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주를 따를 때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붙인바 되어 시랑의 밥이 되리이다 ”(시 63:8-10).
이제 이 시의 끝부분에서 시인은 어 자신, 주님을 따르는 자신과 그리고 시인을 멸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악인 사이의 대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그랬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주의 오른손이라고 하는 이 표현은 주님의 선택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사야 41장에도 보면은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니...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을 당신 우편에 두신다는 사상이죠. 그래서 하나의 비유이기는 하지만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우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어 하나님이 그 오른손으로 붙드신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선택을 가리키는 거죠. 그럼 왜 오른손이 선택을 가리키냐 하면은 이 사람들도 그 어려서부터 오른손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훈련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그죠? 그러니까 오른손 하면은 왼손보다 훨씬 더 중심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그리고 왼손보다 강한 팔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오른손은 선택한 자요, 또 하나님이 붙드시는 손...이렇게 설명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오른손으로 나를 붙드신다..이런 이야깁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냐 하면 그 그런데 그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냐 하면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리니...그런 뜻입니다. 이건 하나의 문학적인 표현이겠죠. 그러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사랑하는 그 하나님께 애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영혼의 모습을 가까이...라고 표현했고 그리고 그 분이 무엇을 명하시든지간에 즐겁게 그 분의 명령의 잘 따르고 순종하는 그러한 영혼의 상태를 가리켜서 이제 그 따른다...이렇게 표현을 한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어 하나님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친근히 함으로 그 분께 가까이 근접하고 그리고 그 분이 어디로 이끄시든지 그 분을 즐겁게 따르는 시인의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존 오웬 목사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생애 최고의 그 소원? 아니면 생애 최고의 그 음 생애의 최고의 그 행복과 기쁨, 이것이 바로 그 하나님의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 이것이에요. 여기서 이 시인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고 주의 오른손이 그를 붙들고 계신 이 모습은 바로 주님과의 동행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무엇이냐...그것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요. 그게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의 평화,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과의 구김이 없는 상태에요. 하나님과의 구김이 없는 상태...구김이 없는 상태라는 것은 뭐냐면 적어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의도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겨서 그 관계를 무시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잘못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게 빌립보서에서도 이야기하는 흠 없는 상태라 이거죠.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그 평화를 누리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놀라운 내적인 결속을 경험하는 거..이게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합의 그 아름다운 상태이기도 하다 이 얘기에요. 또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망이에요. 이 두 개가 짝을 이루면서 그 하나님과의 온전한 평화, 샬롬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갈망, 이 두 가지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그 인간의 상태라고 하는 것이에요. 근데 여기에서는 바로 그런 하나님과의 동행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게 시인이 어떠한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신앙의 모습이고, 그리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제 이 시인이 그 악인들을 대조해서 묘사를 해요. 그들이 뭐냐면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 땅 속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붙인 바 되며 시랑에게 시랑의 밥이 될 것입니다..이렇게 세 가지고 묘사하는 거죠. 땅 속 깊은 곳에 들어간다라고 하는 것은 그 뭐냐면은 결국은 음부에 들어간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면 이 구약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 지옥의 교리들이 우리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같이 그렇게 발달하게 계시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이 땅 속 깊은 곳은 어떤 기쁨이나 희망, 그리고 하나님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인간으로부터의 어떤 도움도 차단된 그러한 그 상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걸 인제 이렇게 땅 속 깊은 곳이라고 그 묘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깊은 곳이라는 묘사가 많이 나와요. 그걸 구약에서는 특히 시편에선 하나의 절망을 가리키는 거죠.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나이다...절마이죠. 그리고 요나서에서도 나오는 깊은 곳, 이 모든 것들이 아주 그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를 또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단 말이죠. 그러면서 칼의 세력에 붙인 바 되어 시랑의 밥이 되리다..그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죽어도 죽어서 시체가 처리되는 그 모습 자체가 그 사람에 있어서 일생의 그 복락의 상태와 저주의 상태를 거꾸로 투사하는 그 그림이 됩니다. 예?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이 시체는 굉장히 존중하게 다루는 것이에요. 응? 그래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길거리에 버려져서 청소부가 와서 그냥 쓸어다가 그 힌놈의 골짜기 같은 데다가 던져 버려서 그냥 쓰레기하고 같이 태워버렸다.
이것은 뭐냐면 그 사람이 죽음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간에 하나님께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아끼는 자 없이 죽은 그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잘못된 거죠 그죠? 그러니까 저주의 상태를 아주 보여주는 거죠. 그러고 그것 못지 않게 비참한 것은 뭐냐하면은 이 그 인간의 육체가 죽어서 짐승의 밥이 되는 것이에요. 여기서 시랑이라고 나옵니다. 여우입니다. 여우의 밥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거죠. 그러니까 어 이것은 하나의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버림 받은 그 하나의 묘사에요. 그래서 그것을 현재와 그 다음에 미래까지 모두 다 완벽하게 버림을 받은 그런 비참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영혼을 찾아 음 그 사람들의 정체를 보십시오. 그게 누구냐 하면은 나의 영혼을 찾아서 멸하려 하는 자들이라...시인은 하나님을 즐거이 따르려는 사람이고, 따르는 사람이고, 이 사람들은 시인의 영혼을 멸하기, 여기서 영혼이라고 그러는데 ‘네퓌시’인데 목숨이라고 번역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나의 목숨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죽여 버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서 이 시인을 찾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은연 중에 아주 분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거죠. 시인은 영혼으로 하나님을 즐거이 따르고 그리고 악인은 그러한 시인의 목숨을 끊어버리려고 그 시인의 영혼을 찾아 멸하기 위해서 찾는 자들이죠. 그러니까 시인이 어떻게 말하고 싶은 거냐하면 수많은 원수들이 나를 죽이려 하고 내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내가 당신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 그들은 나를 그렇게 미워하고 내 영혼을 수색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렇게 묘사하는 거예요. 이게 인제 시인이 보여주는 대조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하는 소원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솟구쳐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 때 거기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시련들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은혜, 그 모든 것들이 흘러 나오게 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