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의 기쁨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찌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 위에 열방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셀라)”(시 67:4).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만방에 여기서 열방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열방 중으로 그 확산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 4절은 3절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언약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복을 주시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얼굴 빛으로 그들에게 비취시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또 그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면 그러면 결국 그들이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도, 이것이 열방 중에 만방 중에 알려지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서 그 만방 열방들도 결국은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결국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알려지거든요? 그 알려지는 방식이 방법이 뭐냐면 삶의 방식이에요. 더 웨이 어브 리빙...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의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그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무엇이냐 하면 그 고래로부터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방식을 택해야지만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냐...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답이에요. 그러니까 지난 주에도 제가 인간의 행복과 참된 불행이 삶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말씀 드릴 때 그 태도라는 것이 결국은 삶의 방식이에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불행해지고 행복해지는 모든 것이 결국 삶의 방식에 달려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에 달린 거죠. 자,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기심이 가득 있어서 사람들에게 자꾸 손해를 입히고 사람들을 자기 행복을 위해서 자꾸 이용을 해요. 한 두 번이야 사람들이 이용을 당해 주고 속아 주겠지만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그렇게 속아주고 그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게 큰 맘을 먹어야지만 그렇게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몸에 젖어 있어서 어디에 가든지 항상 그런 삶을 삽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결국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되는 거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그 사람의 사람됨은 하나에요. 물이기 때문에 흘러가고 높은 데서 무게가 있기 때문에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거죠. 둥글기 때문에 굴러가는 거고 붙잡지 않으면 자꾸 이리저리로 굴러 다니는 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의 사람됨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거죠. 그래서 똑같은 선인데도 악한 사람이 선을 행하면 위선이라고 말을 하고 선한 사람인데 어울리지 않게 남에게 보이려고 악을 행하면 우리는 위악이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위라는 말이 가짜라는 거 아니에요? 가짜...그래 똑같이 선한 행동인데 원래 선한 사람이 선을 행하면 덕스러운 행동이 되고 원래 사람됨이 악한데 선을 행하면 위선이 되는 거죠. 그런 것이에요.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삶의 방식이 결국은 언약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무엇입니까? 결국은 도를 보여 주는 삶이에요. 도....도....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선악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도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그게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율법이에요. 율법...하나님의 넓은 의미에선 하나님의 말씀, 좁은 의미에선 율법이에요. 그래서 여호와의 도로 행하자....결국은 길이에요. 길....여호와의 길, 하나님이 정해 놓으셔서 모든 인간이 그 길로 걸어가길 원하시는 그 도, 그것이 바로 도예요. 그러면 인간은 어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그 도에 끊임없이 자기를 합치시키는 거예요. 그게 덕이에요. 그러니까 두 대가 합쳐서 도덕이 되는 거죠. 앞에는 객관적인 거고 뒤에 것은 주관적인 거고....그 도덕을 보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아........그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언약 백성들의 삶의 방식을 보고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좀 눈여겨 봐야 될 대목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아.....그러면 도덕적으로 살면 되는 거구나....아 그렇구나....근데 사실은 우리 많은 사람들 머릿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의 도덕 보다는 이 세상의 도덕이에요. 비교적 이 세상의 도덕과 하나님의 도덕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은 거예요.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이 있는 거죠. 예를 들자면 주님께서는 너희 아내나 자식들을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이런 것들은 이 세상의 도덕에는 합치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때로는 주위의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과는 다른 것이죠. 또 이런 경우도 있죠. 세상에서는 엄격하게 그러게 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거.....이런 것들도 있잖아요...그런 것들은 누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의 성질의 것이 아니죠, 그죠? 예를 들자면 요즘이야 안 그렇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여자가 제때 시집을 못 가면 남자가 제 때에 혼기를 놓치면 뭐가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여기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죠? 성경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이것은 결국은 홀로 있어도 죄가 아니고 그 다음에 장가가고 시집 가도 죄가 아니다....그것은 진짜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에요. 문제가 없다는 거죠. 또 가난 같은 것도 그렇잖아요? 우리 같은 경우 보면, 아주 가난하게 사는 그것 자체를 고결한 상징으로 보지만 성경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거든요.
