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행진하셨을 때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셀라)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시 68:7-8).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이끄실 때, 그 때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지은 노래이죠. 근데 여기에서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어느 한 때라기 보다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들어가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을 가리키는 거죠. 특별히 그 중에서도 이 문맥은 광야를 지나면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나라들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에요. 바산과 시온의 왕을 꺾으시고 그리고 수많은 나라와 더불어 싸우며 광야를 행진하게 하셨어요. 그 자체가 결국은 신학적 성취로 보면 교회가 이 지상세계에 있는 동안에는 전투적인 모습이 될 것을 보여주는 거죠. 또 개인이 홍해를 건넌 것이 만약에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마지막에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거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있는 광야의 생활은 끊임없는 전투의 연속이에요. 사도바울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영적전투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에베소서 6장에서도 우리의 씨름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주관자들과 대한 것이라....그러면서 영적전투로써의 기독교인의 삶의 본질을 보여준 거죠.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신자의 삶이 이 세상에서 전투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이건 또 공동체적으로 교회에 분여된 삶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체로써 참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게 부어진,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은총이 은사가 그 모든 좋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우리에게 분여되듯이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전투적인 운명도 그리스도의 지체된 우리들에게 꼭같이 분여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이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은혜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과 나뉘어지지가 않는 것이다...이런 이야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하냐 하면은 주의 백성 앞에 하나님이 앞서 나가셔서 행진하실 때에....그랬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전쟁의 문맥에서 하나님이 용사가 되신 개념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은 성전이야...그래서 거룩한 전쟁이에요. 그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 땅에 펼치시려는 질서에 대항하는 나라들과의 전쟁이에요. 이 문맥을 가만히 문학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의 전쟁에서의 그 친정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 친정이라는 것은 왕이 직접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건데, 절대로 왕의 어가가 전투 앞에 서는 예는 없습니다. 근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행진하셔요. 그런 이스라엘의 특권은 하나님이 왕이시지만 전쟁을 할 때는 백성들을 군인들을 전쟁하라고 앞에 내보내고 당신은 화려한 어가를 타고 그리고 뒤에서 군인들을 독려하는 그런 이 세상 임금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가장 전투적이 되어서 모든 백성들 앞에서 모든 군인들 앞에서 용사로써 그렇게 진두지휘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거죠. 이 분에게는 이스라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호위하고 함께 진군하는 영적 군사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전쟁의 개념이에요. 그래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게하시에게 보여주셨던 그 도단성을 에워싸고 있는 대적들과 그 뒤를 포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군대들, 그것들을 보았던 것이 바로 그런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아람 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을 만한 수많은 군대들이 포진한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시는데 당신의 천군과 천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싸우시는 거예요. 그게 전쟁의 개념이에요. 이것의 신약적인 성취가 바로 그것이에요. 교회가 전투적인 삶을 살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올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요. 그래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면 앞서 행하시는 그 분이 그리스도이셔요. 그래서 하나님이 용사이신 이 개념이 기독론적으로 이어지는 거죠. 오히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는 놀라운 평화의 삶을 사시는 것 같았지만 영적으로는 끊임없는 전투적인 삶을 사셨어요. 그런 것들이 반영이 되어서 결국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핍박과 고난도 받으시고 멸시도 받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까지 하셨던 거죠. 이제 부활하셔서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신 이후에는 당신 자신이 이제 이 교회를 그렇게 영적으로 앞서서 인도하시면서 싸우시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 같은 교회의 한 마음 안에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질서에 항거하는 것들에 대한 분노가 교회의 마음 안에 공존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세속주의에는 이 분노가 없어요. 이러한 것들을 그리스도의 지체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가지고 살아가는 것...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앞서서 싸우시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뜻 대로 살려고 할 때 그 분이 우리의 앞서 행하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함께 하실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땅이 진동하고 하나님 앞에 떨어지며 시내산도 진동하였나이다....진동이란 말이 계속 나와요.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은 보역이긴 하지만, 정확한 보역이라고 봅니다. 이 진동한다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말이죠,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면, 등산을 가고 하는 사람들한테 위험한 게 그런 거잖아요? 비가 오고 이렇게 해서 흙이 이제 가라앉으면, 산 위에 간신히 얹혀졌던 바위들이 큰 차가 지나가거나 아니면 무슨 기차가 지나가거나 하면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거예요. 그게 진동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어떤 나라라고 표현했죠? 진동치 못할 나라.....진동치 않는 나라.....다윗의 위의 견고함, 영적인 어떤 세력도 흔들 수 없는 그런 그리스도의 통치의 위엄과 권세를 이야기할 때 진동하지 않는 나라라고 그랬어요. 진동한다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망하는 거죠? 망함의 징조가 보이는 거죠. 그게 진동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용사가 되어서 이스라엘 앞서 행하실 그 때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 없는 나라의 질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그 질서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질서가 흔들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행진 때문이에요. 교회의 진정한 권세와 위대한 힘, 그리고 어떤 것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의 강인한 힘,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이 바로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 때문에 그 교회의 위대한 힘과 권세 같은 것들이 주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우리 모두 승리하기를 원하죠. 