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1-2).
2권이 시작이 되는 첫 머리에 42편이 나옵니다. 이 시편은 다섯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권부터 5권까지 시들을 다섯 그룹으로 모아 놓은 거죠. 그런데 이 시는 주전 1500년경부터 쓰여 지기 시작을 해서 아마도 주전 4세기까지 쓰여 졌을 거라 봅니다. 그때쯤 모으는데 하나 하나 있던 것들을 모두 모아서 배열을 할 때에, 그 때에 1권부터 5권까지를 만들어서 이것들을 구약에 나오는 5경과 연결을 시킨 거죠. 그래서 1권에서는 창세기와 관련된 듯한 내용, 주제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창조의 영광,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택, 이런 것, 그러면 당연히 2권에서는 출애굽기에 관련 된 듯한 내용이 많이 나오겠죠? 그래서 이스라엘 언약 백성들의 억압받는 삶, 그리고 거기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인생의 길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 장면들이 2권에 많이 나오게 되요. 그 중에서 첫 번째 시로 42편을 여기에다 넣은 거에요.
그래서 시인이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이 시가 다윗의 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는 표제에 되어 있는 바와 같이 고라의 자손의 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다윗이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라 자손이 이 시를 보관했을 것이다 생각을 하고 이 42편에 나오는 이 내용이 다윗이 평소에 보여준 문체와 매우 유사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죠. 어쨌든 그 표제에 의하면 고라자손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고라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할 때 있었던 족속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고 도전을 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셔서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자손의 모든 족속들이 땅속으로 들어 가버리는 그런 전대미문의 심판을 받게 되요. 그 때에 모두 죽은 게 아니라 후손 중의 일부가 살아남았던 것으로 여겨져요. 그러면서 인제 자손이 번성해 오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되요. 그래서 다윗 시대에 다윗과 함께 다윗이 나라를 일으킨 후에 이 사람들을 성전에 수종을 드는 종들로, 일꾼들로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고라의 자손이 다윗의 왕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요.
근데 이 시는 아마도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갔을 때에 그 때에 왕을 가까이 모시던 고라의 자손이 함께 따라가서 지은 시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을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서만 예배할 수 있었죠. 그런데 압살롬의 반역이 워낙 치밀했고 그리고 불의의 습격이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을 패배하여 황급히 요단강 건너편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이 시인이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원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자유롭게 될 때에는 그런 걸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환경이 어려워지고 막히게 되면, 정말 그 사람에게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되는 거죠. 마치 모든 것이 형통할 때에는 친구 사이가 정말 사랑이 있는 친구사이인지 모르다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참된 친구와 거짓된 친구가 드러나게 되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고라의 자손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할래야 경배할 수 없는 이런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 주님을 찾는 이 모습을 보면서 결국은 이 사람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경배의 정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는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을철이 사슴들의 교미기입니다. 이때가 되면 사슴들이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고 그래요. 아시다시피 거기는 물이 흔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사슴이 짝짓기에 나섰다가 엄습하는 목마름 때문에 물을 찾게 되는 거죠. 근데 물이 없어요. 이제 헛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리고는 내달리기 시작하죠. 그러다 결국은 쓰러지고 죽을 때는 앞발로 땅을 파다가 죽는 다고 그래요. 시인은 그렇게 가을철에 시냇물을 찾다가 결국은 그것을 찾지 못해서 죽어가는 많은 사슴들을 보면서 자랐던 거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대치할 수 없는 갈망, 무엇으로도 바꿔놓을 수 없는 간절한 하나님 자신을 향한 갈망, 목마름, 이런 것이 그의 심령 속에 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게 결국은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내면의 세계에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 주님을 뵈옵고 그 교제 속에서 살려고 하는 간절한 몸부림과 갈망, 그런 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면서 이 고라의 자손이 하나님 앞에 목말라했던 것이죠.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바로 가난한 마음이고, 그런 마음이 바로 애통하는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는 사람들의 마음이에요. 그러니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한마디의 간절한 기도는, 갈망이 없는 수 만 마디의 말보다도 더욱 하나님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타는 듯한 사모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리워하는 절실한 갈망,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인이 정말 갈망했던 것은 생존하시는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늘 율법 아래서 익숙하게 그 율법을 배우며 살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제사하는 그런 문화 속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만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율법 속에나 계신 하나님,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고가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지금 살아계셔서 나를 위해, 나와 함께, 나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일하시고 또 행동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아주 절실하도록 갈망하는 그런 신자가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런 절실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시인이 왕을 모시고 다시 잃어버렸던 왕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 간절한 사모함이 있는 한마디의 기도, 그런 절실한 그리움이 있는 하나의 순종하는 행동, 그리고 섬김,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