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피난처이신 하나님 2
“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시 48:4-7).
어제는 제가 그 공동체성에 대해서, 시련의 공동체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온 세상을 한 가족으로 지으시고 싶어 하셨던 것이죠. 죄는 그것들을 깨뜨린 것이죠. 그러니까 죄가 들어와서 제일 먼저 파괴한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던 사람, 사랑하던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 사랑을 하나님이 사랑하던 인간 속에서 타락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그 사랑은 남아있는데 그 사랑이 자기를 향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되고 나니까 모든 인간이 그 사랑을 자기를 향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가족 안에서의 사랑도 깨뜨려지고 더욱이 가족 안에서의 사랑도 깨졌는데 공동체로서의 국가 속에서의 사랑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아요?
그 나라라고 하는 그 자체가 서구 사상에서는 그게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계약관계라고 보는 거거든요. 성경에서도 보면 이 나라에 대해서는 그 왕의 설립이죠. 왕의 성립에 대해서는, 왕국의 성립에 대해서는 그건 절대로 긍정적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함으로 왕을 주셨고 분노함으로 왕을 버리셨도다’ 이게 호세아서에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가정에서도 그게 깨졌는데 국가에서 그런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 인간의 욕망은 나라의 크기를 키우고 그것은 서로 왕이나 혹은 자기 시민들의 욕망을 증진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 했던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불가능해 지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만드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셔서 그래서 그 인간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묶으셔서 그래서 미래의 가족관계로 회복될 그것을 이제 교회를 통해서 보이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그런 거를 아무리 계획을 가지고 계셔도 못하는 건 못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중생의 가장 분명한 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중생한 신자가 끊임없이 죄와 싸우면서 살아가는 그 표징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얘기예요.
어쨌든 그런 위기를 이스라엘이 만났을 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주셨다’ 라고 하는 것이 3절의 이야기입니다. 4절에 보니까 ‘열왕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으며 빨리 갔도다’ 그런 얘기가 나와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도망가는 거 얘기합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 어떤 나라가 쳐들어 온 것도 그게 큰 일일 텐데, 여러 나라의 왕들이 연합을 이루어서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으니까 이것은 큰 전쟁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쳐들어 왔는데도 함께 모여서 사라져 버렸다는 거죠.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함께 모였는데 결국은 그들이 모두 도망쳐 버린 거죠. 그리고 패배해서 물러 간 거죠. 두려움 속에서 물러간 거죠.
그러면서 나오는 얘기가 뭐냐 하면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이건 큰 공포가 엄습한 거를 이야기 하는 거죠.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도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특별히 사랑하실 때 그때 그들이 큰 대적들에게 에워 쌓여 있을 때에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시던 방법이 신적인 두려움을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게 내리시는 거죠.
예를 들자면 창세기 34장 35장에 보면 이스라엘 야곱의 집안이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렀을 때, 그때에 세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거 안 좋아하셨죠. 그때 거기에서 디나라고 하는 야곱의 딸이 세겜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일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이제 야곱은 생각해 보니까 머리수가 너무 적어서 저들과 싸움을 벌이다가는 큰 일이 나겠는 거죠. 그래서 참고 있었는데 자식들이 돌아와서는 누이가 그렇게 된 것을 보면서 그러면서 그쪽하고 흥정을 해서 남자들을 전부다 할례를 받으면 우리 동생을 주겠다 그렇게 해 놓고 전부다 신열이 나서 누워 있을 때 가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전부 다 죽여 버려요. 그렇게 하고 나서 큰 공포를 야곱이 느낀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하고 가나안 원주민들하고는 전부 다 한 통속인데 이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가나안 족속들이 자기를 죽일려고 덤벼들 거라는 거죠. 근데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시는데 그들이 당당히 도망을 가는데 당당하게 그들 앞을 지나가는데 그 사람들이 추격을 하는 자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큰 두려움을 그들에게 내리신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 하셨던 큰 일이 뭐냐 하면 풍문을 듣게 하시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널 때 요단이 말랐대. 그리고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그 성이 힘도 못쓰고 무너졌대, 이런 풍문을 들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큰 두려움이거든요. 그런 걸 하나님께서 내리시니까 이들이 마음이 마치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를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젊은 여자가 해산의 고통을 할 때 두려워하는 것 같이 그런 두려움에 확 사로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게 찬송의 제목이 되는 거죠.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보호하셨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속에 있는 특별한 언약의 관계예요.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이 가지고 있는 큰 능력을 이스라엘 백성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입증하시는 방식으로 사용하시는데 그게 뭐냐 하면 ‘궤를 깨뜨리시는 도다’ 죠. 아마 이 왕들의 공격이 바다를 건너온 그러한 해상을 이용한 공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바람을 보내어서 다시스는 그 당시에 커다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였어요. 그래서 그 도시로 많은 배들이 여행을 하면서 물건을 팔고 혹은 또 군왕들도 띄우고 이랬는데 그 배를 하나님이 동풍을 불어 깨뜨리시는 도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내시는 거죠. 이게 요나의 경험에서도 간 곳이 바로 다시스였잖아요. 그때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셔서 그 배를 풍랑을 만나게 하시고 하는 그런 장면들이 나오는 거죠. 하나님이 그런 큰 능력으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라도 자기의 백성을 섭리 가운데 보호하시고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그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이 모든 이런 가능성과 사실들을 하나님의 선에서 만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시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거기에 좌정하셔서 그래서 왕이 보좌에 앉는다고 하는 것은 쉬거나 밥을 먹으려고 앉는 게 아니라 일하기 위해 앉는 거예요. 거기 앉아서 그래서 이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그런 놀라운 능력과 큰 위엄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심으로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이 언약을 맺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복이에요.
필요하면 주님께서 주시고, 간구하면 주께서 보호하시고, 그리고 주님께 요청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내리시는 것이죠. 문제는 무엇이겠어요? 그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거예요.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거죠. 위기에 처하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시련을 만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세요. 큰 고통을 만나면 눈물은 흘리고 괴롭지만 그 고통을 통해 그 풍랑을 인하여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만들어 주세요. 요점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 주셔서 잘 감당하며 주님을 피난처로 삼으며 매일매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