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찬송 받으실 하나님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찌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시 72::18-19)
녹취자: 박은희
72편을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시인은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홀로 행하시는 기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왕에게 판단력을 주시고 또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셔서 대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는데 이때에 하나님이 나라를 복주셔서 만민의 생명을 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속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땅에 하나님이 번영을 주셔서 풍성한 곡식들이 맺게 하시는 그 영광, 그 나라의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높이시는 열방의 영광,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왕들이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나라를 복 주실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요, 또 잘 다스린 나라의 영광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이 이 시편의 마지막을 하나님께 대한 찬송으로 끝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온 땅의 하나님이시지마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당신의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고 높이는 분으로서, 이 시인이 찬송 받아야 마땅할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땅의 하나님이시라는 놀라운 증거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서 당신의 그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온 땅과 하늘위에 높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야 할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기는냐의 따라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도 알고 저런 분으로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우리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가 하는 것은 그 모든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태도가 이 세상의 구원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찬송에 의해서 더 영화로워지시는 분이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일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일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주님을 찬송하고 높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새 힘이 솟아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근심과 염려, 걱정과 많은 고생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그때에 찬송은 우리로 하여금 그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만들어 주고 또 시련과 고난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송축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의지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주님을 찬송하고 그 이름을 송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대한 의존을 버리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온 땅의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 여기에서 ‘온 땅’ 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담장을 넘어 열방과 만국위에 두루 두루 펼쳐져 그래서 모든 나라의 가득하게 될 때에 그 때에 그 영광이 충만한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나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면 세상이 바뀌게 되는 것 아닙니까? 왜 사회주의 국가에서 기독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핍박을 하고 또 봉건적인 국가에서 기독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심하게 억압하고 핍박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상하게 이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들이 해체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인간을 물질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던 유물론사상을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첩들을 두고 살던 이런 사회제도들이 타파된 것도 결국은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여성운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통해서 남자든 여자든 모두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들이라는 사상이 전파되면서, 그러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찬송만 부르고 예배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지평이 복음의 정신에 의해 지배되고, 말씀에 의해 다스려지므로서 하나님의 이름은 거기에서 찬송을 받으시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아멘 아멘” 이라고 노래합니다. 히브리말로 ‘아멘’ 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렇게 라는 뜻입니다. 혹은 굳건히 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노래한 후에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마쳤다라고 말합니다. 즉 이것은 두 개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72편 표제에는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라고 되어 있으니 두 가지가 가능한데 하나는 다윗이 쓴 시를 솔로몬이 간직해왔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추측이 가능해지게 되고 실제로 솔로몬의 시라고 하는 이 말은 솔로몬에게 속한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그래서 그것은 자기가 직접 지었다는 것도 되고 혹은 그 시를 누가 썼던지 자기가 간직하고 있었다 하는 것도 됩니다. 그것이 한 가지 가능성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아버지께로부터 늘 들은 구전적인 이야기를 솔로몬이 글로 옮긴 것이 그러니까 아버지께로부터 늘 배운 그 기도를 솔로몬이 자기심정에서 토해내어 글로 옮긴 것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간에 우리가 뭐가 맞다라고 절대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마는 어쨌든 이 시에 다윗도 연관되고 솔로몬도 연관되었다 라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솔로몬의 시가 아니라 다윗의 시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이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십시오” 이것은 솔로몬을 향한 기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뭐 특별히 의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심정적으로는 히브리 사람들이 구전문학에 워낙 능했던 사람들이니까 아버지가 들려준 기도를 토대로 솔로몬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평생 간직하며 살지 않았을까? 이렇게 추측을 해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해서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라는 내용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72편의 이 내용은 사실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어느 특별한 왕들만이 하나님 앞에 올리는 기도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왕들이 모든 시대의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올릴 기도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라고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나 다윗이 직접 구전하거나 썼을 가능성도 있고, 후일에 이 시편을 편집하는 사람이 추가한 구절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이 기도가 어느 한시대의 국한된 기도가 아니라 대대로 물려가며 하나님 앞에 올려져야할, 왕과 나라와 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사실에는 우리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주간 동안 이 72편을 살펴본바와 같이 우리들이 나라를 위해서, 통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