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8일 새벽예배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 72 : 1)
녹취자 : 김용재
시편의 문집 속에서는 솔로몬의 시가 몇 편 등장을 합니다. 그중에 한편인데 1절에서 하나님께 두 가지를 간절히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판단력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판단입니다. 주의 판단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옵소서라고 고백을 합니다. 우선은 이 시가 솔로몬의 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이루어 놓은 큰 왕국을 이어받아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부가하던 때에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왕, 그리고 이후에 자기의 자식들도 자신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 터인데 바로 그 왕이 될 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는 것이 판단과 의입니다. 이것은 판단은 지성에 속하는 것이고 의는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의라고 하는 이 단어도 의의 내적인 자질이 있고 그것이 바깥으로 흘러나온 행위로서의 외부적인 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 지간에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아무튼 의는 의지와 밀접하게 관계가 됩니다. 왜냐하면 의의 내적인 자질이라고 하는 것은 내적으로도 하나님의 법도에 맞게 살고자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부합하여 살고자하는 그런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또 바깥으로 행동이 나왔을 때에는 그 의지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끊임없이 행하고자하는 바대로 실해을 해서 얻은 결과가 외부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의지와 관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울에 물이 흘러가는데 어느 지점에 가면은 물이 휘돕니다. 그래서 소용돌이를 칩니다. 그런데서 미역을 감다가 사람들이 잘 빠져 죽습니다. 왜냐하면 물 자체가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 지점에 들어가면 바닥까지 사람을 끌고가는 것입니다. 그런 소용돌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흐르는 물, 그리고 그 지형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뭄이 져서 물이 하나도 없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래도 바로 그 지점에는 물을 휘돌게 하는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분량만큼 물리 흘러가면 다른 곳에서는 안 그런데 그 지점 그 지형 그 물이 흐르게 하는 지점에서는 소용돌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의의 내적인 자질은 바깥으로 나타나는 많은 행동들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그 사람의 내면 안에 그런 의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별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실제로 생겨나면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이 판명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는 의지와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는 것입니다. 판단은 지성에 속하고 의는 의지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는 그 두 가지 하나님의 지성과 의지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그래서 지성으로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의지로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행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판단과 의를 간절히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그런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최대한 하나님 본받게 하셔서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아주 의미 깊은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판단은 나에게 주시고 의는 아들에게 주시라고 하는 이 기도의 제목은 그렇게 주목할 바가 아닙니다. 문학적인 표현일 뿐이고 어떻게 나는 판단만하고 행하는 것은 우리 아들이 행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인 표현이고 우리에게, 우리 왕의 가문에게 당신의 뜻을 이어 왕의 가문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주의 판단과 그리고 주의 의를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이 시인은 주의 판단을 구합니다. 여기에서 주의 의라고 하는 것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도 판단하고 우리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판단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적이 많이 있지만 주님의 판단은 언제나 올바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판단은 완전한 판단입니다. 그런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왕이 되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뭐냐고 물으실 때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했던 것도 이러한 시인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판단한다고 할 때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판단은 이 꽃이 무슨 꽃이냐 이런 종류의 자연적인 판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판단은 도덕적인 판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판단을 내릴 때에 실수가 없이 어떤 일들이 몰고 올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선악 간에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에 왕이 나라를 덕스럽게 통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판단을 정확하게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러나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계처럼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죄악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욕망에 방향이 우리가 판단하고자 하는 방향하고 같을 때에는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잘못되기가 쉬운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더군다나 이것이 나라의 명운과 관련이 되었을 경우에는 한번 잘못 판단하는 것이 백성전체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국가의 안위에 대해서 중대한 위협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수록 판단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판단을 왕에게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주님이 판단하신 것처럼 그렇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주의 의라고 하는 것이 시편 38편을 비롯해서 다른 곳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의를 왕의 아들에게 준다는 뜻이기 때문에 주님의 의를 힘입어서 왕의 아들이 의롭게 된다는 구원론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그러나 웬지 본문의 흐름을 비트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뭐냐면 주님의 판단을 왕에게 주시고 주님이 판단하시는 것처럼 우리 왕들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하나님을 섬기게 해주옵소서라는 것이고 주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의 법도를 따라 주님의 뜻을 봉행할 수 있는 그런 의를 우리 왕들에게 주셔서 우리의 통치하고 다스리는 이것이 주님의 판단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뜻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다스리는 왕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왕국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라고 생각을 해보면 저의 해석이 훨씬 더 원래 시인이 기록한 의도에 훨씬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이것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육적 이스라엘의 왕국 안에서 정말 왕이 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지금은 이제 그리스도가 왕이 되셔서 우리 모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감히 이 세상의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구현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단순한 우리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을 주님의 왕국에 대적하는 반역자들로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왕 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 왕적 통치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서 주님의 판단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와 관련해서 이 구절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신 것처럼 그런 주님의 통치를 가장 먼저 아름답게 구현해야 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교회에 이런 판단력을 주시고 또 이런 의를 왕의 아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 때 그 판단력과 의를 가지고 그 판단력과 의를 가장 잘 실현함으로써 이 세상에서는 주님의 판단을 보여주어도 사람들이 그 판단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의를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그 의를 실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판단력을 몰라서 그렇지 그걸 알려주기만 하면 기꺼이 그렇게 따르고자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성도들이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어서 기꺼이 주님의 뜻에 복종하려고 하고 주님의 진리를 올바르게 배우고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는 마음의 우상들을 몰아냄으로 선명한 지성을 가지고 주님의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영광이고 교회의 지도자들도 이런 기도를 반복하며 참여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