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기도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70:5)
녹취자: 조봉수
I. 본문해설
자주 반복되는 후렴구처럼 간구문이 등장을 합니다. 그때마다 시인이 고백하는 바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왕이 되어서 시를 쓸 때에도 역시 이 고백은 반복이 됩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이렇게 반복이 됩니다. 이런 고백은 따라서 물리적으로 자신이 돈이 없고 가난하다는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물질이 없어서 가난한 것과 이 마음이 가난한 것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시인은 정말 가난해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가난해서 도망을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제사장이외에는 손을 댈 수 없는 진설병까지도 먹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비록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을 했을 때, 그 기억은 아주 또렷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여러 가지 표제어들이 붙어 있는데, 이 표제에는 기념하게 하는 시다 이렇게 붙어있습니다. 마스길이라고 하는 시가 만약에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기 위한 시라면, 이 기념하게 하는 이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일어난 어떤 사건들을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윗 자신을 위한 기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정말 극도로 가난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부유했을 때에 가지고 있었던 많은 생각을 버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 하나가, 사람이 나쁘게 이야기하면 비굴해지고, 좋게 이야기하면 겸손해지게 됩니다. 정말 가난해지게 되면 그러면 체면도 거들먹거리는 것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관심이 내게 저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거기에 온통 쏠리게 되는 것입니다.
II. 가난한자의 기도
A.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자.
오늘 시인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하나님을 너무나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음에 어떠한 부요함 거기에서 오는 자만심이나 교만, 타성주의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 한분을 간절히 앙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신은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내게 속히 임하소서. 이 가난과 궁핍함은 하나님 자신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에게 에워 쌓이고 시련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시련이 멎고 악인들의 횡포가 모두 끝나고 나면 그러면 자신은 배부르고 만족한 사람이 되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자기의 상태를 드러내 주게 하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고 있는 이 마음과 영혼의 가난함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 자신이 아니면 채워질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사실 건강이 나빠지게 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요. 몸이 건강하고 정상일 때, 음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그 다음에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르고 이렇게 몸이 제대로 반응해서 우리에게 욕구를 불러 일으켜서 그것들을 공급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원래 우리의 몸이 창조의 상태로, 만약에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면 사실 우리들이 육체에 관한한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많은 욕구들을 어느 정도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우리가 물을 마시고 싶다는 것은 몸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우리 몸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야채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균형들이 죄가 들어오면서 깨뜨려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고픔을 못 느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래도 좀 정상적으로 몸이 돌아와서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전혀 밥 생각이 없었는데,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 밥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거나, 마지못해서 한술을 떴는데 그러고 보니깐 세상에 입맛이 돌면서 밥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거나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지 않나요? 그래서 몸이 건강한 상태로 돌아와서 밥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러면 밥으로써 그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그 욕구가 채워질 수 있을까요? 목이 마르면 목에 물이 들어와서 그것이 몸을 두루 적시기 까지는 해갈이 되지 않는 거잖아요. 똑같이 여기에서 이 시인이 자신이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되어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때, 이것은 단지 고통을 받기 때문이 아니고, 고통을 받는 것은 그렇게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보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필요한 것은 사실은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B. 진정한 신앙생활
그래서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자기를 건져주실 때에, 그 물리적으로 시련과 어려움에서 자기를 건져내어 주신 것 때문에 충분히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건져내시는 과정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인정,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영혼의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과 유익을 얻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 어려움이 없이 모든 것들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이유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때 없습니까? 사면을 돌아보아도 머 뼈저리게 고민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내용이 별로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대도 마음이 아주 건조해지고 살아가는 것이 퍽퍽하고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고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영혼이 파리해져 간 경험이 없었나요? 우리에게 그런 경험이 왜 없겠습니까? 무엇을 보여 주냐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시로 그런 환경들을 만들어 주시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간절히 찾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C. 시련을 통해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러니깐 그것도 하나의 하나님의 배려요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의 마음은 그 옛날 고장이 난 라디오 같아서, 옛날의 라디오는 때리면 소리가 나지 않나요? ‘지지직’ 그러면 안 나오다가 탁 때리면 소리가 납니다. 요즘은 그렇게 때려야지 소리가 나는 라디오는 없습니다. 옛날에는 탕하고 때려야지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많이 때리면 망가지지만.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옛날의 후진 라디오와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하나님이 한번 탁 때려주시면 소리가 한참 제대로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일생에 시련도 주시고 고난도 허락하시고 이제 그것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의 생활이 점점 더 나아지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잘 찾지 않습니다. 그게 세계 선교 역사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선교학자들은 5천불이라고 합니다. 5천불이 기준선입니다.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경험으로 5천불 이하가 될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다 ,거기에서 지나치면서부터 인제 점점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말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정말 우리들이 예민한 것은 물질이나 경제, 건강, 이 세상에서의 어떤 환경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예민하고 그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셔서 우리의 마음에 소리가 나게 하기위한 아주 좋은 도구이긴 하죠.
