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함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살이 날카로와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시 45:3-5).
I. 본문해설
인제 전쟁의 문맥이거든요. 그래서 왕을 찬송하되 전쟁의 문맥에서 왕을 칭송하는 거예요. 전쟁을 독려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래서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존엄을 입으소서’. 그러죠? 그 전쟁에 있어서 왕이 직접 참가하는 전쟁을 침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침전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전쟁일 경우에 왕이 침전하는 거죠. 왕이 전쟁에 참여한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이 전쟁이 국가의 운명을 달린 전쟁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지면 왕인 나도 없다 그런 의미예요. 그러니까 왕이 이 전쟁에 참여한 것을 보면 이 전쟁이 나라의 명운이 달린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시인이 왕을 칭송하면서 독려하는 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능한 자여” 이것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어 아주 전쟁에 능한 것을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다윗 왕을 가리키는 환송시라고 그렇게 생각이 되요. 그래서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근데 왕의 영화, 왕의 위엄 이런 것은 사실 이 땅의 하나님을 구현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방불한 그러한 존귀, 위엄이 왕에게 있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존엄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위엄이고 또 존엄이죠. 그렇지만 이 왕의 위엄과 영화와 이 존엄은 모든 사람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엄과 영화예요. 그러니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지하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이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 보여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모든 왕의 위엄과 영광이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임금들이 각기 자신을 신격화 하고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위엄과 영광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참된 왕이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신적인 위엄은 모든 나라의 왕들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모든 나라의 왕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 시선이 멎기를 원했고 한결같이 그 왕들이 자기를 하늘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를 좋아했죠. 그러니까 나는 하늘에 계신 신의 아버지다 이렇게 떠든 왕은 없어요. 그렇게 보면 모든 왕들은 자기가 신의 후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신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잘 들어 보세요. 신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왕인 자신과 통치를 받는 백성들 사이의 불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무슨 뜻이냐면 내가 신의 아들이다 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사실은 진짜 신과 자기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통치하는 나와 통치를 받는 너희들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 그러므로 내 통치에 복종하라 그것이었어요. 그것이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달랐어요.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했어요. 잘 들어보세요. 이게 이스라엘이 그런 점에서 아주 독특한 것이었어요. 독특한 나라였어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거예요. 그럼 아들은 어떻게 되냐 이거죠. 아들은 어떻게 되냐 하면 강조를 안 해요. 왜 강조를 안 하냐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모두가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고 그리고 자기의 모든 백성들은 자기와 함께 하나로 묶여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자기가 왕인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데 필요하셔서 왕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한 나라의 왕으로 다스리지만 다른 나라처럼 나는 신의 아들이고 너희들과 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어서 그래서 너희들은 사람의 자식들뿐이다 이런 논리가 성립을 안 하는 거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왕을 종으로 택하셨을 뿐이고 그렇게 택하셨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에요. 그러면 왕이 영화와 존엄을 드러내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드러내는 영화와 존엄이에요. 이것이 이스라엘의 왕 사상이에요.
그러면 그 왕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통치해야 되는데 그것은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왕이 그 모든 나라를 통치할 때 자기가 궁극적인 법의 근원이 되요. 그래서 법으로 통치한다고 그러지만 자신이 만드는 법이고 또 자신은 종종 그 법을 넘어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왕이 그런 영화와 존엄을 가지고 있지만 백성들을 통치할 때는 정확하게 참 왕이신 하나님의 의지를 구현해야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는 성경 속에서 율법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의 통치가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섬김인 한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왜? 지금 전쟁에 나가는데 거기에서 반항하는 많은 이방의 무리들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과 의지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스르려고 하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왕의 승리는 곧 하나님의 승리가 되는 것이고 이 전쟁에서 이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전쟁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통치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니까 대의명분이 있는 신앙적인 전쟁이라는 거죠. 그래서 왕들이 전쟁을 할 때에는 땅을 넓히고 노예를 얻고 아니면 자기네 나라를 괴롭힌 것에 대해서 보복을 하고 이러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뭐라 그러냐면 왕은 전쟁을 하는데 땅이나 나라나 영토나 군대나 이런 것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온유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하여 승전하소서’ 그거예요.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섬길 뿐 아니라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나타난 그 왕직을 물려받고 그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왕적인 존재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전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 이게 믿음의 싸움이요 영적인 전쟁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눈에 보이게 주어진 왕의 지위와 명예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왕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직분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싸우는 거예요.
