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성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시 87:3)
녹취자: 김경애
이 시인이 여호와께서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선언하고 이어서 3절에서 하나님의 성은 영광스럽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당연히 하나님의 성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예루살렘 성, 혹은 시온 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성을 영광스럽다고 이야기하는데 성경에서 영광스럽다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원래 그 뜻이 무겁다는 뜻입니다. 무겁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어떤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취급되어질 수 없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이 구약성경에서 영광스럽다는 말의 뿌리로 삼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똑같이 나무로 만든 가구입니다. 그런데 그 가구가 일상적인 일에 사용되는 경우와 이렇게 예배당에 바쳐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바지하는 도구가 될 때 자연적으로 볼 때는 여기에 바쳐진 이 가구나 혹은 이것과 비슷한 것을 주차장이나 호텔이나 음식점에 가면 많이 쓰는데 이런 것을 놓고 주차딱지도 나누어주고 그럽니다. 그러면 똑같은 물건인데 자연적으로는 똑같은 물건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여기에 바쳐진 이 물건이 훨씬 중요합니다. 영광스럽습니다.
제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직장을 같이 다녔습니다. 사람은 좋은데 얼굴이 저도 못생겼지만 그 친구도 잘생기지 못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많이 방황했는데 교회는 다녔습니다. 교회도 다니지 않고 방황하던 사람을 인도해서 성경공부를 가르쳐서 신학교를 가고 같이 교제했는데 친구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한번 제주도에 내려갔더니 사모님이 그랬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항상 목사님을 멘토로 생각하다고 해요. 멘토는 무슨 얼어 죽을 멘토입니까? 동갑인데 무슨 멘토냐고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은 참 예쁘십니다. 그리고 옛날에 장관의 비서를 지냈습니다. 장관들이 비서를 아무나 뽑겠습니까? 아주 똑똑하고 단정합니다. 옛날에 공무원생활을 하고 얼굴도 별로였는데 눈여겨봤겠습니까? 그런데 신학대학원을 들어가고 청혼을 하니까 이 사모님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무엇을 하면서 살려고 결심을 하니까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중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성입니다. 물론 그 자매님이 신앙이 없었더라면 고리타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세상에서는 어땠겠습니까? 그렇게 얼굴도 훌륭하게 못생기고 환경도 어려웠지만 그 당시에 사법고시에 50, 60명밖에 붙지 못할 때니까 사법고시에 붙어서 당시의 초봉을 천만 원을 받았다든지 검사가 되었다든지 그러면 그것은 얼굴 생긴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보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남자의 미모는 능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능력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우리들이 영광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요성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 성이 혹은 시온성이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광스럽다고 하나님이 선언하실 때 그 영광스럽다는 것이 결국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보기에 중요해 보이는 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당신이 택하신 나라 당신이 택한 백성이요 민족이니까 당신에게 영광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단순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소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실 때에는 동시에 그 다른 많은 나라와 민족이 그 시온과 예루살렘을 보면서 정말 중요하고 무게가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느낄 때 그것을 인식할 때 그때에 하나님의 성인 시온이 예루살렘이 정말 영광스러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언제나 영광스럽다고 보시지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뜻은 그 백성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광스러운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영광스럽지 않는 것도 있는가 하면 우리가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은 하나님의 교회의 바깥에 있는 것들이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의 안에 있는 것들이 가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 부패입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범죄가 일어났다더라.’ ‘교회가 그런 것을 다루지도 않았다더라.’ ‘교회에서 무슨 돈 문제가 일어났다더라. 그래서 부패했다더라.’ 끊임없는 분쟁이 있고 ‘교회에서 싸움을 한다더라.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 그런 것들이 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보면 결국은 사도가 1장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내용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범죄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범죄와 악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가립니다. 왜? 예를 들자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혹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싸우고 분쟁이 일어나고 악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보면서 너희 하나님이 살아 계시냐고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막 악한 세상이 되어갈 때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렇게 부패와 불의, 분쟁 이런 것들이 그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외치는 함성을 듣는 것입니다. 무슨 함성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막살아도 됩니다. 십계명은 휴지입니다. 성경말씀은 개나 주시오.’ 그러면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정반대의 삶입니다.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제가 한 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방에 있는 교회인데 한 칠천 명 정도까지 모였던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생겼습니다. 분쟁의 시작은 커다란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으로 분쟁이 생겼습니다. 분쟁이 극대화되었습니다. 교인들은 편을 갈라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법정, 사회의 법정까지 갔습니다. 지루하고 길 정도로 재판이 이루어지고 한쪽이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교회는 좋은 평판을 다 잃어버렸고 마지막 7000명의 교인이 300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 이긴 쫓겨난 교인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입니다. 끝입니다. 이긴 사람들이 몇 백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는 오늘 성경에 보면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누가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중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 시온아 너는 영광스럽다.’ 또 사람들이 시온을 보면서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으니 영광스럽습니다.’ 그 영광은 영광의 본질적인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진실한 삶을 살려고 할 때 그때 그 교회가 정말 하나남의 교회다운 그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악이 있으면 잘라내고, 더러운 것이 있으면 씻어내고, 불결한 것이 있으면 닦아내고, 그리고 스며들어있는 좋지 못한 것들이 있으면 그것을 씻어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우리의 몸을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그때는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다리도 잘라버리고, 팔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목은 자르지 못합니다. 목을 자르면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귀도 잘라버리고 심지어 가장 소중한 장기중의 일부도 떼어냅니다. 왜? 살아야하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이 정말 하나님이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신 것처럼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성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뒤편에 붙어있는 ‘셀라’라는 단어는 추측하기를 이것은 시의 일부가 아니라 음악적인 부호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뜻은 ‘한 음을 높여라’ 정도의 뜻일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셀라’라고 나오는데 ‘슐람’이라는 단어가 창세기 28장에서 ‘도로, 사닥다리’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도로’, 'Highway'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읽을 때 ‘셀라’는 읽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쩌고저쩌고’ 읽은 다음에 ‘점찍고’ 하지 않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점이 찍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셀라’는 빼놓고 읽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 영광은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충만하게 드러나야 할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끊임없이 깨끗해지도록 온전해지도록 요구 받고 실제적으로 끊임없는 회개와 진실함과 성찰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고쳐져야 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정말 온전하고 정결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되어야합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도록 그런 사랑받는 교회가 되도록 그렇게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목회자가 일생을 피나는 헌신으로 깨끗하게 살았는데 마지막에 교회가 더럽혀졌으면 그 사람의 일생이 수치스럽겠습니까? 영광스럽겠습니까? 한 성도가 일생을 살았는데 그가 섬기고 봉사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몸담았던 교회마다 다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되었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누리고 어떤 높은 지위에 올랐던 지간에 명백하게 실패한 인생입니다. 더군다나 지도자들이 되었다면 더더욱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쓰레기 같은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그리고 인정이 없어도 주님의 교회를 섬겼고 그래서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면 사람은 그 은혜를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모든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