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대로를 수축하라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 놀지어다”(시68:4)
녹취자 : 이경순
4절은 여호와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광경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사람들의 아주 전형적인 문학적 관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뒤이어서 같은 이야기인데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해 나가는 것 이런 것이 아주 넓게 사용되는 문학적인 기법입니다. 같은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3절에서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것을 좀 더 상세하게 확장시켜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하나님께 노래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름을 히브리어로 셈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상이 있느냐면 이름을 그 실체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이 이름에 대한 존중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영광을 돌리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완전히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이름자를 떼어버리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셈. 이름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느냐면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분이지만 그러나 또 어디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모든 물질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초월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마치 하나님이 이 세계 속에 물질처럼 계신다고 보고 그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개념은 거절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주 뛰어난 초월성을 강조하는 의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엄밀한 의미에서 영광 받으실 수도 없고 모욕을 받으실 수도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이 세상 속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 자신은 영광을 받으실 수도 없고 또 욕을 당하실수도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에 의해 모욕될 수도 있고 오해 받을 수도 있고 영화로워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그러한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이렇게 나옵니다. 탄다는 것은 마차입니다. 여기서는 왕의 마차입니다. 그것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남이 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히브리 백성인데 히브리라는 뜻은 이브리라는 뜻으로 이브리라는 아바르라는 동사에서 온 것인데 건너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 사람들이 합비루라는 민족으로 여겨집니다. 이 사람들은 강을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자 체가 사실 어떻게 보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강건너온 야만족들 그런 정도의 이름으로 불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을 건넜다는 것은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다 그렇게 불린다고 그럽니다. 정확히는 기원을 알 수 없지만 그 어쨌든 그렇게 불립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담에 광야의 생활을 합니다. 광야에서 생활이 그들이 볼 때는 애급에서 종살이나 하다가 와르르 쏟아져서 최소한 이백만에서 삼백만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막 토해내듯이 길바닥에 쏟아져 나왔으니 까 이들을 보기에는 야만족이고 오합지졸같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어가를 타시고 그들을 다스리며 통치해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소위 얘기하는 하나님은 용사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가를 타고 광야에서 행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시던 그 많은 일들 안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뜻대로 살도록 통치하시고 밖으로는 이스라엘 헤치려고 하는 많은 무리들과 더불어 싸우시던 그 하나님의 통치는 단순한 왕의 행차를 위한 어가가 아니라 전쟁의 개념입니다. 전쟁터에서 나라의 국운이 걸린 엄청난 전쟁일 경우에는 왕이 친전을 합니다. 친히 전쟁터에 어가를 타고 옵니다. 그래서 왕은 병사처럼 위장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군인들 심지어는 적군들까지 볼 수 있도록 화려한 어가를 타고 옵니다. 물론 왕의 어가를 수많은 군대들이 에워싸서 도저히 그 왕의 어가는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방비를 하면서 오는 겁니다. 그러면 전쟁을 하는 많은 군인들은 그 높이 둘러싸인 왕의 어가를 보면서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께서 이 전쟁터에 친히 오셨다 그리고 그 모든 인간들과 비교되지 않는 탁월함으로 왕이 우리와 함께 오셨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왕께 충성 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시편이든 뭐든 볼 때 당시의 문화나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지고 대입을 시켜서 보면 겉치레로 쭉 읽어나갈 때는 발견이 안되는 아주 정교한 그림과 인상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고 광야에 행 하시던지 라고 했습니다. 과거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광야에서는 왕으로 통치하시는데 용사로서 통치 하십니다. 마치 전쟁터에 친히 임하신 왕 그러나 전쟁과는 상관없이 사기나 북돋우기 위해서 오는 그런 종류의 왕이 아니라 실재로 전쟁을 진두 지휘할 수 있는 그러한 왕입니다. 말하자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와 같이 그런 종류의 왕으로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광야에 행하시던 자 그러나 지금은 광야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시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는데 바로 그렇게 용사이신 하나님 때문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왕이 계시니 그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얘기하는 킹스하이웨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왕이 지나가게 되면 그렇게 광야에서 전쟁을 할 때 친전하여 싸우시던 그 왕이 바로 오늘 우리의 삶속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왕을 위해서 대로를 수축하라는 것은 왕이 지나갈 때 제일먼저 외치는 자가 따라갑니다. 외치는 자가 가서 큰 소리로 나팔을 불며 왕이 모년 모월 모시에 이곳을 지날 터이니 너희는 마음을 단정히 하고 너희는 왕을 맞을 차비를 갖춰라 라고 외치는 자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뒤에서 도로를 개축하는 사람들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높은 데는 깎아서 낮추고 낮은 데는 흙을 넣어서 돋아서 똑바른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포장이나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길이 험해지면 왕이 덜커덩 거리며 지나갈 수 없으니까 도로를 먼저 수축을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못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킹스하이웨이 왕의 대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림이 세례요한과 관련지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40장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외칩니다. 그 대로를 길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다 내는 것입니다. 회개하므로 서 마음을 돋우고 낮추어서 예수오실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축하라 영광의 왕이 이제 오신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 그러면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거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을 거명하는 것입니다. 언약백성들에게 계시된 이름입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 역사 속에서는 용사이시고 친히 전쟁터에 임하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아버지시다. 우리는 그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참된 행복이다 그러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많은 싸움이 있고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은 용사이십니다. 아무 능력이 없이 아버지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아서 힘없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그 왕권을 행사하면서 단물이나 빨아먹는 그런 너절한 임금이 아닙니다. 친히 그 백성을 건지실수 있고 붙드실 수 있고 친히 다스릴 수도 있고 당신의 위대한 능력으로 펼쳐보일 수 있는 그런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고 어떠한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 배워하면서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황들을 통해 거기에 묻어나는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존재와 성품 때문에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고 기뻐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에게 주신 큰 특권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제일가는 본분입니다.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그분 안에서 그분 자신을 누리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의 본분이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그분을 누리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도록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