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의 기도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연기가 몰려감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시 68:1-2).
꽤 길게 계속 되는 이 시편 68편의 기도는 탄원의 내용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찬송 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여러 각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신앙의 본능 중에 하나가 ‘회상’하는 것입니다. ‘회상하고 잊지 않는 것’, 쉽게 이야기하면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회상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래서 우리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면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던 일을 회상하는 것이 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내용들로 이어져있고, 오늘 읽은 1절에서 2절 사이에는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치 1절과 2절이 하나의 병행구 인 것처럼 전체적으로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일어나시라는 탄원을 드리는 묘사가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데 주님은 물리적으로 어떤 장소를 가지고 존재하는 인간과 같은 분은 아니시지만 시어적 표현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임재를 그릴 때 보좌에 앉으신 분으로 그립니다. 보좌에 앉으신다는 뜻은 앉으셔서 권위를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과 인간을 왕적 권세로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런 왕적인 권세로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통치하고 또 다스리시는데 요즘 일어나시라는 탄원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위급한 상황을 만나 당신의 왕권을 더 강력하게 행사하여야 할 때를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좌에 앉는다’라는 말은 히브리 사람의 문맥에서 보면 ‘일이 끝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상황이 끝나면 다시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언약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여 일어나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급박한 상황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인간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반대입니다. 즉 ‘일어나라’고 인간에게 명령하실 때에는 오히려 잠자고 흐릿하던 신앙에서 깨어나서 각성하고 결단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촉구하는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어남이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일어나라’라는 명령어가 나갈 때 읽어나가면 상당히 유익합니다. 물론 ‘일어난다’라고 할 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뜻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면 그것은 그냥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쨌든 상당한 대부분의 많은 부분이 이런 내용들이 일어나라라는 단어가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요나 선지자가 큰물고기에 삼킨 바 되어 뱃속에서 다시 토해냄 바 되었을 때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약에도 이런 일이 있는데 탕자가 ‘이제 내가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품꾼 중의 하나라고 여겨주십시오’ 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하나님 일어나십시오’라고 간곡히 탄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통치와 간섭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이끄시지만 지금 매우 특별히 우리를 돌봐 주시고 악인을 다루셔야 할 때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종종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집중되게 하시는 방식으로 악인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영어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싶다’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싶다’ 아니면 ‘나 자신을 찾고 싶다’ 라는 말을 쓸 때에 쓰는 묘사가 ‘collect oneself’입니다. ‘나 자신을 모으고 싶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최대의 방해는 흩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감각 속에서 흩어지고 우리의 삶이 절제가 필요한 이유도 너무 많은 사물에 에워싸이고 사물에 에워싸여도 욕망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방향이 있어 욕망이 좋은 것으로 통일이 안 되고 수많은 사물들의 영상이 마음에 찍혀서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입어보고 싶고 여기도 가고 싶고, 이 일도 해보고 싶고 저 일도 해보고 싶고 하는 감각에 따라 생각과 욕망이 분산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 앞에 모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을 ‘기억의 찢어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찢어짐 속에서 인간은 속임을 당하게 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 곳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조차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이나 사물, 자기의 명예와 육신적인 욕망 이런 것들 중에 하나님조차도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때때로 우리의 정신을 모아주시는 것으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이 아주 사랑하는 자녀들인데도 때로는 하나님이 원수를 일으키셔서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원수들에게 시달리면서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지하는 마음이 아주 깊어 질 때에 심령이 파산선고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가난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것이 1복에서부터 8복까지 얼마나 재미있냐면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를 주시고,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주시고,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배부르게 해주시는데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을 통째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복에서부터 8복까지는 1복을 선언하고 1복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상세하게 상세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지지 아니하고는 절대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지 아니하고서는 온유한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애통하면서도 가난한 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가 아니고서는 애통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마치 비가 오지만 빗물이 사방에 고여 있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기울이개를 주어서 한 쪽으로 모으면 물이 치달으면서 한 쪽으로 모아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마음을 하나님께 모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다루실 때에 그렇게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셔서 다루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면 나쁜 일이 없습니다. 나쁜 일도 결국은 그 때는 쓰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간구하는 기도가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해주시옵소서’ 전쟁을 많이 경험해본 사람들의 표현입니다. 전쟁터에서 적의 군대가 새까맣게 몰려올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진지를 굳게 하는 고대의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과 병거를 들고 앞에는 방패를 앞세운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싸울 때 전력이 비슷하거나 부족할 때 그 군대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그 군대와 일직선으로 맞서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병사들 중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군인들로 하여금 선봉을 세워서 어마어마하게 몰려오는 대군들을 쪼개면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옛날에 마케도냐 왕이 사만 군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26만대 4만이 페르시아 대군과 싸워서 이깁니다. 그 전법이 수많은 대군들의 가운데를 치고 지나가서 반으로 나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흩어지고 다시 가운데를 쪼개고 하면 군대는 현저하게 힘이 없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원수를 흩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군인들의 전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염두에 두면서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를 미워하는 자’라 했는데 그것은 원수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해서 도망하는 패잔병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똑같은 이야기가 2절에서 ‘연기가 몰려감 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불을 때면 연기가 불이 발생했지만 연기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놀라운 속도로 불길이 타오르면 연기는 저 멀리 하늘 높이 상승합니다. 그런 것처럼 이 원수들도 어마어마한 수가 우리를 에워쌌지만 저희를 몰아내시고 불 앞에서 미리 녹음같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양초 같은 촛농을 말합니다. 그런 밀들이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옆에서 불을 때면 녹아내리듯이 그렇게 원수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녹아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녹는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녹음까지 포함합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서 이 백성들이 망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는 내용이 1절과 2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커다란 행복은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 고난과 시련의 때에 예전에는 홀로 울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는 이런 시련과 고난도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언약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탁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기회로 활용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오히려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