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하나님께 맡길 때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시 55:15-16).
여기에서 우리가 시인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죠. 즉, 처처에 악인에게 둘러싸여서 고난을 받을 때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복수하고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원수를 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대신에 해하려고 시도를 하는 대신에 궁극적으로 인간의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죠. 그래서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인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하기를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 찌어다”. 시인이 자기의 소망을 빌고 있죠. 그러나 실제로 이 원수들을 사망이, 원수들에게 사망이 임하고 음부로 내려가게 하는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더 넓게 보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그리고 자기가 사망이 홀연히 임하기를 비는 사람들과 자기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한 일이 일어나고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만 발휘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 그때에도 공정하게 발휘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진정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인생에 극심한 어려움이 닥쳐서 사람들이 자기를 대적하고 자기를 원수처럼 대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집에 함께 드나들던 자기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수가 되어서 자신에게 은혜를 복수로 갚고 악을 행하고 일어난 일들을 보게 된 거죠. 그러면 그 이면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 이면에 나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면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불신앙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악을 행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아침에 집에 나오다가 복도에 떨어진 신문을 보니까 노대통령 구속영장을 다음 주에 신청을 하겠다고 그러는데 우리는 이렇게 참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는지 너무너무 슬프고 한국에 태어난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요. 보면 결국은 악인들의 의리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익이 서로 오가는 동안에는 그것이 굉장히 단단한 줄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나 그 이익이 사라지고 나면 그 줄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라진 그곳에서의 인간의 의리, 이런 것들은 오래가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자기 사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결국은 이해가 될 때에 어느 지점까지는 참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인생의 뿌리가 뒤흔들릴 때 그때에 인간들은 그 끈을 놓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어쨋든 참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이죠.
이 시인도 똑같이 그런 인간의 악한 뿌리들을 본 거죠. 동무들이 있었고 친구였고 더군다나 함께 하나님의 집에 예배하던 사람들인데 자신에게 애매히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권력의 저편에 붙어서 기회를 노리는 것을 보면서 결국은 맨 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불신앙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다윗은 단호하게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들을 하나님께서 벌해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당신의 공의를 세우시도록 호소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언제나 옳은 사람이었는냐? 그렇지 않죠. 옳지 않지만 시인의 뿌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거예요. 자기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도록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도록 간절히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에요.
앞에 있는 16절 상반절이 그의 기도에 대한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하반절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이 같은 문장에서 하나님의 성함을 앞에는 하나님, 뒤에는 여호와라고 썼을까? 이게 언약의 하나님을 상기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기도 그걸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인생을 살다가 보면 모든 상황과 환경이 우리의 마음에 맞게 움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시인을 악인을 통해서 오히려 연단하사 그로 하여금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려 주님을 의지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 한 분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나를 이끄시도록 그렇게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셔서 오늘 이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좋으신 주님 오늘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날마다 알고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아픈 일들을 주님께 의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