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백성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시 69:35-36)
녹취자: 정은숙
그렇게 하나님이 고통 받는 중에 당신을 찾는 그 언약백성들을 선대해주신다는 이야기들이 바로 앞에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시고 또 궁핍한 자를 들으시고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는데 그래서 결국은 모든 이 땅의 만물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바다와 그 모든 동물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제 이 하나님의 언약이 깃들여있는 특별한 도성, 특별할 지역 시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도성 유다의 성읍들을 거론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서 소유를 삼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는 시온이라고하는 것은 여기에 명백히 나오지 않는 보역인데 아마도 뒤에 나오는 것이 유다 성읍이라는 지역을 나타내니까 그게 병행법으로 봐서 아마 35절에 이 보역을 넣는 것이 좋겠다 생각해서 시온을 넣은 것 같아요. 어쨌든 이 시온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즉 그 산지를 구원하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한다, 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에게 주시는 기업이 영원하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말해서 이 땅에 살아도 좋다 하면서 집을 못 짓게 한다면 사실 그것은 언제든지 내쫒을 수 있는 난민과 같은 것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성읍을 건설하고 그렇게 도시를 세운다면 그 땅을 영구한 형태로 그 사람에게 소유로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임시로 맺은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오래 지속될, 끊어지지 않을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그런 종류의 기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켜주실 것이다 그 고백을 여기서 시인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고 당신의 그 언약을 따라서 당신의 뜻들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주님께서는 우리와 맺은 관계가 영원한 언약의 관계라는 것을 우리도 확신하면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불순종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고 이렇게 하면 이 확신이 우리에게서 함께 옅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진실한 신뢰와 언약에 대한 확신은 항상 나란히 같이 갑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들이 그런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은혜에 대한 고백 속에서 살지 못한다면 언약에 대한 확신도 우리에게 함께 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뢰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파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다는 것도 아울러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말하는 것도 좋고 말하는 내용도 믿어지지만 그 말이 신뢰가 안가고 그 말의 내용이 믿을 수 없어진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 함께 깨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들을 하고 결정들을 하게 될 때, 우리들이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할 때, 그 때에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특별한 믿음, 이것에 의해 수없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과 그 말씀을 신뢰할 수 없이 내리는 결정, 그 사이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격차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이런 원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무리가 거기 유하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이렇게 나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그 무리는 언약 백성들의 무리인데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항구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니까 이제 흩어졌던 언약 백성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의 약속이 깃들여져 있는 바로 거기에 거하면서 소유를 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유를 삼는다는 것은 시온과 유다의 성읍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되고 아니면 거기 거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소유를 확대해간다라는 어떤 쪽으로든 해석이 가능한데 저는 전자 쪽이 오히려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소상하게 이 부분을 시로 지었을 때 다윗의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이 무엇인지 우리들이 모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다윗 자신이 이미 그 구약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아마도 다윗은 왕정이 시작되기 전에 사사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수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민족들의 침략을 받았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속에서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이 자신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을 때 나라를 빼앗기고 시련과 환란이 왔던 그런 사실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 부분을 시로 지었을 가능성이 있고 만약 이 시의 저작연대가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한 그 이후의 말년이라고 설정하게 된다면 자기 자신이 사실은 그 궁에서 쫓겨나고, 그리고 성소와도 자신이 결별해야하고, 악인들에게 잠시 지배되는 때가 있었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다시 회복시켜주신 때가 있었으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 내용을 지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단순한 은유나 묘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들을 반추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총이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그 언약이 깃들여있는 성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그런 심오한 땅 사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땅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땅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님과의 연합의 관계가 신약시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삶의 한 모형이다 이렇게 추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무리가 거기 거하면서 소유를 삼으며 그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그 복락이 있는 삶을 누리는 광경을 여기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후손들, '그 종들의 후손이 이를 상속하고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병행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속하는 사람이 곧 그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종들의 후손이 바로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고 상속하는 자들이 바로 그 중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축복들은 당대에 이스라엘 백성들만 누리는 복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후손들까지도 받을 복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럼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그 기업을 누리면서 살게 하셨을 때, 그 때에 이 복락은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상속되고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며 우리가 주님께로 받았던 그 기업들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이런 기업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분명한 신앙생활이 돼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에 헤릿 이밍크 박사가 와서 설교를 하셨는데 화란에 있는 대표적인 개혁주이 신학교가 셋이 있는데 이번에 합쳐서 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학장으로 계시는 분인데 화란의 신학이 굉장히 깊이가 있습니다. 그 신학적인 유산들이나 그런 것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아마 칼빈주의가 가장 실천적으로 꽃핀 두 나라를 꼽으라면 하나가 영국이고 그리고 또 하나가, 물론 영국의 청교도의 경우에는 여러 층차가 있습니다만 특별히 화란의 개혁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 그렇게 온 세계의 교회가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개혁신학의 유산을 조상들이 가지고 있고 그게 불과 17세기의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짧은 2세기도 안되는 시기에 신앙이 그렇게 모두 사라져버리고 지금은 그 화란도 교회가 교회 유지하는 것을 지탱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옛날에는 예배당을 크게 지었잖습니까? 그런데 국가에서 크게 지어놓은 예배당을 함부로 손을 못 대게 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을 손대는 것은 망가진 것을 뜯어내버리고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그러면 되는데 그 건물은 수리도 국가의 승인을 받고 특별한 공법으로 수리를 해야 합니다. 문화재 수리하듯이, 그러니까 유지비가 엄청 많이 들어가는 데 점점 교회가 그 빌딩을 나라가 요구하는 그 조건에 맞게 관리할 수 있는 힘이 없어지는 겁니다. 교인들이 안모이니까, 덩그머니 예배당하나 있고 그런겁니다.
잠깐 모였다가 주일이며 다 흩어지고 그래서 왜그렇게 되었냐 그랬더니 이밍크 박사 하는 말이 그때 그렇게 커다란 종교개혁의 유산을 물려받고 학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학문을 해서 기독교 신앙의 찬란한 체계들을 만들었는데 커다란 해일이 덮쳐오는데 그게 뭐냐면 계몽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인간을 중심에 놓은 계몽주의가 몰려오면서 교회만 덮은 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덮어서 전도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계몽주의의 물을 먹으면 기독교를 안 믿겠다는 의지가 생겨납니다. 안 믿겠다는, 믿을 수 없다는, 신뢰할 수 없다는, 그런데다가 그런 상황을 교회가 적절히 대처하지도 못하고 하니까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터에 19세기 자유주의가 확 밀려닥치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동정녀 탄생, 천국, 지옥 이런 것들, 복음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 부인하는 이성주의 시대가 열리게 되고 결국은 교회가 주저앉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오늘날 우리도 우리만 주님을 잘 믿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 신앙이 잘 물려지도록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좀 더 하고 싶지만 시간이 가서 그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