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나은 인자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여기에서 시인이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이렇게 성소에서 주를 바라볼 때 그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권능과 영광, 이것의 베풂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시인이 당신과 매우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다고 하는 것을 그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나타내시지만은, 특별히 성소에서 하나님과 자신이 아주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해 주시는 것이죠. 그게 무슨 뜻이나면 이런 겁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간에 하나님이 우릴 특별히 붙드시고 보호하시죠.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반 섭리에요. 물론 우리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기도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살핀다든지 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죠.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제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녹고 어린 아이처럼 그 마음을 쏟으며 기도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하면서 그게 나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지체들이 함께 있어 그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돼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의 영적인 가정을 우리들이 그 안에서 이뤄가게 되는 거죠.
그러고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움직이시면서 죄 지은 자에게는 참회를, 갈 길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빛을 통하여 갈 바를 알게 하시고 또 엎드려 쓰러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을 교회 안에서 만큼 그렇게 풍부하게 경험하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일주일 동안의 삶 속에서도 많이 경험하지만 그 농축된 그 집약된 집중적인 그런 형태를 이제 주님 앞에 나아왔을 때 이 교회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아니하고 붙드신다고 하는 것을 그 교회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보면서 우리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니까 그러면 그 교회의 일부로 속해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써 주님의 돌봄을 받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자각을 갖게 되는 거란 말이죠. 그것을 이 시인이 성소에서 깊이 경험한 거예요. 근까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주의 인자’라고 하는 것은 그 성소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께서 나타나서 그에게 당신의 영광과 권능을 보여주신 그런 종류의 인자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인이 어디에서 생활하든지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를 대해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인제 이 성소에서 확인을 하게 된 거예요.
그걸 발견하게 되면서 이 시인이 갑자기 시가 끊어지듯이 삽입되는 표현 속에서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격을 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근까 인제 교회의 가장 커다란 그 말하자면 영광이라 그럴까 이 특성은 결국은 이 교회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먼저 교회 안에 있는 지체된 그리스도인들이 그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깊이 발견하고 감격하고 놀랍게 감격한 후에 그것을 따라서 살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는 것, 이게 인제 말하자면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거든요. 근데 그렇게 되려면 결국은 세 가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리,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진리를 찾기를 오늘 시편 63편 1절에서 시인이 이야기 한 것처럼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주를 갈망하며’...그랬잖아요? 이렇게 주님을 간절히 알기를 원하는 성도들, 그리고 그 둘을 묶어 그 진리를 경험하게 해 주시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 이 세 가지가 함께 만날 때, 영혼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인제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안타까운 것들이죠. 그래서 교회에 와서 자신이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그리고 교회에 와서 자신이 무엇을 그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그 하나님 앞에 바라고 그리고 사모해야 할 터인데, 이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오게 되고 또 교회가 그렇게 전할 진리가 없게 되고,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게 되면 그럼 교회는 이렇게 그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만들어 주는 그 일을 잘 못 하게 되는 것이죠. 자, 아무튼, 오늘 이 시인이 뭐라고 말하냐면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습니다’그랬어요. 생명은 자기 생명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럼 사실은 이 생명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소중히 여겨야 할 끝이에요. 끝..왜? 살아있어야지만 그게 뭐 의미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우체국장을 할 때 일이었는데...뭐 처음 그 때 막 보험이니 뭐니 이런 것들을 도입을 한다고 그래 가지고 얼마나 위에서 뭐 빨리 모집을 하라고 그 그 뭐 압력을 넣는지 하여튼 매일 아침마다 하여튼 괴로울 정도로 아주 그렇게 그 실적, 실적을 올리라고 막 내려오고 그랬어요. 근데 인제 거기 인제 동네 사람들에게 직원들이 가서 인제 보험 좀 들어 주시라고 이렇게 사정을 하고 그러는데, 보험 들려고 왔던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래요. 직원이 인제 설명을 하면서 “아저씨 이거 굉장히 좋아요” 그래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러니까 “다른 건 다 다른 거 하고 다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죽었을 때 돈을 엄청 많이 준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인제 “그것 빼 놓고 딴 걸로 봅시다” 그래서 왜요 그러니까 “아니, 제기랄, 아니 제기랄, 내가 죽었는데 돈 많이 나오면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 있냐 쪼끔 나와도 살았을 때 받아서 살아야지”“ 아 그래도 남아 있는 가족들이..”“가족들이 남아 있건 말건 내가 죽었는데 그까짓것 돈 많이 나오면 뭐 하나..살았을 때 많이 나오는 거 봅시다”...자기가 죽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얘기에요. 그게 보면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생명보다 나은 것은 없죠. 그래서 오죽 했으면 지혜자는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낫다’ 응? 당연하죠. 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나라를 위해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을 계급을 올려 주잖아요. 그것도 참, 뭐 죽은 자에 대한 하나의 예의이긴 하지만 살아서 승진 안 하고 살아있는 게 낫지, 죽어서 승진하면 뭐 하겠어요. 그만큼 살아 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이 생명이에요. 그러면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끝을 생명이라고 봐요. 마음과 뜻과 성품과 네 목숨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구약에서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그것 언약을 맺을 때 피를 뿌리잖아요. 그 의미가 뭐냐하면은 생명이에요 생명...죽기까지 이 언약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맹약이에요. 그것은 인간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바치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얼마나 헌신되어 있는지를 그 말할 때 뭐라고 그래요? 목숨까지라도...그러지 않아요? 그게 끝이에요. 그런데 그 생명보다 주님의 인자는 더 낫습니다. 더 좋습니다는 뜻이에요. 주님의 인자는 그 생명보다 훨씬 탁월합니다. 뛰어나게 좋습니다. 무엇 때문이죠? 생명은 육체의 생명은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필요한 거예요. 근데 그것을 접어. 그럼 죽어요. 그러면 죽으면 육체의 생명은 끝나. 그런데 영적 생명은 영혼의 생명은 여전히 지속돼. 그러니까 그렇게 육체 없이 지속된 영혼도 하나님의 이 자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거예요. 몸은 더 이상 목숨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로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주의 인자는 생명보다 낫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거죠. 육체의 생명이죠. 정확하게 말한다면, 주님의 인자는 나의 육체의 생명보다 더 낫습니다. 그 고백이에요. 이미 벌써 이 다윗의 시대 다윗이 이미 벌써 이 우리의 이 생명이 영원하다는 거, 어? 그리고 이 죽음 건너 편에도 우리의 생명이 어떤 식으로든지 영혼의 생명이 지속되고 그곳에서 우리의 영혼의 진정한 행복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습니다....사실 엄격하게 말해서 우리가 이러한 교리적인 사실을 굳게 붙든 붙들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임무에요. 만약에 우리가 이 고백이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 있기만 하면 우리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죠.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그렇기 때문에 내 입술은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그럼 이것은 뭐 찬양을 안 했는데 앞으로 찬양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히브리어 용법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표현하는 거예요.
