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과 분쟁이 가득할 때
“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내가 성내에서 광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시 55:7-10).
시인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에 고통이 가득한 속에서, 이제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멀리 날아가서 쉬고 싶은 소원을 피력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7절부터 9절까지가 복합적인 점층법입니다. 그래서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멀리 날아가서 편히 쉬고 싶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있고 싶다.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문장의 요소들이 짝을 이루면서 전진하는 복합적인 점진적 댓구법 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게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에서 떠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기서 시인이 다시 한 번 대적하는 자들의 도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진술합니다. 그게 뭐냐면 전부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강포와 분쟁이 일어나고 그리고 아마도 저희가 수많은 말로써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리고 주야로 죄악과 잔해함이 있고 악독이 있고 압박과 괴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온 성이 아비규환이 되어서 서로를 물고 뜯는 그러한 법 없는 세상이 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에 대한 악인의 압제와 괴롭힘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 없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렇게 피력함으로써 이 도시의 정신, 나라의 정신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자기를 주인 삼으며 살아가는 세계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고 그 율법을 좇아 살려고 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러한 삶의 환경 자체가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통 받고 시련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속에서 깊은 괴로움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면서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의 몸의 지체로서 이 세상을 섬기는 것은 우리 자신에 유익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만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을 복음으로 잘 섬기지 않는다면 세상은 아마도 허무하게 변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 세상에서, 이 나라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려울 것 일 것입니다.
법적으로 우리나라가 거의 무한정의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런 종교의 자유가 무한정 주어져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이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면 법적으로 보장된 무한정의 종교의 자유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그 신앙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가 타락하고, 하나님 없는 사상을 배우고 이렇게 되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 비리들이 성행해서 법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외톨이가 되는 세상이 된다고 하면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만 변화될 뿐 아니라 이 세상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그 유익이 결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영국에 가보니까 참 사람들이 허무한 사람들인지, 이 세상에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돈을 걷어가지고 “하나님이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인생을 즐기십시오.” 이러한 문구를 하는데 순식간에 25만 파운드가 걷혀 들어왔습니다. 약 10억입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차라리 어려워서 집 없이 노숙하는 사람들을 돌보지 그것을 해서 왜 하나님이 계신 게 걱정거리가 되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무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한 반 하나님적인 것들이 가득합니다.
학교는 우리가 믿는 전통적인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그럴 정도로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선조들이 남겨놓은 그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들이 후손들에 의해 누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좋은 유산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 없는 삶을 택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곤고함과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은 정말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개인이 하나님께로 피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이러한 삶과 함께 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일들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미 자신이 너무 외톨이가 되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악독과 죄악이 가득한 도성에서 하나님께 홀로 호소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잠시는 이 세상에 악이나 하나님 없는 번영들을 놓아두시는 것 같지만 그러나 세월이 한없이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악인들의 번성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적합한 준비입니다. 악인들이 가득하고 처처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들이 가득할 때에 충분히 어두워졌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한 훌륭한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이 보일 때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들이 믿음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면서 인간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며 경건한 자들을 박해하지만 그 너머의 하나님의 통치의 손길을 보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의지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기 적합 한 때에는 그렇기 때문에 잘 해야 하고, 적합하지 않을 때에는 그렇기 때문에 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