이렇게 인간의 도덕과 하나님의 도덕들이 서로 일치할 때도 있지만 상충할 때도 있는 거죠.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렇게 도덕이 갈등과 모순을 일으킬 때 하나님이 당신의 도를 우리를 통해서 전파하기를 원하실 때 그 마음 속에 있었던 도는 하나님의 도예요. 세상의 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면 항상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것은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는 것이죠. 자 예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계실 때 전하셨어요. 능력을 한량없이 받으시고 그리고 아주 고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죠.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말씀을 환영하고 기뻐했나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면 무슨 효과가 있었죠?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 선포는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서 자기가 안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으셨고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은 당신을 향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기회로 삼은 거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믿음이 늘 있는 것 같이 보이던 사람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감정이 생겨났어요. 창기와 세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쓰러지듯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놀라운 차이가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삶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올바른 사람일 가능성이 없는 거죠. 모든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사람이다....그럴 경우에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지 못할 경우가 많이 있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만방에 당신의 도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도 대로 사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위한 것이 우리 자신의 의식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예를 들자면 불은 타오르고 밝게 비추는 성질이 있어서 빛이에요. 그래서 그 빛은 자기가 비추는 그 빛을 받는 사물들이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 혹은 착한 사람이거나 악한 사람이거나 상관하지 않아요. 그 빛은 빛이라는 성질 때문에 찬란하게 빛나는 거예요. 타오르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언약백성들도 우리 언약백성들도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신 그대로 빛을 비추는 그 피사체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성질에 의해서 빛을 발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그 본성 때문에 빛을 발하고 그 본성 때문에 그 빛을 환하게 비추는 거죠. 그것이 신앙이에요. 그것이 바로 변화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이룩하며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죠. 그러니까 어떤 착한 행동을 해서 세상에 감동을 주고 싶다든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이렇게 착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것, 그거 아니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착한 행실이란 말의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에 주목을 하세요. 네. 왜냐하면 착한 행실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거기서 말하는 착한 행실이라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행실을 가리키는 거죠. 아다시피 여러분들 미국의 조웰 오스틴이란 목사가 있어서 한국교회 신앙을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분의 책이 몇 백만부가 팔렸어요. 그거 읽어봤죠. 뭐에요. ‘동성애자도 좋다, 모두 좋다, 모든 것 다 상관없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옳은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 난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일단 그 사람들을 도와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거에요. 그러니까 물론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은 우리는 복음도 전파할 필요가 없고 그 사람들을 도울 필요도 없다....그런 건 아니죠. 그렇지만 판단 자체를 안 해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면 그리고 나의 도움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그것이 중요한 거지 나머진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러면 그런 악들이 교회 안에서 번져갈 땐 어떻게 하느냐 이거에요. 사람 보기에는 굉장히 좋죠. 긍정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 책을 무슨 자기 생애를 움직이는 최고의 책이라고 그러고 추천을 하니까.....어지러운 거죠. 그렇게 하고 그 세상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책인진 모르지만,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을 알려 주는 그런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인가....그건 아니죠. 제가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미국에 갔을 때, 정말 방금 예수를 믿어서 석 달 밖에 안 된 자매가 있었어요. 근데 놀랍게 첫 번째 읽은 책이 죄와 은혜의 지배였어요. 별로 놀라지도 않네. 근데 그 자매가 그 책을 읽으면서 회심을 한 거야. 두 달 쯤 됐을 때 누가 그 책을 선물로 준 거야. 긍정의 힘을....아무런 정보가 없는 거죠. 기독교에 대해서...그거 읽은 것 밖에? 그런데 읽었는데 어떠냐...그러고 물어보니까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뭐냐면 ‘나는 이제 믿은지 석 달 밖에 안 돼서 기독교 잘 모르지만 이건 아닌 거 같다....이게 어디 하나님일 수 있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지.’ 그게 기본적으로 자신이 비록 몰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나면 판단의 빛이 생겨나는 거야. 그렇게 하나님의 도를 만방 중에 알리게 될 때 그 백성들도 그 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그래서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세상이 온다는 거죠. 이게 바로 이스라엘의 비전이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비전이에요. 모든 만방이 이렇게 주님을 알기 때문인 거...그게 비전이에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 만큼 보이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주님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아파할 수 있는 거죠. 그 동기가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동기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가족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동기이고 그게 바로 아웃리치를 나가는 동기이고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동기가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신앙이에요. 그것이 믿음인 것이에요. 바로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산을 위해서 이 세상이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무는 이거에요. 우리들이 오늘...오늘 오늘 주님을 더 많이 알고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두 번째는 뭐냐면 우리 후손들이 우리보다도 더 주님을 잘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하고 또 남겨두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위탁된 중요한 사명이에요. 제가 교회가 신학교나 혹은 신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많이 헌신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 개인의 취향이 아니에요. 이게 한 시대의 교회에 위임된 아주 중요한 사명이에요. 그럼 여러분도 아마 여러분도 아마 제 설교를 들으면서 회심하신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또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그걸 어느 날 땅을 파서 나온 것이 아니에요. 나도 누군가에게 배웠어요.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도전 받은 기억이 날 거예요. 그러면 그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수많은 책들을 또 참고했어요. 그런 그런 그런 유산들을 계속 물려주고 영향력 있게 한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여야 할 중대한 사명이에요. 지금도 미국에 가면 말이죠, 교회를 직접 가 보진 않았는데 갔다온 사람 얘긴데, 조그만 교회에요. 조그만 교회인데,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를 하시고 그 교회 지하에다가 출판소를 하나 차리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얼마 전까지 살아계셨다는데 아주 호호 할아버지로 늙었는데 지금도 그 돋보기 안경을 쓰고 책을 내셔요. 근데 그 책이 뭐냐면요,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집이에요. 지금 제가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 한 60권 육십 몇권까지 제가 갖고 있어요. 근데 그 동안에 제가 몇 년 동안은 못 구입했는데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1년에 1권도 나오고 2권도 나와요. 그러면 왜 이 할아버지는 목회까지 그만두고 그 연세에 그걸 하느냐...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이 분이 젊었을 때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회심을 하고 그 분의 설교를 읽으면서 사실 뭐 신학적인 책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그 분 자신이 고등학교밖에 못 나오신 분이니까....그래도 아주 탁월하게 설교 속에 사상들이 녹아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멘토링을 받으면서 자기의 그 신앙의 말하자면 보고로 삼은 거예요.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그것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볼 때 참 감동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거죠.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도를 전하고 살고 전하고 보존하고 물려주고 이렇게 해서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인간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이바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요, 사명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