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열왕을 흩으실 때
“전능하신 자가 열왕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시 68:14-15).
13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을 때에 가장 존귀하고 사랑스런 존재가 된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정하신 자리에 온전히 거하는 그것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게 하면 좋다는 것을 다 아는데 그런데도 불순종하면서 살게 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적극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누리지 못하는 욕망들을 갖기 때문이고요, 그것은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죄된 욕망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면서 순종하고 살면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만, 그러나 이제 욕망이 충돌질을 하게 되면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안온하게 살아가는 것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거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기를 ‘우리 마음에 정욕이 고르지 않을 때 그 때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랬어요.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품안에서 온전히 거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소극적으로 보면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무슨 의미냐 하면 우리들이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시련과 고통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수많은 상황을 만나요. 그때에 우리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쓸 때 믿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시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의 그 위대한 능력을 묵상했던 거예요. 그래서 시인도 다른 시편에서 말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그렇게 노래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전능하신 자가 열왕을 그 중에서 흩어버리신다, 이건 전쟁의 문맥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열왕들이 연합군을 이루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습이에요. 그것을 ‘흩튼다’ 라고 하는 것은 전쟁에서 그들을 쳐부수어서 그래서 그들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연합했다가 전쟁에서 패배하니까 살기 위해서 혼비백산 각자 흩어지는 것을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마치 살몬이라는 지역에 높은 산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눈이 날리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도망을 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러면서 바산의 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바산은 사마리아 쪽에 북부 지방이지요. 우리로 말하자면 저 북쪽, 이북 쪽인데 거기의 산지에요. 가본 적이 없습니다만 아무튼 높은 산지들로 이루어 졌다 그래요. 그리고 여기에서 특별히 목축들을 많이 해서 그래서 이제 ‘바산의 암소’라는 표현들이 선지서에 등장을 해요. 그래서 사마리아의 권력자들이나 실력자들을 상징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바산의 산이 너희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높고 여러 개의 봉우리를 가진 그런 거대한 산처럼 너희들이 보이느냐?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산이다. 그래서 높은 산들이 많이 솟아 있지만 그러나 그 산 보다도 하나님은 더 뛰어나시고 그리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산들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복종하느니라. 그런 얘기지요.
그래서 이 산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을 비유하는 걸로 많이 은유가 되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열왕들을 흩어버리시고 바산의 높은 산들이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고백 속에서 이제 이 시인은 바로 하나님 품 안에서 양 우리에 누워있는 양같이 고요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그 근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 모든 불신앙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이 어떠하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성품과 그 성품이 시행되는 방식에 대해서 좀 더 온전한 앎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때에 느꼈던 두려움과 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양이니 양 우리에 누워 그분의 보호를 받고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보호 안에서 우리가 안연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 때 우리는 그 양우리 안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인생의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때 우리의 인생이 가장 높았고, 주님이 높여 주시지 않는데 우리 스스로 교만하여 높아졌을 때에는 그것이 진정으로 높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위대한 능력을 신뢰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그 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된다 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이죠. 바로 이렇게 양이 그 우리 안에 누워서 쉼을 얻는 것처럼 주님의 교회에서 당신의 양떼들이 안온하게 진리의 말씀을 먹고 안식하며 함께 살아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실 그 때에 우리가 진정으로 높았지, 주님이 우리를 외면하실 때에 우리들이 높았던 적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주님이 보시기에 존귀한 자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들을 높이십니다. 그래서 존귀하게 하시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