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에 영광이 가득찰 때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시72:10)
녹취자: 이경순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맨 처음에 선택 하셨을 때에는 가정을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가정이 바로 다름이 아닌 아브라함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그들로 큰 씨족을 만드시고 그 씨족들로 후일 나라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만드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나라들과 같은 나라를 만들고 싶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을 안주신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모세라고 하는 지도자가 있었고 그리고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로 바통이 이어지고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사사들의 시대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사사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쇼페트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판단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재판을 해서 이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을 해주는 자고 쇼페트라고 하는 단어에서 미슈파트라는 단어가 왔는데 이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라에 지도자가 없이는 안 되니까 최소한의 지도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있고 그리고 또 한편에는 제사장들이 있어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고 선지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알려주면서 살도록 그리고 직접적인 왕으로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 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나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것인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라를 직접 통치하시려니 까 어떻게 되겠어요? 왕이 눈에 보이고 칼을 휘둘러도 말을 듣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으로 다스려 지는 나라 그러니까 사사든지 아니면 선지자든지 아니면 제사장이든지 그런 것 하고는 상관이 없이 모두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향한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그것 이였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신앙이 부패해지니까 자신의 나라가 이렇게 약한 것은 이 세상나라에 있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왕국의 가치를 이 세상나라하고 똑같이 둔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하고 똑같은 가치를 둔다는 것은 이 세상 나라에서는 왕실이 얼마나 번영을 하냐? 나라가 얼마나 땅덩어리가 큰가? 그리고 무역을 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버나?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병사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 전쟁에 필요한 말과 무기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이런 것에 의해서 나라의 강함과 약함이 측정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번 가만히 돌아보세요. 이스라엘 나라는 고등학교 세계사에 두 줄밖에 안 나오는 그런 아주 조그만 나라입니다. 가서 보면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겁니다. 작년에 성지순례 갔다 왔지만 웃기죠. 뭐 우리가 호수라 그러는 것은 바다라 그러고 우리가 도랑이라고 하는 것은 강이라고 하고 우리가 보기에 뒷동산은 산이라고 하고 우리가 보기에 밭떼기만 한 것은 광야라고 부르고 평야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모든 것이 축소된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못하신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실 때 아예 처음부터 그 목표는 이 세상나라의 크기를 대결위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그런 뜻이었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실 게 아니라 중국이나 로마제국을 선택하셨어야죠. 그런데 하나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 자체가 당신과 어떻게 그 백성들이 관계를 맺으시고 당신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시는 지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중국이나 로마를 택해서 하나님이 이런저런 일을 이루셨으면 사람들이 그게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나라가 워낙 크니까 참 잘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겠죠.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말해서 그렇게 미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그리스도 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난 다음에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견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부자가 되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됩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였었는데 이제는 바뀌어야합니다. 그래서 정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보여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고 그것은 반드시 큰 성공이나 어마어마한 번영 이런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그 자체가 이 세상의 가치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얻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그것보다도 오히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없어서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성취들을 신앙 안에서 해 낼 때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놀라운 은혜 이런 것들을 드러내고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한사람이 홍콩으로 사업 때문에 이주를 했는데 돌아와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데 그렇게 행복해 한데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다시 안 올 거라고 한데요 그래서 왜 그러냐 그러니까 거기서는 그렇게 선생님들이 인격적으로 대해준다는 겁니다. 여기서는 수업시간에 떠들면 분필을 집어던지고 심지어 우리 학교 다닐 때 분필통을 집어던지고 그랬습니다. 분필통을 집어던졌는데 나무통이었는데 떠드는 애한테 안 맞고 그 뒤에 있는 애 머리에 맞아가지고 혹이 이만큼 나와서 선생님이 쫒아 가서 미안하다고 그러고 이렇게 되는 현실을 보면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이 땅에 예수 믿는 젊은이들이 우리교회를 포함해서 물론 선생님 되는 것도 요새 힘들지만 젊은이 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젊은이들이 대거 교사로 지망을 해가지고 가서 성직을 수행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온전히 마음을 쏟아 붓고 그렇게 가르치면 정말 하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돌릴까? 아이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고 선생님에게 반항하고 이런다는 이야기는 결국 뭘 보여 주냐면 그렇게 존경하며 따르고 싶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할 사람들이 너무너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교사뿐이겠습니까? 이 세상 너무 할 일이 많은 영역에서 모두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왕이 하나님의 판단과 의로서 나라를 통치할 때 하나님이 이 세상 나라의 영광도 하나님이 아울러 주실 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 앞에 부복할 것이며 부복한다는 것은 신하가 왕에 대해 예를 갖출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럴 것이며 그담에 열방이 많은 나라들이 모두가 다 그를 섬길 것입니다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여기서 이야기 할 때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할 때의 때는 솔로몬의 시대는 주변에 어마어마한 왕국 이스라엘만 해도 큰 나라였습니다. 그러니까 왕이라는 개념이 창세기에 보면 서른두 명의 왕들이 나오고 그러잖아요. 그것은 우리로 말하자면 토인들 뭉쳐서 씨족마을 거느리고 있는 것 같은 작은 마을도 왕이라고 불렀으니까 그런 것들이 이스라엘 주위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지고 나라가 허술해지면 벌떼처럼 모두 일어나서 대드는 겁니다. 공격을 하고 그리고 약탈해가고 조공도 안내고 그런데 나라가 강성하면 전부다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부복하고 경배하고 절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이런 왕들이 자신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그런 것들을 염두에든 표현이라기보다는 요단강 건너편에도 족속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이 산지에 몰려 있다가 이스라엘이 약해지만 내려와서 약탈해가고 문제를 일으켰잖아요. 이런 모든 세력들이 이스라엘에 굴복한다. 그것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던 것처럼 나라도 꼭 같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올바르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나라가 될 때 하나님이 그런 것들이 부복시키셔서 그래서 섬김을 갖도록 만들어 주시는데 이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꿈꾸는 나라가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라가 돈 많이 벌고 땅덩어리를 크게 차지하고 강력한 군대를 거느린 다음에 그 담에 작은 나라들을 압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독단적으로 행동을 해서 주위의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침략전쟁이나 일으키고 하는 그런 나라를 꿈꾸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몫이 아닙니다. 여러분 찬송가에 보면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양)
끝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매여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그 뜻이 이뤄지다 외치며 사나니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하려고 할 때 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이유가 영토 분쟁이 있었는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아예 멕시코를 치자 침략전쟁 이였습니다. 교회가 결사적으로 반대 하였습니다. 그때 데모하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습니다. 결국은 못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나라의 일원으로 살면서도 이 세상 나라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며 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정말 나라를 사랑하되 그렇게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에 부합하며 그 나라에 번영에 이바지하는 나라가 되었을 때 그때 기독교인들이 기쁘게 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섬기고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왕국에 가득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욕이나 하고 잔소리나 하고 마음속으로 비난이나 퍼붓고 저주나 하고 그런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닙니다. 깊이 마음으로 끌어안고 나라가 올바로 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