근데, 한 사람이 승리하는 삶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리하는 영적 생활의 총체는 결국은 그 시대의 보편 교회 모두의 승리예요. 그러니까 그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강한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이 앞서 행해 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적인 번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해요. 그 번영은 단순히 교회가 건물을 많이 짓고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이고 그렇게 하는 그것 자체가 번영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용사가 되어 주셔서 그 시대의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영광스러운 승리가 나타나는 것....그게 바로 하나님이 용사가 되어 주신 교회의 능력이에요. 이렇게 여러분 잘 보셔야 되는 것이 뭐냐면 그런 보편교회들의 모습을 지역교회들이 나누어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 지역에 있는 교회가 교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돼요. 그리고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편 교회들, 심지어는 몸으로는 건전하지 않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영으로는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여기고 물론 그리스도의 몸이죠. 그리고 그들을 가슴에 품고 전 세계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번영하고 올바로 되기를 하나님한테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느 교회도 다른 교회의 경쟁의 상대가 된다든지, 아니면, 시기의 대상이 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죠. 진리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결코 그런 것들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너무 보편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보편 교회를 이롭게 하고 보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도록 편의상 지역에 교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이것이 훨씬 높은 지위에 올라서 그래서 오히려 보편 교회의 몸을 찢어서라도 자신의 교회를 보하게 하려고 하는 그런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해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가 모든 보편 교회에 속해 있지만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그렇게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역에 교회를 만드신 거죠. 그래서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러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보편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롭게 하고 올바르게 번영하고 하게 하는 그 일에 하나님 앞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렇게 시골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해외에 가서 세워진 교회들 보고 아파하면서 무엇인가 돕고 그것이 우리 지역 교회를 발전시키는 그 일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일깨우면 여기 교인들이 늘어난답디까? 지방에 내려가서 시골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그 사람들이 뭐 교회에 보태주는 게 있답니까? 그런 식의 소화적인 생각을 해서는 복음의 진짜 의미에 접근할 수 없는 거죠.. 그런게 참 안타깝죠. 그래서 어느 교회이든지 건전하지 못하거나 어떤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그러면, 그냥 독한 마음으로 비난을 하고 그러면 안 돼. 먼저 마음으로 그 교회를 아파하면서 품고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해야...최근에도 몇몇 교회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심지어는 막 그렇게 그리스도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러는데 그래서 누가 그렇게 비난을 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러지 말고 기도해라....사람들에게 그 교회 비난 하는 것, 그것 먼저 하지 말고 기도해라...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해서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켰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교회는 아니지 않느냐? 그 사람의 잘못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미워하고 그렇게 욕하고 그런 마음 가지면 당신의 영혼에도 안 좋다...기도하라....그래서 참 너무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그래서 그러한 전 세계에 흩어진 영적인 이스라엘로써의 보편 교회에 대한 눈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긍휼히 여기고 그러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교회에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마 이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그 모습도 훨씬 아름다워 질 거예요. 특히 이 개신교는 그런 점에 있어서 너무 약점이 많아요. 우리라도 그런 보편교회에 대한 사랑을 간직해야 되는....그런 거죠. 근데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실 때 진동이 일어나요. 흔들리는 거죠. 그래서 그 진동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아주 놀라운 엄위요 능력을 통해서 나타나 궁극적으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것이 신약에서는 아주 놀라운 사랑의 능력으로 나타나는....영적인 능력으로....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는 창칼을 들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모든 그리스도인의 무리들도 창칼이 없었어요. 오히려 주님께서는 검도 가지지 말고 전대도 가지지 말고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그대로 이루어 진 것....그러면 이제는 어떤 종류의 싸움이에요? 영적인 싸움이죠. 교회가 참 교회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창칼을 동원하거나 세속의 권력의 후원을 입었을 때, 말로는 항상 나쁘게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 중에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이나 돈 많은 재벌이나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너무 좋은 것이죠. 근데 교회가 그런 사람들과 결탁을 하고 그 사람들을 앞세워서 더군다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그 후원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선교의 유익을 얻으려고 할 때 마지막의 결과는 항상 부패하게 나타나는....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똑바로 창칼 없이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싸워야 할 나라는 이제 이 세상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그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정신이며 영적인 세력들이며 그리고 문화에요. 그래서 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 앞에 굴복시키는 영적인 전쟁이에요. 그리고 사랑의 감화에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 앞서서 용사가 되어서 그들을 승리로 이끄신 것처럼 또한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에 앞장서셔서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해 싸우시니 우리도 즐거이 그 고난에 참예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오늘은 고난이 없어요. 고난이....그래서 20년 전만 해도 늘 부르던 찬송이 복음들고 나선 이몸...요새는 거의 불리지 않는 찬송이에요. 그러니까 그 고난이에요. 참예하는 것. 그러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복음을 전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래서 영적인 용사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오늘날 교회를 붙들고 계신 이유인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