다 이거죠. 혈기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의 지배아래 있을 때에는, 자신의 혈기를 이긴다 이거죠. 이렇게 해서 가는 거에요. 그런데 이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자기를 잘 통제하고 하나로 살아가는데 죄에 빠지게 되면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거에요. 그런 것들이 자기 안에 일어나게 될 때에 그때에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이런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그러다가 이 시인은 지금 그렇게 깊은 침체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셨거든요. 새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있는 노래들로는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충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감격을 경험하고 나니까 그때 생각이 나는 거죠. "하나님이 참 행하신 기적이 많습니다!" 결국은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그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면서 그러면서 주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행하신 그 놀라운 기적들, 그 놀라운 일들을 시인이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영혼이 죄와 침체에서 벗어나게 되니깐 그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에 큰 일을 행하셔서 자기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경험 안에서, 이 모든 세상을 향해 행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그 권능이 자신의 마음속에 다가오는 거에요.
다시 설명 해드릴께요. 하나님이 아무리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인할 수 없이 위대한 일을 이 세상에 해 놓으셨다고 해도, 그 모든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가슴에 다가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만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혼 안에서 경험하게 될 때, 그 때에 그런 모든 위대한 사실들이 자기의 가슴속에 다가오게 되는 거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섭리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시는 그 놀라운 은혜, 하나님이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시는 그 탁월하고 놀라운 은혜,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는 그 은혜가 영적인 축복, 그리고 사물들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들이 섭리적인 축복이라는 거죠. 근데 우리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바치게 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는 이 모든 일들은 영적인 축복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영적인 축복들이 많을 때, 섭리적인 축복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이것들을 마치 성경을 통해서, 특별 계시를 통해서 일반적인 계시들을 설명하듯이, 영적인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들을 설명하고 해명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죠. 이 시인이 그것을 경험하게 된 거에요.
이 다윗의 그 위대한 점은, 제가 보기에는 천제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같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천제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의 모델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 사람이 이 구약시대의 다윗이고, 신약시대의 바울을 모델로 삼게 되요.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한번 만나주시면, 만난 하나님을 통해서 우주적인 지평으로 까지 자기의 인식이 확장이 되는 거죠. 구약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노래한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안 만나 주시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이 결국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기의 영혼에 깊이 경험하게 될 때에 그 때에 그 하나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흔적을 이 모든 창조의 세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정말 존 오웬의 지적대로, 구약에서 이 사람 만큼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도 역시 똑같이 모든 사람들이 간 그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거죠. 이 사람의 신앙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개인적으로 영적인 깊은 침체 속에 있다가 거기에서 헤어 나와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그저 "하나님 참 감사하다, 참 감격적이다!" 그게 아니라, 그렇게 영혼의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면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우주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거에요.
(찬양) 하늘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그러면서 자기 안에 일어난 영혼의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세계에 가득한 하나님, 온 땅과 하늘위에 충만하신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 하나님 앞에 알려요. 티끌만도 못한 아주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그런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하찮은 인간이지만 그러나 인간들과의 모든 세계 앞에서는 엄연히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의 계획안에 있어서 할 일이 있는 그런 존재로, 그래서 다윗의 사상은 결코 파괴 주의적이고 염세적이고 그리고 신앙 도피주의적이고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속에서 이 세계의 의미를 밝혀 나가고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신 거룩한 뜻들을 가슴에 세기면서 고난과 시련을 이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거에요. 이게 바로 다윗이 보여주는 신앙이란 말이에요. 우리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