뭐 뭐 내 입술이 그렇기 때문에 내 입술은 주님을 계속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하는 중입니다. 계속 찬양할 것입니다. 뭐 이런 정도의 뜻이에요. 어 성경에 보면 이런 표현들이 많이 나와요. 내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입술로 고백하며, 내 입술로 뭐 노래하며, 내 입술의 뭐 말씀을 뭐 등등 많은 그 이 그 유사한 표현들이 나오거든요. 이게 인제 무슨 뜻이냐면은 어 이게 성경으로 성경적인 그 이 사상으로 보자면은 히브리 사람들의 우리가 보자면은 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 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통의 울림과 같다고 보는 거죠. 인제 이렇게 커다란 통이 있으면 왜 기타가 있다고 그러면 기타는, 기타는 뭐라 그럴까, 뭐 이렇게 커다란 통이 있으면 하여튼 통에 후 하고 불면 뚜 하는 소리가 이렇게 울려 퍼지잖아요. 이게 소리를 소리를 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통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그 소리가 바깥으로 나오잖아요. 근까 그거는 변함이 없는 거죠. 똑같이..똑같은 소리로 바람을 불어 넣으면은 똑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그것은 그 이렇게 소리가 나는 거는 병 그 뭐지? 병 그 입구에서 주둥이에서 소리가 날지 모르지만은 울려 퍼지는 건 이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것 아니에요? 인간의 말이라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본 거예요. 이 히브리 사람들은...그러니까 성경이 거짓말 하는 것을 아주 어떤 종교에서 보다도 이 거짓말에 대해서 이 이 기독교에서는 성경에서는 굉장히 단호해요. 그래서 오죽하면 거짓 증거하지 말라..응? 근까 그 거짓에 대해서 아주 굉장히 단호한 거예요. 그러니까 뭐냐하면 이렇게 후 하고 공기를 불어 넣었을 때 뚜 하고 전체적으로 커다란 항아리에서 울리면서 소리가 나오는 것 같이 그 나오는 소리가 인간의 말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인간의 말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울려서 나온는 것이 인간의 말이여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그 말을 보고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알 수 있고 내면의 세계는 수많은 언어들을 쏟아내되 그 내면의 세계를 반영하고 하는 그것이 그 인간의 구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 대신 인제 울려 퍼지는 것이 악일 경우에는 그거를 울려 퍼진 그대로 쏟아내는 거를 가리켜서 우리들이 진실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 진실하다고. 진실하다고 하는 것은 울려 퍼져서 나오는 그것이 진리에 합치할 때 그것을 우리들이 진실하다고 이야길 하는 거죠. 막 쏟아내는 거죠. 그거야...그러니까 우리들이 글을 쓰든지 말을 하든지 할 때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들을 확 쏟아 낼 때는 그것을 그 무엇인가 그 소중한 것을 그 사람이 이렇게 촥 이렇게 쏟아낸다고 말하지만은 막 욕지거리를 퍼붓고 막 사람들을 모욕하는 거를, 이 속에서 악한 거를 막 쏟아낼 때 그것, 그것을 우리들이 이렇게 뭐 소중한 것을 이렇게 짜 내는 것처럼 그렇게 묘사하지 않잖아요. 근까 마찬가지에요. 그것은 제외하고 올바른 것들을 가치에 진리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들만을 이야기 하는 거죠. 그게 그렇게 울려 퍼진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이 시인이 그래서 인제 거짓을 굉장히 미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기 계시록에 가 보면은 그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거짓말 하는 거예요. 그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더더욱 더더욱 악한 것이라 이 얘기에요. 근데 그래서 인제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는 결론이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정직해야 돼요. 인제 용기가 없으면 정직해 질 수 없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생각하는 거, 거짓말하는 죄가 굉장히 큰 거예요.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 아주 파괴적인 그러헌 그 기능들을 한다 이 얘기에요.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고 있습니다...이런 얘기 아니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뭘 보여 주냐 하면 이 시인의 마음 마음 가득히 무엇이 가득찼는가 하는 가를 보여주는 거죠. 뭐가 가득찼어요? 주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격이 가득차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격하고 그래서 우리의 입으로는 주님을 찬양하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그 주님의 자비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의 고백에 의하면 ‘환란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도다...’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는 고백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고, 그래서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주님의 자비하심이 울려 퍼지게 하옵시고, 그래서 우리의 우리 된 것이 주님의 자비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