D. 인간의 궁극적 필요 - 하나님
그런데 사실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을 정말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드는 것들은 사실은 그 물질이나 그런 환경들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거는 어느 정도만 인간이 마음을 접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아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깊은 내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이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 그리고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이 하나님 없는 고통,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바와 같이 ‘네 마음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너의 고통이니라.’고 한 것처럼, 궁극적으로 문제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물질이나 이 세상에 있는 돈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우리의 인생에 가장 시급한 문제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시급한 문제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근본적인 문제는 돈으로도 경제로도 무엇으로도 도울 수가 없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결국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보면 예술뿐만 아니라 오락, 문화 모든 방면에서 절망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III. 결론
A. 현대인들의 상황
그런 절망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그것이 오늘날의 타락입니다. 이 타락은 하나의 사람이 미친 듯이 좋아서 달려가는 그런 성격의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영혼과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 그 증상들이 타락으로 극단적인 쾌락과 이런 것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결국은 무엇을 보여 주냐면, 얼마나 우리 인간들이 방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이런 것들로 귀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신문을 열고 사회에 돌아가는 일들, TV를 시청해도 TV 속에서 나오는 드라마나 많은 이야기들에 그 속에 있는 인간의 그 공허한 모습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답들은 찾으려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그런 탈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입니다.
B. 시인의 상황
그런데 비해서 오늘 이 시인은 아주 정직하게 자신의 영혼의 빈 잔을 보았고, 자신의 영혼의 곤고함의 궁극적인 치료책이 이 모든 상황이나 환경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원수들이 내 앞에서 진멸될지라도, 원수들이 망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나와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시며 그리고 부족하나마 나는 언약 백성으로 주님의 생명을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이 환란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C. 하나님 앞에서 옳다함을 인정받는 것
언젠가 한번 택시를 탔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인데, 택시를 탔는데, 택시 운전수가 나한테 말을 붙였습니다.
“아 저 손님 저, 감시 카메라 속도 카메라가 있잖아요. 저거 엉터리 무지하게 많습니다.”
“아 그래요? 왜 그럴까요??”
“속도가 분명히 정상으로 갔는데, 한 20km씩 오버로 찍혀서 딱지가 날라오는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게 법정가면 변호사 사고 머해야 하는데.”
“변호사는 안사고 웨딩샵에 가셔, 사람을 돈을 주고 사가지고, 똑같은 속도로 자기가 달리고, 몇 km에 찍히나 그것을 봤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촬영을 해가지고 30만원을 들여서 그것을 했네요.”
“아니. 하루 벌어서 하루 살면서요?”
“말도 마십시오. 제가 10만원을 물어야 되는데. 하도 화가 나가 나서 그래서 10만원을 가지고 끝까지 법정까지 가서 결국 이겨서 안 냈습니다. 그런데 그 증거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30만원이나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마지막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그리고 내려오는데, 3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이 너무 좋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겼다. 그리고 내가 옳다. 그래서 내가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게 법정에 가서 어쨌든 경찰을 상대로 해서 소송을 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겼을 때에, 그래 네가 옳구나. 이렇게 인정을 해줬을 때, 저렇게 기뻐하는데, 만약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그 때에 양심과 그 다음에 율법이 송사하고 수많은 원수들이 우리를 향해서 송사할 그 때, 주님께서 ‘너는 의롭다함을 얻었다. 네가 더 옳다.’ 이렇게 인정을 해줬을 때, 우리도 아마 저 사람처럼 저렇게 기뻐하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깐 인간의 영혼의 곤고하고 한없이 괴로울 때, 그 시작은 물질이 없고,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일이 꼬여서 힘든 것 같지만, 사실 그를 힘들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자기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 그래서 주님 자신이 그의 영혼의 생사 간에 만족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기대하는 바이고, 우리가 기대하며 살아야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