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크신 일로 찬양하라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찌어다 셀라”(시 66:3-4).
하나님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우리에 감각적인 그 기관으로 하나님을 볼때에는 없는거죠. 그래서 우리의 지성으로써 하나님에 존재를 파악하고 그리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는 것들은 믿음을 통해서 하는 것이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우리들의 눈으로, 손으로, 우리에 모든 감각기관으로 볼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하나님께 고하기를' 이렇게 되있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 말하라' 이렇게 명령형으로 나와요, 히브리어 성경에. 그래서 '하나님께 말하거라' '하나님께 말씀드리거라' 그래서 어떻게해 '주에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는거죠. 그거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인 일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우리에 지성으로 직접 바라보고 그리고 그 분을 아는것은 믿음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은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힘든일이 아니지만은 아니죠. 왜냐하면 늘 주님이 느껴지니까. 그리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것은 우리들이 착각을 일으킬 수 있어도 믿음으로 보는것들은 누군가가 뒤집을 수 없는 확실성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보편적이진 않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같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니니까 이 시인은 이제 보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결국은 찬송한다, 소리로써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라는 거죠. 소리로써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당연한, 이미 그분에게 있는 그것들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시죠.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에게는 전혀 새로운것이 아니지만은 그렇게 하나님의 당연한 성품을 노래하고 말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그런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변화와 은혜의 효과,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죠.
왜냐하면 그렇게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는 그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에 뜻대로 살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거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이든지 멀어진 사람이든지 언약백성이든지 언약백성이 아니든지간에 모두에 눈에 보이는 거거든요. 모두에 눈에 보이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라,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찬송하는거죠. 그래서 엄위라고 되있는데 그냥 갖다가 이렇게 좋은 말로 이렇게 만들어 놓은거구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로브'라고 나오는데 이게 '큰' 그런 뜻입니다. 큰. '라브'가 많다 그런 뜻이니까 '큰' 그런 뜻이예요.
그래서 뭐냐하면 위대함이예요. 위대함. 그래서 주에 일이 어찌 그리 위대하신지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하면 크기나 규모나 이런것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비교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일을 하셨기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거죠. 그럼 이제 잘 생각을 해보십시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자연의 질서속에서 행하시는 여러가지 놀라운 일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에 커다란 변화, 그것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죠.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기적같은 것들 자연적인 기적, 이런 것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죠. 그렇고, 한번 더 나아가서 이제 이 사회속에서 이 세상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그 선악간에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에 섭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에게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우리들이 자연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에 살아계심을 본다라고 할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속에 나타난 이런 모든 하나님에 흔적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그리고 그 하나님이 공의로써 마땅히 베풀자에게 베풀고 심판할 자에게 심판하신다는 그런 소극적인 지식 이상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지 않아요. 근데 그것은 매우 분명해서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분명한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이예요.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하는 이정도에 지식이 아니라 그 하나님에 자연에 모든 세계 이 자연에 질서와 이적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도덕적인 성품들을 우리에게 발현해주는 아주 놀라운 그런 그 계시를 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악인들은 그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연에 모든 세계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런 분 정도로만 알지만 그러나 이제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보면은 온땅에 비가 골고루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은 선인뿐만 아니라 악인도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그런 도덕적인 의미를 그 자연현상 속에서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때 그 계시에 풍부함이 얼마나 엄청났는가 하는것을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야되요.
그래서 인간에 가장 큰 의무는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거죠. 그리고 그 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된 구원에 계시들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사는것, 이것이 인간의 최대의 의무예요. 그가 그것만 하면 인간으로써 모든걸 다 한거예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그 분을 통해서 나타난 구원계시를 받아들여서 그래서 순종하면서 살면 다른 지식은 좀 몰라도 탁월한거죠.
그래서 하나님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런 얘기를 하죠. 그것을 내신이는 모르면서 사물에 이름 하늘에 별자리까지 모두 헤아리고 그 원수에 종류까지 말할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내신이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그 모든것을 말하지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신이를 알고 그 분을 순종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거예요. 그게 사실이죠. 그거죠. 그래서 내 아버지라는 인간이 몸 전체의 75%는 물이요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다 분석하고 그 담에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우리 아버지는 이런 인간이고 저런 인간이고 저런 인간이다 이렇게 다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생체 모든것을 분석을 하고서 그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그런 사람보다는 그걸 모르고서라도 차라리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식이 훨씬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것 처럼 우리도 그러하다 이 얘기예요. 그러니까 마치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거나 또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그런 지식이 무엇이 쓸대가 있으랴 이렇게 생각하는 둘 다 현저한 인간에 교만을 나타내는 거지.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그를 발견하고 그를 알고 그를 사랑하는거,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의무이구요, 그런 속에서 자기 자신이 날마다 더 새롭게 날마다 더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거예요.
이게 왜그러냐면은 결국은 행복이라고 하는것은 관계의 행복인데 이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 지기 위해서는 결국은 나와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발견된 새로운 사실이 자신에 삶에 영향을 주어서 주님과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새로워지는 거죠. 관계가 새로워진다 그래서 무슨 무슨 뭐 특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게 아니라 관계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뭐냐하면 우리를 대하시는 그 분에 경륜과 태도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에 은혜로써 그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알고 그 분께 맞게끔 내 자신이 쇄신되어서 그래서 온전한 관계로 돌아가게 될때에 그때 하나님에 은혜와 사랑이 더 많이 우리 속에 역사하게 되는거 그게 결국은 관계가 새로워진다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인간이 할 수 없는 큰 위대함으로 당신에 일들을 이루셨는데 그렇게 크게 이루셨는데 그 권능을 인해서 '주에 원수도 죽게 복종할 것입니다' 주에 원수도 주에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럼 그 원수가 복종하는 것은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복종이 되겠어요? 둘 중에 하나 아니겠어요? 주님에 원수였는데 사랑에 감화에 의해서 복종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위대하고 큰 일을 보면서 그분에 존재에 그 위대하심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굴복하던지 뭐 그 힘에 굴복하든지 둘 중에 하나 아니예요. 그래서 그런 모든 원수 앞에서까지 당신이 위대하게 보이시는 것,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한 결과다 이렇게 보는거죠. 그래서 예를 들자면 하나님에 사랑은 당신에 성품속에 있지만은 뭐 하나님에 진노라든지 분노 이런거는 하나님에 성품속에 있는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물론 공의라는 성품이 있지만은 그래서 그것은 결국은 인간들이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서 발현되고 그담에 경험되는 하나님에 성품의 또다른 측면이라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그것은 총체적으로 하나님에 거룩하심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 그렇기 때문에 온땅에 다시 나오죠? 온땅에 검인들은 일차적으로 뜻하고 그 담에 자연에 만물들까지 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이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그리고 주에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 노래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당신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고 그래서 당신 자신이 얼마나 크고 이 인간들과는 질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 탁월하고 위대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고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