예전에는 이 전쟁이 혈과 육에 속한 전쟁이었지만 다만 지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전쟁이에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창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적인 창칼이에요.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기도와 용기, 믿음 이런 것들에 의해서 우리들의 영적 싸움을 싸워가는 거예요.
그 전쟁의 목적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그런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그대로 구현되기 위해서 그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리는 그 모든 악한 무리들을 복종시키시고 굴복시키고 꺾기 위한 전쟁이에요. 또한 이 전쟁은 예전과 같이 창칼로 수행되고 적들에 대한 심오한 적개심으로 이루어지는 전쟁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런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그 전쟁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켜가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되는 것이죠.
거기에서 최고의 가치는 승전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보다 더 뛰어난 가치가 있는 것은 없어요. 아무리 좋은 것들이 있어도 전쟁에서는 승리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어요. 그러면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칠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의 오른손이라고 하는 것은 왕이 가지고 있는 이 오른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붙들고 있는 오른손,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 자신이 바로 의로운 오른손임을 가르치죠. ‘나의 의로운 손이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2장 10절에서 말하죠.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고 오른쪽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고 손이라고 하는 것은 권능, 능력, 권능, 힘,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죠.
여호와의 손이 나를 누르시나이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큰 힘으로 자기 자신을 압박하고 계시는 것을 가르치죠. ‘여호와께서 손을 펴시매’ 하나님께서 손을 펴시면 큰 권능이 일어나고 손이 바로 그런 거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힘을 손으로 행사하잖아요. 그게 힘이 바로 그런 거예요. 그래서 힘을 뜻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왕의 오른손, 왕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두려운 일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영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 앞에 엎드려지는 도다’ 그래서 이제 이 화살을 쏠 때 말이죠. 여러분 그 화살이 생각보다 굉장히 멀리 나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거의 한 430m 까지 나가는데 보통은 한 330m나가는데 고구려 때 만든 특별한 화살은 430m 까지 날아가죠. 굉장한 거죠, 사실은. 그렇게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가요. 그러니까 활은 그 자체가 멀리 있는 적을 보이지 않게 처치하는 수단이 되는 거죠. 근데 그 활이 쏜살같이 날라서 사람을 가격할 때 맞아도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가 있고 치명적인 부위가 있어요. 그죠? 얼굴 같은데 눈 같은데 맞으면 치명적이겠죠. 그러나 팔 같은 데를 맞으면 치명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독을 뭍이면 문제는 틀려지지만 근데 여기서는 왕이 말을 달리며 활을 쏘니까 그 활이 쏜살같이 날아가서 원수의 심장을 꿰뚫는 거예요. 이것은 다시 회복되거나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격필즉의 화살이죠. 한번 맞으면 그대로 죽는, 즉시 죽는 그런 무서운 화살이에요. 그것이 말하자면 화살이에요.
그렇게 해서 원수의 염통을 뚫는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항하는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갚음이고 그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온 땅 가운데 실현되는 그래서 오늘 날 우리가 복음의 빛 아래에서 이런 시들을 해석한다면 이것은 상당히 영적인 것들로 해석이 돼야 해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어떤 사람을 겨냥해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해석하지 말고 오히려 이때에 이 전쟁의 문맥은 오늘날 영적인 전쟁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표였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 모든 세계를 조정해 역사하는 악한 영적인 원수들에 대한 대적, 이런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그것들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그런 삶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원수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바로 원수의 염통을 꿰뚫는 그런 화살의 공격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하면 그런 어떤 전 의를 가지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신실하신 주님, 오늘 이 시간에도 이 말씀으로 우리를 꼭 붙들어주시고 저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왕 삼으셔서 그래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러 어두움의 나라에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하기 위하여 저희를 파송하셨사오니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